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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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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징역이 가해자의 희망이라면

실효성 없는 사형과 가석방 가능한 무기징역 사이, 피해자를 위한 대체 형벌 입법 필요
등록 2022-02-27 14:45 수정 2022-05-17 01:35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사형제도가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하였다는 현재의 형벌 시스템 등을 고려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지금의 상황하에서, 이 법원으로서는 이렇게라도 가석방과 관련된 의견을 명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어 보이고, 또 그것이 이유 없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세 모녀의 원한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길이라 사료되기에,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과 다를 바 없어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일부 학계의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선고형은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되어야 마땅하다.”

2022년 1월19일, 일가족 3명을 살해한 김태현(26)에 대한 항소심(서울고법 형사6-3부 조은래, 김용하, 정총령) 판결문의 일부다. 최근 재판이 진행 중인 각종 페미사이드 사건(제1393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참조) 중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건에서 재판부가 직접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 제도의 도입을 촉구하거나, 판결문에서 법무부의 가석방 심사와 판단에 대해 “가석방이 없어야 한다”는 법원의 의견을 밝히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징역 42년보다 무기징역이 유리한 이유

그러나 사형을 대체할 형벌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30명이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가석방 없는 종신형: 종신징역, 종신금고 등)을 단 한 건 발의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뒤 논의가 멈춘 상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으로 사형제를 유지한 세 나라(한국·미국·일본)에 속하지만, 1997년 12월30일 사형 확정자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 25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한국을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사형 선고 역시 2016년 2월 ‘육군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도빈이 판결이 확정된 마지막 사례다. 검찰의 사형 구형은 이어지고 있으나, 최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진주아파트 스토킹 방화 살인사건’의 안인득과 아동·청소년을 살해한 일명 ‘어금니 아빠’ 이영학 등 이외에 실제 사형 선고까지 이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인득과 이영학은 이후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문제는 피해자 가족이나 재판부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행법상(형법 제72조 1항) 유기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무기징역의 경우 복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가족을 살해한 김태현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가능성이 생기지만 징역 42년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조주빈은 형기의 3분의 1(14년)을 살아도 잔여형기가 10년을 초과해 가석방 요건이 안되므로 무기징역 선고가 오히려 가석방(20년)에 유리한 사례도 발생한다.

2019년 10월 기준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는 총 1363명이었다. 무기수 가석방은 2015년 1명, 2016년 2명, 2017년 11명, 2018년 40년, 2019년 9명(2019년 9월까지 집계 현황)이었다. 25~28년 넘게 복역한 무기수 중 가석방되는 이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2019년 법무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살인범 중 1854명이,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 전력자 중 3015명이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피해자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데

이 와중에 2021년 4월 법무부는 가석방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론 살인 등 강력범죄,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성범죄 등을 저지른 재소자는 ‘제한 사범’으로 분류해 가석방 심사를 까다롭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도와 관련해 단순히 폐지 여부를 물었을 때는 ‘당장 혹은 향후 폐지’ 의견이 20.3%에 불과했지만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하면 폐지에 동의한다’는 비율이 66.9%에 이르렀고, 대체 형벌로는 일정기간 가석방 없는 상대적 종신형(38.0%)보다는 사면이나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78.9%)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언론사나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사형제 존치 및 집행에 대한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는 설문조사 문항 구성 등에 문제가 있기도 하고, 관심이 집중되는 강력범죄 발생 뒤 실시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형과 관련해 오판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는 터라 이제 대체 형벌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페미사이드 재판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을 만난다. 그들이 재판부에 사형 선고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이의 생명권을 박탈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지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들 역시 사형이 집행이 안 된다는 측면에서, 형벌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사형 확정자는 가석방 대상자가 안 되고, 드물게 무기수로 감형되더라도 가석방 심사에 오른 바가 없다. 따라서 절대적 종신형이 없는 현 상황에서 사형 선고를 해야 가해자가 두 번 다시 이 사회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 유족·지인들이 사형 선고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숨진 피해자에 대한 위로이자, 살아남은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대화에 응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범행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깨끗하게 무기징역으로 죗값을 받겠다.” 2015년 민간인으로서는 마지막이자 최연소(사건 당시 24살)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재진이 1심 재판에서 말했던 내용이다. 장재진은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해 결별한 피해자의 집에 침입, 피해자의 부모를 살해하고 귀가한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상해를 입히는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가 1심에서 단 한 장의 반성문도 안 내면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형 선고 또는 집행이 안 되는 현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2심에서는 반성문을 67차례 제출했다. 연인을 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심아무개의 경우도 면회 온 가족에게 출소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논의했다. 살인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왜소한 피해자를 살해한 박아무개 역시 수험서를 넣어달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박아무개는 불우한 가정환경 등이 고려돼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그들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그 어떤 희망도, 미래도 꿈꿀 수 없는데 말이다.

‘절대적 종신형’ 도입 고려해야

3명을 연달아 살해하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김태현 일가족 살인사건을 맡은 1심과 2심 재판부는 김태현의 범행이 영구 격리가 필요한, 사형을 선고할 만한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희망을 버리지 않게 생을 연장했다. 김태현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행정부(법무부)의 결단에 맡긴다’며 판결문에 ‘가석방을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덧붙여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인 것처럼 표현했으나, 사형 선고가 마땅한 사건에서 사형 선고는 피하면서 늘 하던 대로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법원의 모습을 한 번 더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별개로 입법 문제는 해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사형의 대체 형벌로서 절대적 종신형 제도의 적극적인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범죄자들은 사회 복귀를 영구히 차단하고 희망을 없앨 필요가 있다. 무기징역이 범죄자들이 미래를 설계하는 발판이 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n번방 재판 방청기: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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