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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이상 참사에 책임 안 진 사람 한 명 있었다

민주당, 이상민 장관 권한 정지하는 탄핵 추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부작위’, 행안부 장관 책임 재난안전법에 명시돼 있어
등록 2022-12-02 17:20 수정 2022-12-07 06:37
2022년 11월2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대본 회의’를 마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중대본 구성과 부처별 대응 상황 및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22년 11월2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대본 회의’를 마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중대본 구성과 부처별 대응 상황 및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 측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이 가시화됐다. 158명이 숨진 10·29 이태원 참사 초기부터 제기된 문제가, 참사 발생 한 달이 지난 시점에야 정치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참사 한 달여, 책임진 정부 내 인물 없음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22년 11월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장관 파면은 국민과 유가족의 준엄한 명령인데도 윤 대통령은 책임을 묻기는커녕 동문 후배이자 측근인 이 장관을 지키느라 재난안전 대책을 세우는 범정부 티에프(TF) 단장까지 맡겼고 공개 석상에서 고생이 많다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며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고 이번 주에 열리는 본회의(12월2일 예상)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임건의안 가결 이후에도 본인이 자진 사퇴하지 않거나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때처럼) 또다시 거부한다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서 이번 정기국회 내(12월9일까지)에 반드시 가결시켜 이상민 장관의 문책을 매듭짓겠다”고 덧붙였다. 강제력이 없는 해임건의는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니 곧바로 한 단계 수위 높은 탄핵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최종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정하지만, 탄핵소추는 해임건의와 달리 국회에서 의결 즉시 대상자의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국회 단독으로 해임하는 효과가 생긴다.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된다. 169석인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민주당이 내건 이상민 장관 해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국민 안전 업무의 주무장관으로 참사 책임이 명확한데도 초기부터 이를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관이 경찰과 소방,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현직을 유지하면 진행 중인 경찰 수사나 향후 국정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앞서 참사 한 달을 기한으로 윤 대통령의 파면 결단이나 이 장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해왔다.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와 여당에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박진 장관 때와 달리 이 장관 사퇴 여론이 높은데다, 그 사유도 158명이 숨진 국가적 참사여서 무게가 가볍지 않다. 참사 한 달여 지난 지금까지 정부 내 누구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월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멀쩡한 행인들이 길을 걷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질식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나서서 국민과 함께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장관 경질이 정말 후진적일까

대통령실과 여당은 곧바로 반발하며 이태원 국정조사 거부 움직임을 보였다. 민주당의 해임건의안이 제출된 11월3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정조사 계획서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사 대상으로 사실상 명시된 장관을 갑자기 해임하라고 하면 국정조사를 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미 국정조사 대상에 이 장관이 포함됐고,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있다면 묻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정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파면을 요구한다면 국정조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 주 전 야당과 어렵게 합의한 국정조사에 불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애초 예산안 처리 뒤 본격적으로 조사할 계획이었는데, 이 장관 해임 문제가 얽히면서 아예 해를 넘기거나, 하더라도 여당이 빠진 채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의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기간은 11월24일부터 2023년 1월7일까지 45일 동안이다. 이 기간 내에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등이 진행된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18명의 국정조사 특위 위원(민주당 9명, 국민의힘 7명, 정의당 1명, 기본소득당 1명)이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을 비롯한 16개 기관을 조사한다. 국정조사 기간은 본회의 의결로 연장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은 연장 없이 첫 45일 안에 끝내자는 기류다.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는 모두 90일이었다.

고교·대학 동문인 이 장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높은 신임이 대통령실과 여당의 무리한 대응을 낳은 측면도 있다. 대통령실은 “참사 때마다 장관을 경질해야 하느냐”는 발언을 내놔 지탄받기도 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태원 참사 열흘 뒤인 11월8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무슨 사건이 났다고 장관·총리 다 날리면 새로 임명하는 데 두 달 넘게 걸린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건 좀 후진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대형 참사 때마다 민심을 달래려 관련 최고책임자를 경질해왔다.(28쪽 표 참조)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땐 교통부 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이 여드레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땐 서울시장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땐 서울시 제2부시장이 해임됐다.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땐 13일 뒤 경찰청장이 경질됐고, 2010년 연평도 포격 땐 사흘 뒤 국방부 장관이 자진 사퇴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땐 한 달이 지나서였지만 국가정보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잘렸다. 민주화 이후 단일 사건으로 동시에 100명 이상이 숨진 대형 참사(서해 페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방화, 세월호 침몰)에서 관련 책임자가 정치적·도의적 이유로 물러나지 않은 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이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유일하다.

