<font size="4" color="#a00000">언론에게 '아우팅' 당한 홍석천, 그의 극적인 커밍아웃</font>
시드니발 도착 예정시간 오후 5시30분. 9월21일, 탤런트 홍석천(29)씨가 탄 비행기는 벌써 한 시간째 연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시간 전부터 김포공항 입국장 주변은 술렁였다. 도착 예정시간이 점점 가까워지자 TV카메라가 속속 나타났고, 출구 여기저기를 서성이는 기자들이 늘어갔다.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Coming Out)한 연예인 홍씨를 기다리는 것은 동성애단체의 환영인파가 아니라 의혹에 가득 찬 차디찬 카메라였다.
황당함과 배신감
오후 6시40분. 드디어 검은 선글라스를 낀 홍씨가 입국장 출구에 나타났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들이 재빨리 그를 덮쳤다. 홍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마디만 해줘. 응?” 리포터로 나온 한 선배 연예인은 인터뷰를 거부하는 그를 붙잡고 마이크를 들이댔다. 그뒤를 여러 기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정리되면 얘기할게요.”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이 얼핏 비쳤다. 홍씨는 가까스로 공항을 빠져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 탔다. “어머니 어디 있어? 어머니 찾아!” 홍씨를 놓치자 기자들은 이번엔 그의 어머니를 찾았다. 정말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공항의 소동은 당당하게 커밍아웃한 연예인의 귀국 풍경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이 심란한 풍경이 빚어진 원인은 홍씨가 출국하기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지난 9월17일치 1면에 홍씨의 얼굴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 제목이다. “사실… 난 남자가 좋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커밍아웃 인터뷰라면 당연히 상세하게 실었어야 할 직접 인터뷰 내용은 거의 없고 이른바 ‘카더라’ 방송으로 일관하고 있다. “용기있는 행동” 운운하고 있지만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사용했 리 만무한 “호모”라는 용어를 제목으로 달고 있었다. 뭔가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홍씨는 한 여행사의 올림픽 응원단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가 있었다. 그리고 커밍아웃 기사가 나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 있던 매니저로부터 보도 사실을 전해 들은 홍씨는 “우선 황당했고 (보도한 기자에 대한) 배신감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보도를 한 의 오아무개 기자는 홍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홍씨는 출국하던 날인 9월16일, 공항에서 기사를 쓴 오아무개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 오 기자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사실을 대며 홍씨에게 “그 인터뷰에서 커밍아웃을 했느냐”며 추궁했다. 출국을 앞두고 경황이 없었던 홍씨는 “월간지 기자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있다”며 “돌아온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달랬다. 하지만 홍씨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결론내리는 방식”으로 오 기자는 홍씨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출국 바로 다음날, 기사로 내버렸다.
기사에 인용된 ‘한 월간지’는 이다. 의 안아무개 기자가 9월 초 갑자기 홍씨를 만나자고 했다. 홍씨는 그저 평범한 인터뷰려니 하며 기자를 만났다. 일단 홍씨를 만난 안 기자는 “홍석천씨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캐물었다. 언젠가는 꼭 커밍아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홍씨는 “정말 알고 싶으면 얘기해 드리지요”라며 솔직하게 동성애자임을 털어놓았다.
‘아웃팅’은 일종의 정신적 테러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홍씨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그게 나니까. 거짓말 할 수 없으니까”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가 무조건 보도를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홍씨는 “아직 부모님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모르시기 때문에 먼저 부모님을 설득한 다음 기사를 내보내자”는 조건을 붙였다. 일종의 ‘오프 더 레코더’(off the recorder)였던 셈이다.
과 인터뷰를 한 뒤, 홍씨는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적극적인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세가 많은 부모들은 “넌 절대로 (동성애자가) 아닐 거다.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한사코 커밍아웃을 말렸다. 인터뷰를 한 9월 초부터 보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설득을 했지만 난공불락이었다. 그 와중에 쪽은 “우리와 (커밍아웃) 인터뷰를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며 직접 홍씨의 부모를 만나기도 했다. 홍씨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홍씨는 시드니로 떠났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물론 자신이 시드니에 있는 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기사가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출국 바로 다음날 를 통해 기사가 나가버렸다. 한마디로 날벼락이었다.
홍씨는 ‘아웃팅’(outing) 당한 것이다. 자의와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한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때 이를 “아웃팅 당했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아웃팅을 노리는 파파라치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사실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 시켜버리겠다”는 위협만큼 폭력적인 말은 없다. 특히 ‘아웃팅’은 공인한테 더욱 치명적이다.
커밍아웃은 반드시 예견되는 주변의 반응을 이겨낼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준비와 판단이 우선이다. 물론 그 사이 수십번의 치열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만큼 커밍아웃은 한 개인의 침범할 수 없는 실존의 문제이자 당사자와 가족, 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관계의 문제이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아웃팅은 한 개인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뜨릴 뿐 아니라 그 가족들을 심각한 정신적 충격으로 몰고 간다. 더구나 아직 한국사회의 동성애 공포증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자행되는 아웃팅의 위험은 서구사회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홍씨는 “기사가 나간 뒤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되뇌었다. 무엇보다 당당한 커밍아웃의 기회를 영원히 빼앗아버린다는 점에서 아웃팅은 일종의 ‘정신적인 테러’에 해당된다.
홍씨는 나름대로 커밍아웃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언론의 특종 욕심이 연예인 최초의 커밍아웃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망쳐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본인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아직은 밝힐 수 없다”고 확인을 거부했음에도, 언론은 ‘홍석천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표해버렸다. 그것도 그가 부재한 채로. 보도과정 어디에도 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배려나 인권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한 기자에게는 한건의 특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기사가 한 개인의 실존 전체를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음을 이 사건은 보여준다.
