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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조 없는 ‘캐스퍼’ 공장? 오보입니다

빛그린산단노조 고창운 위원장

제1382호
등록 : 2021-10-05 20:03 수정 : 2021-10-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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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운 제공

‘무노조 경영의 성과’. 현대자동차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 돌풍을 두고 일부 보수·경제지가 쏟아내는 평가는 오보다. 현대차의 위탁을 받아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지지엠)엔 이미 2021년 6월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 있다. 광주 지역 빛그린산단노동조합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사·민·정이 산업단지 내 집단적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자고 합의한 데 따라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산단 차원의 노조가 탄생한 것이다.

빛그린산단노조 고창운 위원장(사진)은 3월 입사한 품질관리부 소속 사원이다. 대부분 지지엠 사원들이 그렇듯 올해 28살인 고창운에게도 지지엠은 첫 정규직 일터다. ‘노조가 없는 자동차 공장’으로 소개되는 곳에서 신입사원인 그는 어쩌자고 ‘모난 돌’을 자청했을까. “광주형 일자리엔 많은 주체가 함께한다. 사공이 많은 배에서, 어쩌면 이 일자리를 가장 걱정하고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배가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돛대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월27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고 위원장을 만났다.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전남 여수 출신인 고창운에게 제조업 노동자라는 삶의 전망은 또렷했다. 이웃한 광주에서 노·사·민·정이 함께 끌어가는 ‘광주형 일자리’ 이야기가 주목받을 때 그는 방향을 정했다. “내가 지역사회에서 오래 살아가야 하는데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으니, 좀더 잘 키워봐야겠다 생각했어요.”

노동조합이 없는 완성차 공장. 어쩌면 공정은 더욱 효율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고 위원장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상생형 지역 일자리’라는 틀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와 지역사회가 상생을 말하는데 노동이라는 주체가 빠지면 저는 절대 상생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일자리를 제일 걱정하는 단위 중 하나가 노동자일 텐데, 이들의 목소리가 안 담기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무노조 경영으로 순항해서 성공한다 해도, 애초 목표대로 신차 35만 대 판매를 달성한다 해도 그건 반쪽짜리 성공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을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주변에서도 다들 하고 있었어요. 나서는 이가 없어 앞장서게 된 거죠.”

그렇게 모인 조합원이 30명 남짓이다. 사원 수 500여 명에 견주면 아직 존재감이 옅다. 어차피 길게 보고 걷는 길이다. 산단 노조라는 다소 낯선 길, ‘노조 없는 공장’이라는 여론의 압박에 더해, 아직 노조의 효능감을 느껴본 적 없는 동료들을 설득하는 일도 또 하나의 숙제다. 지지엠 사내에선 노사 6명 동수로 구성된 ‘상생협의회’가 아직까진 노조 구실을 대신한다. “사원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협의회 차원의 피드백은 아주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임금협상 테이블이 그 구조 안에서 마련되지 않는데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중요한 싸움은 영업이익이 생기고 흑자 전환이 이뤄진 뒤에 찾아올 것이다.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갈등의 지점에 이르러서야 ‘상생’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고 위원장은 멀리 보고 그 시기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전투적 노동운동’보다 ‘전략적 노동운동’을 해야 할 시기라고 믿는다. 빛그린산단노조의 상급 단체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지만 양대 노총이 걸어온 길과 다른 노동운동의 길을 보여주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기존 노동운동과 같은 문법이라면 기업별 노조를 했겠죠. 광주에서 ‘주먹밥 정신’을 많이 말하지 않습니까. 지역을 위해선 우리(노조)가 내 것을 좀 내려놓기도 하면서, 그렇게 다 같이 조금씩 나눠서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노조 때문에 발목 잡힌다’는 말 대신 ‘노조와 함께 가니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는 공장이 됐더라’는 말이 나오도록요.”

광주=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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