재난안전법에 명시된 행안부 장관의 책임

장관 경질이 단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는 일만은 아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한 사건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13년부터 줄곧 핼러윈 때마다 이태원에 10만 명 넘는 사람이 모였고, 코로나19로 인한 야외 거리두기가 해제된 2022년 그 규모가 예년을 웃돌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인파 관리와 안전 대책을 세워야 했지만 하지 않은 용산구와 서울시, 경찰청 모두를 아우르는 기관이 행정안전부다. 부작위의 실질적·법적 최종 책임이 이 장관에게 있다.

‘중대재해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의 권영국 변호사는 11월30일 국회 생명안전포럼과 생명안전 시민넷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의 본질은 ‘안 했다’는 것, 즉 부작위에 있다.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의 삶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는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사회재난은 법상 국가나 지자체가 대비해야 하며 경찰은 재난안전책임기관이다. 컨트롤타워도 행안부 장관을 핵심 위치에 둔다고 재난안전법에 명시돼 있다. 책임이 있다는 게 실증법으로도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 △사전에 인파 안전 대비를 해야 한다는 보고가 행안부에 어떻게 전달되고 전파되고 처리됐는지 △예년의 경우 행안부 장관은 대규모 인파 운집 예상 때 재난관리 대책을 어떻게 총괄·조정해왔는지 등을 따져물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참사 당일의 구체적 사실이 조금씩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참사 당일 이른 저녁부터 참사가 일어난 골목이 아닌, 차도로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 데만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파를 인지했지만 좁은 골목 내 압사 가능성을 생각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11월29일 민주당 용산이태원참사 대책본부가 공개한 참사 당일 경찰 무전 녹취록을 보면, 관련한 첫 112 신고 직후인 저녁 6시38분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이태원파출소에 “이태원(파출소) 경찰관 4명 정도를 해밀톤호텔 앞쪽으로 배치. 인파가 차도로 나오는 거 인파를 인도 위로”라고 지시했다. 이후로도 경찰은 계속 “인도에서 차도 쪽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인파들 경고”(저녁 7시7분), “차도로 나와 있는 인파들 무단횡단 조치 바람”(저녁 8시48분), “차선을 하나밖에 확보 못했음. 경력이 밀어서 1개반 확보했음”(밤 9시22분)이라며 사람과 차량 충돌에만 매달렸다.

예상도, 파악도 못한 경찰

밤 9시33분 뒤늦게 “10명 단위로 20초 간격으로 지하철역으로 내려보내야” 한다며 인파를 관리하려 지하철역 입구마다 경찰을 배치했지만, 현장 경찰에 의해 참사 골목길 상황이 파악된 무전은 이미 참사가 일어난 이후인 밤 10시35분이 처음이었다.(“와이키키 앞으로 지원 좀 부탁드려요. 압사당하게 생겼다.”)

그러는 사이 참사 골목에서 46분가량 끼여 있다가 희생된 이들도 있었다. 김동욱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대변인은 11월30일 언론 브리핑에서 “참사 당일 밤 10시42분과 11시1분에 119 신고한 분들도 결국 숨졌다”고 밝혔다. 첫 119 신고 시각인 10시15분에 참사가 발생했다고 보면, 이들은 그 뒤에도 각각 27분, 46분 동안 살아 있었던 셈이다. 경찰 특수본은 당일 인파 끼임이 완전히 해소된 시점을 밤 11시22분으로 확인하고 현장의 구조 대응이 적절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특수본은 12월1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특수본 출범 이후 신병 확보를 위한 구속영장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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