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용자가 남긴 트위트가 논쟁의 불씨를 댕겼다. “청년주택을 살펴보았다. 결국은 다 5평(16㎡) 내외의 원룸. ‘사회 초년생이니까’ ‘시세보다는 저렴하니까’ 등의 말 중 어느 것도 우리가 좁고 작은 방에 살아도 ‘괜찮은’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공공임대주택은 보통 1인가구의 최저주거기준 주거면적 14㎡(약 4.2평)을 기준으로 지어진다.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라.” “돈 모아서 가정 이루고 더 나은 곳에 살면 되지.” 비난이 잇따랐다.
좁은 방은 인생의 한때 잠시 거쳐가는 ‘임시 거처’로 여겨진다. 하지만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를 뜯어보면, 청년 세대(25~34세)의 원룸 거주 기간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21>이 만난 독립 1~14년차 2030대 청년들도 1~2년마다 이사하며 3~10평 방을 맴돌지만 언제 이 ‘방’을 탈출해 ‘집’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장기적인 저금리가 맞물려 이어진 ‘영끌’ 대란도 부모님 지원을 받는 상위 20%의 이야기일 뿐이고,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는 무너졌다. 방에서 방으로 떠돌며 주식과 코인의 구원을 기다린다. 방탈출 게임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늘어나는 건 체념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라며 현실을 자조하고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털어놓는다. ‘#방말고 집에 살고 싶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방을 다 차지하는 ‘반려 건조대’와 사는 일, 재택근무 화상회의 때 마땅한 뒷배경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일을 공유한다. 2021년 청년들의 주거사다.
1929년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 이런 취지로 적었다. 자립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독립된 주거공간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민주(27)는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읊조린다. ‘버지니아 울프씨, 여기는 아직도 자기만의 방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한 서울입니다. 먼 미래에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1
‘방이 어떻게 생겼냐’는 <한겨레21> 질문에 신민주가 답하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5년여 된 신축 빌라의 원룸은 5평(16.5㎡) 남짓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화장실 맞은편 벽을 따라 신발 세 켤레 넣으면 꽉 차는 신발장, 한 칸짜리 화구, 빌트인된 세탁기·냉장고·옷장이 이어진다. 새로 들여놓은 가구라곤 책상과 서랍 두 개가 전부다. 침대 놓을 공간이 없어 이불을 깔아뒀다.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으니 연쇄적으로 책상 의자에 앉는 게 불편해진다.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제도를 이용해 확보 가능한 예산 1억원으로 없는 전세를 구하다 겨우 찾은 집이건만, 왠지 집이라고 하기에는 면구스럽다. “글쎄, 그래도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공간’이어야 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정의에 최초의 균열을 낸 건 소음이었다. 옆집 남자가 여자친구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벽을 타넘어 그의 방을 침범했다.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유튜브 방송을 보는지 아마 옆집 남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되묻게 된다. 여기가 내 방인가, 옆집 사람의 방인가. 그렇지, 그 누구의 방도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도 이 방과 방들을 둘러봤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아, 이런 방을 말한 건 아닌데!’ 하고.
사회적·경제적 독립을 도모하는 다수의 청년은 ‘방’에 머무른다. 방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임시 거처다. 자리잡는 순간, 떠남이 예정된다. 1인가구가 다수인 청년가구(가구주 연령이 만 20~34살)의 절반 가까이(42.2%)가 원룸형 주택 구조에 산다. 원룸은 침실, 거실, 식당이 벽 또는 문에 의해 차단되지 않고 공간 하나에 전부 모여 있거나 부분 분리된 ‘방’이다. 주거빈곤 가구를 표현하는 ‘지·옥·고’ (지하·옥탑방·고시원)부터 주거형 오피스텔, 연립주택, 다세대주택까지 방을 품고 있는 거처의 스펙트럼은 넓은데, 청년가구의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8.4평(27.8㎡)으로 원룸은 더 좁을 것으로 예상된다.2
“원룸이 다 똑같지, 뭐.” 성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썼던 방의 모습과 비슷해서 친숙하면서도 비루한 느낌이 들었다. 가리봉동, 이문동, 서울의 반대편에 위치한 각자의 방은 우리가 떠나온 K동 주공아파트의 문간방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김유담, 단편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 2017년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주민경(26·가명)의 빌라형 원룸은 7평이다. 학교 기숙사(3평)→ 옥탑방(7평)→ 친구 원룸(4평)을 거쳐 얻은 거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청년전세임대 제도로 보증금 200만원에 매달 27만5천원(관리비 포함)을 낸다.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외 서너 건을 뛰어 한 달 생활비 약 150만원을 버는데, 그중 5분의 1이 주거비로 쓰인다. 현관문이라고 해봤자 돌려서 여는 방문이 전부였고 낯선 이의 노크를 견뎌야 했던 옥탑방과 친구네 더부살이를 생각하면 이 방은 그나마 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테리어 애플리케이션을 참고해 옷장을 페인트칠하고 침대 옆에 책장을 세워 새로운 가구 배치를 시도했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해. 그래야만 생활을 꾸려나가는 에너지가 충전되거든. 그래도 집에 가깝지,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야.”
