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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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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은 필요조건…‘좋은 의료제도’ 논의로 진화해야”

김윤 서울대 교수 ‘4기자’ 유튜브 인터뷰…‘의사 수 충분’ ‘낮은 수가 문제가 근본 원인’ 등 주장에 반박
등록 2024-02-29 11:34 수정 2024-03-01 13:38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 참석자들이 2월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회의를 마친 뒤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와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 참석자들이 2월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회의를 마친 뒤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와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24년 2월20일 발생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2주째에 접어들면서 환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가고 남은 의료인력은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의대 교수들이 중재에 나서며 절충안을 제시했으나, 정부와 의료계는 ‘강대강’ 대치를 유지하고 있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꾸준히 의사단체와 맞서온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2월26일 <한겨레21> 유튜브 프로그램 ‘4기자’에 출연해 “2000명 증원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에 이어 2023년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징계 절차에 회부됐다. 영상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의사 충분하다’ 주장은 현실 호도

—한국의 의사는 부족한가? 부족하다면 얼마나 더 필요한가?

“우리 연구팀이 지난 7~8년간 지역별로 의료 수요와 병원의 의사 공급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그 결과를 보면 현재 동네 의원 수가 약 2만 명,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도 1만 명 넘게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 인구 고령화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우리나라 의료 수요가 2050년까지 약 3만 명이다. 합치면 6만 명 훨씬 넘게 부족하다. 정부가 늘리겠다고 한 2천 명이 아니라, 4500명 정도를 15년 동안 늘려야 충당 가능한 숫자다.”

—의료계는 출생아가 빠르게 줄고 있기에 의사 수는 과잉 공급될 것이고, 활동 의사가 10년 전보다 2만 명 더 늘었다고 한다.

“2035년 기준 통계청이 예측하는 인구 감소 수준은 약 90만 명이다. 그런데 같은 시점에 노인 인구는 약 700만 명 늘어난다. 또 의료 이용이 늘어나는 나이대는 50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인구 감소가 의료 이용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이 아니라 50년 뒤에 나타난다. 이런 요인들을 간과한 채 ‘인구가 감소하니 의사를 늘리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는 그럴듯하지만 사실과는 다른 주장이다.”

—의사단체들은 의사 인력이 계속 늘고 있고, 피부과 등 특정 부문에 의사가 몰려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한 것이라고 한다.

“의협은 의사 수 증가율을 말한다. 한국의 의사 수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 1만 명인 나라에서 1천 명이 늘어나는 것과 의사 10만 명인 나라에서 1만 명이 늘어나는 것은 똑같이 10%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또한 서울이나 특정 부문에 의사가 몰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지역 나머지 분야에서는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의사가 가장 많다고 하는 서울의 인구당 의사 수는 OECD 국가들의 오·벽지 의사 수와 비슷하다. 게다가 10년 동안 동네에서 주로 고혈압·당뇨 환자를 본 개원의, 10년간 요양병원에서 일해온 흉부외과·외과 의사들에게 당장 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라고 할 수는 없다. 새로 배출되는 인력을 부족한 곳으로 보내지 않으면 지금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윤 서울대 교수가 2024년 2월26일 <한겨레21> 유튜브 ‘4기자’에 출연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4기자’ 유튜브 갈무리. 영상 링크 https://youtu.be/6s0DSwFxE6U?si=BDlk8hu2oCTkNQvy

김윤 서울대 교수가 2024년 2월26일 <한겨레21> 유튜브 ‘4기자’에 출연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4기자’ 유튜브 갈무리. 영상 링크 https://youtu.be/6s0DSwFxE6U?si=BDlk8hu2oCTkNQvy


2025년 증원해도 교육하는 데 10여 년 걸려

—의료계에선 필수·지역 의료 의사 수가 부족한 원인은 낮은 수가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 수가는 의사들 주장처럼 평균적으로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정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비용 대비 수가의 수준은 93%로, 약 7%를 병원들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병원들이 환자를 치료할 때 쓰는 여러 재료, 작게는 붕대나 크게는 수술할 때 쓰는 기구 등의 값이 평균적으로 최소 30%가량 부풀려져 있다. 이 마진이 상당하기 때문에 병원이 건강보험과 약·재료 마진에서 얻는 돈은 원가 대비 100%를 넘는다.”

—그렇다면 특별히 낮은 진료의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전형적으로 응급환자와 중환자, 소아 관련된 진료비 등이 굉장히 낮게 책정돼 있다. 분만도 비슷하다.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대기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의학의 발전에 따라 난도가 높은 기술들이 세분돼왔는데, 수가가 이를 세분하지 않으면서 예전 수가를 준용하는 것이 많아 수가가 낮다. 대학병원의 중환자 진료, 응급환자 진료 수가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평균적으로 수가가 낮은 것은 아니다.”

—새로 뽑은 의대생들을 지역이나 필수 의료에 적절히 배치할 수 있나? 의대생을 늘려봤자 피부과로 갈 수도 있지 않나.

“계속 이야기해왔지만 의대 증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낙수 효과는 미미하다. 의대 증원은 필요조건이고 지금 필수·지역 의료 분야에 의사들이 안 가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전체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의료제도를 잘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전 사회의 모든 논의가 의사 수가 부족하냐 안 부족하냐, 늘려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등으로 시간을 소모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2025년에 의대 증원을 해도 그 학생들이 졸업하는 데 6년, 전문의 과정을 밟는 데 짧게는 4년, 병역까지 포함하면 7~8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 사이에 얼마든지 논의해서 의료계가 원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자고 하면서, 이 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의사들이 정부에 요구하지 않고 당장 의대 정원을 못 늘린다고만 하고 있다.”

소모적 논쟁으로 귀중한 시간 날린 책임

—의대생 증원을 찬성해왔던 시민사회단체도 지역에 분원을 설립하고 있는 수도권 대형병원에 의사들이 쏠려 지역병원이 힘들어질 거라는 우려를 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의과대학별로 정원을 배정하기 전에 이런 논의를 충분히 해야 한다. 의대에 정원을 주면 그 대학의 본원이 있는 서울로 인력을 빼돌릴 수 있다. 그렇게 못하게 하려면 정부가 ‘대학’에 정원을 배정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 배정해야 한다. 그 지역의 필수의료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대학이 정원을 받아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

환자들이 대학병원 쪽으로 쏠리면 지역에 있는 2차 의료기관은 고사할 가능성이 있다. 대학병원이 그 지역에 있는 병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협력하도록, 전공의를 대학병원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병원과 공동 수련하면서 그 인력을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중요한 논의를 해야 할 시기에 의사들이 파업하고, 2천 명 증원이 맞는지 아닌지 등 소모적 논쟁으로 사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결국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날려서 생기는 정책의 부작용도 엄밀히 얘기하면 의사협회와 의사들의 책임이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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