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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애타는데… ‘의료 파행’ 언제까지 가나

전공의 집단사직 잇따르자 정부는 구속수사 등 강경 대응 방침 밝혀… 정부와 의료계 갈등 장기화 전망
등록 2024-02-23 12:24 수정 2024-02-24 14:17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확대에 반발해 전국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냈다. 2024년 2월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안과병원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확대에 반발해 전국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냈다. 2024년 2월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안과병원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전북 군산에 사는 고아무개(38)씨는 요즘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빅5’ 병원 소속 전공의 상당수가 2024년 2월20일부터 업무를 중단하면서 3월 중순 예정된 아버지의 암수술에 차질이 생길까봐서다. 최근 고씨의 아버지는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의료원과 지역 대학병원,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가며 검사한 결과, 암세포는 폐까지 전이됐다. 폐 등 다른 장기로 멀리 전이된 신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20%일 정도로 아버지 상태는 심각하다. 특히 신장암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카페에 ‘2월 말 수술 예약을 연기한다’는 병원 연락을 받았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면서 고씨의 불안은 한층 커졌다. “수술이 밀리면 항암치료 같은 전반적인 치료 일정이 다 연기될 수밖에 없잖아요. 예후도 좋지 않은 병이라 암세포가 전이된 상황도 계속 살펴봐야 하는데….”

 

의사단체와 정부, ‘의사 수 부족’ 판단 달라

 

의과대학 정원을 2천 명 더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사직으로 전국 의료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 2월21일 밤 10시 기준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9275명이다. 전공의 약 1만3천 명이 전체 의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수련받고 근무하는 대형병원에서 수술·진료 보조, 당직, 환자 점검 등을 맡는 핵심인력이어서 이들의 집단행동이 끼치는 영향은 병원 운영에 결정적이다. 곳곳에서 진료 차질이나 수술 연기 등의 혼란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전공의들에게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정부와 의사단체 양쪽이 격하게 충돌하는 주된 이유는 공통 인식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의사 수’에 대한 양쪽의 시각차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공백 문제가 18년 동안 늘지 않은 의사 수 부족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전국의 의대 정원은 의약분업 여파로 2006년 3058명으로 줄어든 뒤 현재까지 이 숫자로 엄격히 통제돼 있다. 고령화로 의사 수요는 느는데 의사 수는 그대로니 전공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이 70시간을 넘기고 진료 보조 간호사(P.A.)에게 의료를 의존하는 관행도 나타났다. 2023년에는 서울에서조차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필수·지역의료 위기가 임계점에 이르렀다. 정부는 고령화 시대에 의료 수요 증가를 고려해 2035년 의사 수가 1만5천 명 부족할 것으로 추계했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의 평균 임상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3.7명인 데 비해, 한국은 평균 2.6명이었다.

의사단체는 저출생으로 인구당 의사 수가 더 늘어나리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한국의 출생아는 2017년부터 해마다 1만~3만 명씩 감소하면서 2022년 출생아 수가 24만9천여 명이 됐고, 2023년엔 더 줄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의사단체는 의사가 자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통계 분석 결과 2010~2020년 대한민국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증가율이 연평균 2.4%였다고 밝혔다. OECD 평균 1.7%보다 1.41배 높다.

현재까지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여론은 정부 쪽 인식에 지지가 몰려 있는 상태다. 전공의 집단사직에 대한 여론은 차갑게 식어 있다.

 

시민사회도 정부안에 의구심

 

정부와 의사단체가 그나마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안은 의료인력 배치의 불균형이다. 다른 지역보다 수도권에 의사가 몰려 있고, 환자의 생사가 오가는 필수의료보다 피부과·안과·정형외과 등에 개원의들이 쏠림현상을 보여서 필수·지역의료에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의대의 지역인재전형을 60%로 확대하고, 장학금·수련비·거주비를 지원받은 의사가 일정 기간 지역에 근무하는 ‘지역필수의사제’를 추진하는 등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마련했다. 지역의 필수의료 의사를 늘리는 방향이다. 이 대책에 2028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고 의사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등의 방안도 담았다.

하지만 정부 방안에 의료계뿐만 아니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에서도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위원장은 “의대 증원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역 의대별로 수를 배분하는 것은 오히려 수도권 대형병원의 쏠림현상을 강화할 수 있고 의료 시장주의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정 위원장은 “지역 의대는 지역에 있지만 실제 의대생 교육을 서울 등에 있는 병원에서 한다”며 “단순 정원 확대는 열악한 지역의료에 도움이 되긴커녕 오히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도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지역의료가 저절로 강화되긴 어렵다”며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공공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과정을 마련하거나 지역 의대의 낙후된 강의실과 실습장비를 확충하는 재정 지원 등이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에선 이런 세심한 설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1년 이상 갈 수 있다”(전공의 임시총회 중 발언), “ 최대 반년도 갈 것 ”(김윤 서울대 교수)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럴수록 피해를 보는 건 당장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다.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는 2월21일 호소문을 내어 “대한의사협회와 정부의 강대강 대응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고 희생양이 되는 환자 사례가 생길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공의들을 향해서는 “조속히 의료 현장으로 복귀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정부에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중증질환자연합회는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와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등이 포함된 연합체다.

 

집단행동 주동자와 배후세력 구속수사 원칙?

 

정부의 엄정 대응 기조가 지나친 법적 처벌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대검찰청, 경찰청은 2월21일 브리핑을 열어 ‘집단행동 주동자와 배후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구속 요건은 형사소송법상 정해진 요건에 한정해야 하고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삼을 순 없다. ‘본때를 보여주라’는 국민 요구는 어느 때나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럴 때를 대비해 헌법과 법률체계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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