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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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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는 수사라니

피해자인 국민 처지에서 본 검경 수사권 조정의 폐해 ‘경찰 편’
등록 2022-04-23 10:07 수정 2022-05-17 01:35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수사권 조정 이후 1년, 인력 부족으로 사건 기일이 일부 늘어난 것 이외에 어떤 인권침해, 사건 암장, 부정부패가 있었습니까.” ―경찰직장협의회장이 검사들에게 보내는 글 중에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검경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 경찰 쪽에서 나온 의견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1년4개월이 지난 지금, 민간 대상의 일반 형사사건(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 사건의 99%가 넘는다고 한다)의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이 스스로를 평가한 수준이 저 모양이니 현장에서 난리가 나도 변화는 더딘 것이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로, 성폭력 사건의 연대자로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최근처럼 수사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검찰 대응을 평가하기에 앞서, 검경 수사권 조정 뒤 경찰 수사 과정을 짚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검찰에 대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고소장 반려’ 지침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수사관

2021년부터 경찰은 여성 대상 폭력·살인 등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해당 범죄는 경찰에만 고소하는 것이 가능하며, 종전과 달리 경찰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때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다. 경찰의 판단에 따라 범죄 혐의가 없거나 입증하기 어려울 경우 불송치결정을 하며, 고소인·피해자는 이의신청을 통해 2차적으로 피해 구제를 요구할 수 있다. 부실수사와 이의신청에 대해서는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수사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직접 재수사해서 상호 견제와 협력이 가능하도록 틀을 짜뒀다.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 경찰은 2022년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규칙’을 만들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권 조정 전에도 이미 검경의 협력체계가 있었던 만큼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수사 역량 면에서도 걱정할 게 없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대한변호사협회나 여러 시민단체도 지적했지만 우선 고소장 접수부터 엉망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전에 나는 물증 확보가 어렵거나 법리적 다툼이 예상되는 여성 대상 폭력사건의 경우 고소장 접수를 검찰에 하도록 권했다. 경찰의 경우 소장 접수 때부터 피해자가 온갖 추가 가해에 노출되며 반려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엔 고소장 접수가 경찰만 가능(부패·선거 등 6대 범죄 제외)해지기에 피해자에게 준비 없이 경찰서에 가서는 안 된다고 전달하고 있다. 2021년 10월부터 당사자 동의를 받는 경우에만 고소장을 반려한다고 경찰은 주장하나, 해당 지침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찰 수사관이 여전히 있으며, 현장에서는 고소장 반려가 줄을 잇는다. 반려 이유도 다양하다. 가해자 신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범죄임에도 피해자에게 신상 파악하는 일을 맡기거나, 경찰이 법리 적용을 잘못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이런 것을 토대로 무고 가능성을 강조하며 고소 포기를 권한다.

불송치결정서, 기일 못 지키고 내용은 한심하고

수사가 지연되는 경우 상황은 심각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이 각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무리하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하지만, 실제 고소인·피해자 진술마저 수개월 뒤에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해자가 주거지를 옮기면서 사건 이송 신청을 하면 관할 문제를 들어 다른 경찰서로 사건을 떠넘긴다. 거기에 송치·불송치 결정을 하더라도 검찰의 보완수사, 재수사 요구·요청이 이어지면 수사 기한은 계속 늘어나게 된다.

대검찰청이 2022년 4월 발표한 ‘현행 수사 절차 관련 통계’에 따르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뒤 이행에 소요된 시간을 보면 3개월 넘긴 것이 43.5%이며, 미이행된 건도 전체의 13%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지연이 별것 아닌 일처럼 표현했지만 수사 지연은 피해자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특히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마저 지연되면 피해자의 불안은 극에 달하며, 그 과정에서 가해자 쪽의 접촉 시도나 고소 취하 강요 등도 이어진다.

그러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는 제대로 보호되는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지는 의무화됐지만 해당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례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불송치결정을 한 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불송치결정서 등을 7일 이내 고소인에게 전달해야 하지만, 이 부분을 제대로 지키는 경찰을 찾기 어렵다. 불송치결정서 내용은 한심한 수준이다. 이의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짚어야 하지만, 부실한 불송치결정 이유로 그마저도 일반인 피해자는 너무 어렵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도 진술 뒤로 방치하거나, 필요적 신뢰관계인제도가 있는 성폭력 사건에서도 신뢰관계인 동석을 불허하기도 하며, 수사 과정에서 합의와 관련해 여전히 가해자 쪽에 피해자 정보를 넘기거나 수사관이 합의를 강요하는 행태도 존재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수사는 기약 없이 늘어지고 시정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지키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가해자들이 반기는 이유 중 하나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절차적 위법성이 발생하면 이를 이용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일정 부분의 절차적 흠결을 수용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지만, 최근 흐름은 절차적 적법성 준수를 강조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수사기관의 세심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압수수색을 비롯해 절차적 위법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수사 과정에 관행대로 대강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기소 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쪽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문제 삼거나 경찰 수사관을 증인으로 부르는 경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가해자가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대대적으로 반기며 경찰이 요란하게 홍보했던 결과가 현재 이 수준이다.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검찰과의 권력 다툼의 일환으로 생각해 수사권 확보에만 신경 썼을 뿐 해당 권한을 활용할 방법에 사전 준비를 게을리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경찰 수사관은 여러 업무에 치이고, 피해자는 피해 구제를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함만 쌓인다. 능력은 부족한데 덩치만 비대해진 경찰을 견제할 장치도 부족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뒤 검경이 상호협력과 감시체계를 구축하기보다 대립관계로 힘겨루기하면서 피해자는 ‘법대로’ 하기를 포기하고 있다.

국민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관심 없는 검경

나는 성폭력 피해 이후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검찰에서 여러 차례 추가 조사에 응한 뒤 불기소를 기소 처분으로 바꿀 수 있었고 재판에서 가해자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성폭력 사건 연대활동 과정에서도 수차례 경찰의 판단을 검찰을 통해 크로스체크하면서 뒤바꾼 경험이 있다. 진술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거나 법리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 모두 내가 성폭력 사건의 연대자로서 2021년 이후 경험했던 것들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시행에서 나아가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범죄 인지/범죄 신고·고소–수사–기소–공소유지–재판’ 전 과정에서 살펴야 하며,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지도 논의해야 한다.

경찰과 검찰 모두 국민을 앞세우지만, 정작 그 국민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날을 세우고 억울함을 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형사사법 절차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근본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n번방 재판 방청기: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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