지금의 방이 방 하나를 두 개로 쪼갠 결과물이란 사실은 계약한 뒤에야 알았다. 새로 도배하기 위해 기존 벽지를 뜯으니 옆집으로 통하는 문이 가벽으로 막혀 있었다. 어쩐지 방음이 잘 안 되더라니. 곰팡이나 결로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일까. 화상으로 과외 수업을 하는데 괜찮은 뒷배경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이러한 조건의 단일 공간에서 모든 일상이 이뤄진다.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그렇다. 일을 마치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나만의 구분법을 만들었다. 일할 때 외출복을, 잘 때는 잠옷을 꼬박꼬박 갈아입는다. 하나의 공간에서 연속되는 여러 개의 일상을 단절하고 구분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이다.
직장인 정현아(30·가명)는 첫 번째 원룸(5평)이 그랬다. 면적에 넘쳐 흐르는 자신의 일상을 오려냈다. 청소기를 굳이 돌리지 않고 몇 번의 비질만으로도 청소가 가능한 이 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렵지 않게 선별할 수 있다. 홈트레이닝을 시도했다. 맨몸운동이다보니 앉았다 일어났다 손발을 쭉쭉 뻗어야 하는데 이렇게 ‘턱’ 저렇게 ‘턱’ 하고 부딪쳤다. 친구가 놀러와도 식사만 대강 챙겨먹고 서둘러 방을 나선다. 음식의 가짓수는 물론 종류도 제한된다. 고기라도 구우면 옷가지에 냄새가 배고 바닥까지 미끌미끌해졌다. 집 앞 카페로 나가 나머지 수다를 떨었다.
“결혼할 때 집 구하자고 참고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이러다 골방에 박혀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모아놓은 돈에 부모님 지원(2천만원), 버팀목 대출(1억원)을 받아 이사 갔다. 1억7천만원 전세에 10평이다. 그래도 원룸이지만 “뭘 하든 뭘 해도 숨이 트이는 기분”이다. 저층이었던 오피스텔 원룸은 창문을 닫아놔야 해서 식물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곳에서 화분 6개는 무럭무럭 자란다.
1인가구의 최저주거기준은 방 1개와 부엌, 총주거면적이 약 4.2평(14㎡)이다. 2004년 법제화돼 2011년 면적 기준이 상향(12→14㎡)됐다. 1인당 주거면적(주거환경)이나 평균신장(인체공학적 특성)의 변화를 반영했다. 주민경과 정현아의 방은 이 기준에 들어맞는다. 말 그대로 최저다.
최저주거기준의 면적을 넓히고 ‘적절한 방음과 환기, 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추상적 규정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하다. 국토교통부도 2018년 국토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그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현 기준에 못 미치는 ‘지·옥·고’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이 주장이 큰 동력을 얻지 못한다.
최저주거기준에 들어맞는 방은 넘쳐난다. ‘방 쪼개기’는 원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가 됐고, 초소형 오피스텔은 어디에나 있다. 부동산114 조사 결과 2020년 서울 입주 오피스텔(1만9316실)만 해도 대다수(95.4%)가 전용면적 40㎡ 이하 소형 오피스텔이고, 20㎡ 이하 초소형 오피스텔은 전체 42.1%를 차지했다.
“쉬는 공간, 티브이 보는 공간이라도 더해지면 좋겠지. 지금은 집에 들어서면 요리도구부터 책상과 침대가 한 시야에 들어와. 산만한 거야. 창고에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정현아의 말이다. 방에 정붙이는 게 쉽지 않다. 맘에 드는 가구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거니와, 사더라도 2만~5만원짜리 가성비 좋은 가구만 산다. 임시로 둘러싸인 기분이다. 한때니까, 곧 뜰 거니까 괜찮다. 그런데 불안감이 밀려온다.