실제적인 불이익 현실로
과연 동성애자라는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동의없이 공표해도 되는 것일까. 공인의 사생활 문제니 보도해도 좋다는 논리는 가능한 것일까.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가십기사와 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같은 수위에서 다뤄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신도 모르게 알려졌을 때 받을 불이익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고리타분한 윤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사법적인 처벌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문제다.
9월21일, 귀국 당일 심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의 아파트에 만난 홍씨는 몹시 지쳐 보였다. 12시간의 장시간 비행에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취재경쟁, 게다가 마음 고생까지 한날 한꺼번에 겹쳤으니 초췌한 게 어쩌면 당연했다. 잠시 “아예 시드니에 눌러 살까”는 고민까지 했다는 홍씨. 가족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는 그는 당시만 해도 ‘커밍아웃’을 할지, 노코멘트로 일관할지, 기사를 전면 부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본인이야 떳떳하게 밝히고 싶지만 가족들이 여전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인 9월22일, 홍씨는 정식으로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내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쓸쓸히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그동안 겪은 심적인 고통이 묻어났다.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도 한꺼번에 드리워져 있었다.
우려하던 대로 벌써 실제적인 불이익이 홍씨에게 현실로 닥치고 있다. 9월22일, 출연하고 있던 문화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를 그만둔 것이다. 담당 PD로부터 “윗분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홍씨는 “그러면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 아침에는 출연이 예정돼 있었고 이미 1회분 녹음까지 마친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시트콤에서 제외된다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반드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인방송의 에서는 “우리는 신경쓰지 않는다”며 다음회 녹화스케줄을 알려왔다.
동성애 정체성이 침투한 첫번째 세대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지는 않는다. 공무원 동성애자나 샐러리맨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심리적 압박은 받을지언정 ‘직위’ 자체는 보장된다. 하지만 연예인은 고정적인 직위를 갖지 않는 특수한 직업이다. 캐스팅 ‘당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연예인은 어찌 보면 커밍아웃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더구나 캐스팅 여부는 이미지에 의해 좌우된다. 만약 캐스팅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가 심증이 될 수는 있어도 항의할 근거가 되기는 어려운 면도 크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라는 그의 탄식처럼 녹록지 않은 현실이 홍씨 앞에 놓여 있다.
물론 홍씨의 커밍아웃은 개인의 결단이 우선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동성애자 공동체의 변화가 놓여 있다. 95년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를 통해 동성애자 공동체에 발을 들여놓은 홍씨. 그 당시는 줄곧 ‘숨은 존재’였던 동성애자들이 처음으로 가시화되는 시절이었다. 그 무렵 공개적인 커밍아웃이 처음 시도되었고, 동성애자들은 류의 다큐멘터리 추적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진이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라는 언명은 새로운 동성애자 이미지를 상징했다.
이런 대중매체에서 동성애자 이미지의 변화와 인권운동의 출현은 동성애자 공동체 내부 또한 크게 바꿔 놓았다. 더이상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변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 공동체에서 “호모”라는 비하적인 말 대신 “게이”라는 자긍심의 언어가 자리잡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전 세대의 동성애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주로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슥한 밤거리로 스며들었던 데 비해 90년대 중반 공동체에 편입된 동성애자들은 서로의 실명과 집 전화번호를 나누는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동성애자들이 비로소 ‘동성애자 친구’를 갖게 된 것이다. 종로를 대신해 새로운 동성애자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른 이태원은 그 변화를 상징한다. 이전 세대가 일상과 동성애적 삶의 분열을 감내하고 살았다면, 70년대생 동성애자 세대들은 그 고통을 적극 해소하려 했다. 이런 현상은 ‘커밍아웃’에 대한 욕구의 증가로 나타났다. 홍씨도 90년대 중반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세례를 받고, 공동체에 편입된 경우다. 더구나 홍씨는 솔직담백한 성격 탓에 연예인이 된 뒤에도 동성애자 공동체에 발을 끊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인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일상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그의 집 소파 옆에는 이 한권 놓여 있다. 9월 초 개최되었던 퀴어영화제 프로그램이 담긴 책이었다. 홍씨는 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퀴어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얼마나 가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남의 이목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요. 동성애자 친구들과 정말 함께 호흡하고 싶었어요….” 홍석천씨 세대의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과 함께 퀴어영화를 보며 웃고 떠들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는 세대다. 그만큼 동성애 정체성이 일상 깊숙이 침투한 첫 번째 세대라는 뜻이다.전례가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그로서는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겠지만, 그의 커밍아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연예인으로 최초인 홍씨의 커밍아웃은 90년대 중반 이래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과 조금 다른 맥락을 지니는 것이다. 여태껏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문화평론가 등 ‘지식인사회’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거나 동성애 인권운동단체 활동가들이었다. 지식인사회는 어쨌든 상대적으로 ‘동성애공포증’이 덜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들의 실존적 결단도 힘겨운 과정이었겠지만 ‘국민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연예인 홍씨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는 누구도 함부로 무시 못할 반열에 오른 대스타도 아니다.
홍석천 커밍아웃의 특별한 의미
한국연예인 최초로 커밍아웃을 고민하던 홍석천씨는 언론에 의해 결국 아웃팅당한 꼴이 됐다. 하지만 그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극적인 ‘커밍아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다. 스스로 “치기어린 용기”라고 평한 이 행동에 한국사회가 잔잔한 박수를 보낼지 신경질적인 야유를 보낼지 두고 볼 일이다. “연예인의 두 번째 커밍아웃은 또다시 아웃팅이 돼서는 안 된다. 그건 언론의 양심이 달린 문제다.” 홍석천씨가 혼잣말처럼 되뇌였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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