경기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병훈(32·가명)도 한때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학생 때 2년여의 기숙사 생활을 거쳐 6년여 3~4평짜리 고시원을 옮겨 다녔다. 고시원 보증금은 월세(35만~40만원) 두 달 치면 족했고,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 긴 고시원 생활 끝에 3년 전 취업에 성공하고 둥지를 튼 곳은 오피스텔이다. 보증금 500만원에 관리비 10만원을 포함해 월세 60만원 정도를 낸다. 좁은 공간은 상수로 뒀다. 홀로 쓸 수 있는 부엌과 넓어진 화장실, 빌트인된 가구까지 몇 가지 조건을 개선한 것에 만족한다.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소득은 5천여만원 정도다. 면적을 더 넓히거나 투룸을 구할 법도 한데, 그에게는 이 방이 최선의 선택지다. 전세 매물이 드물고 전세금 마련도 부담됐지만, 무엇보다 전세에 돈을 묶어두느니 투자로 굴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월급을 모아 서울에 집을 산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부모님 지원은 없다. 여자친구와 결혼할 시기에 맞춰 ‘쌍끌이’로 경기도 아파트를 사는 게 목표다. 그때까지 ‘방살이’는 견딜 만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짐이 우체국 택배상자 10개를 넘어본 적 없다. 이사트럭도 부르지 않고 택배로 부치곤 했다.
그러나 목표는 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다. 2020년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아파트를 샀다. ‘몸테크’(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노후 주택에서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노리며 거주하는 재테크 방식) 하겠다며 30여 년 된 아파트에 들어간 신혼부부 친구도 있다. 부동산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그때 주식에 골몰했다. 눈앞에서 수익이 2천만원으로 불어났을 때다. 근무 중에 휴대전화만 계속 쳐다볼 순 없었다. 단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하다 말고 오후 반차를 두 번 썼다.
“소득은 거의 투자에 쓰고 있지. 언젠가 내가 집을 갖게 됐을 때 좋은 컨디션의 집을 갖기 위해서 지금 거쳐가는 공간은 대충 활용하는 거지. 이제는 이 공간에 익숙해졌어. 체화된 거 같아.” 방살이 청년들에게 집은 쉽게 소유하기 힘든 욕망으로 인해, 좌절의 대상이며, 하나의 성취해야 할 지향점이다.3 거쳐가는 곳이자 버텨내는 곳인 방에서의 거주 기간은, 그러나 길어진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백번 양보해도 한시적일 때나 유효한 말이다. 청년들의 원룸 거주 기간은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추측된다. 통계청이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살펴보면, 원룸 거주 기간이 1년 미만이라고 답한 25~29살과 30~34살의 비율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1~2년 혹은 2~3년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이 늘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거 변화의 가장 주요한 계기는 결혼이다. 청년들이 방을 전전한다는 것은 생애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은 영끌과 지·옥·고나 월세방살이로 양극화돼 있지만, 정책은 영끌에 더 관심이 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연 1.25%이던 기준금리는 5월 0.5%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장기적인 저금리가 맞물리면서 2030세대가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을 사기 시작했다. 광풍이 지나간 자리, 돌이켜보면 이는 수억원의 대출이 가능하고 부모님에게 증여받아 과도한 금융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상위 20%의 이야기일 뿐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통해 추출한 평균적인 20대는 연소득 3228만원, 순자산은 236만원, 30대는 연소득 5146만원, 부채는 8060만원에 순자산 8440만원이다.4 집값과 근로소득의 격차는 끝없이 벌어진다. 부모님 지원도, 충분한 자산도 없는 이들이 그 격차를 따라잡는 데 별 방법이 없다. 주식에 몰두하고 코인(암호화폐)에 손을 뻗는다.
김보연(27·가명)도 2020년 하반기 소액으로 코인을 시작했다. 학자금대출은 지난해 다 갚았다. 버팀목자금 대출받아 전세로 옮기기 전에는 장기간 월세를 내다보니 돈이 모이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폐장하는 오후 3시부터 코인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4천만원으로 굴리는 주식과 다르게 코인은 등락폭이 크고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물렸다가 탈출한 적이 있다. 마이너스 30(%)을 찍었다. 조심스러움은 더해졌지만 그래도 그만둘 순 없다. 굴러가는 생리를 익히며 기회를 기다린다.
정책에서 누수되는 ‘영끌’ 어려운 청년“오르는 이유도 없고 딱히 떨어지는 이유도 없잖아. 그냥 도박성으로 하는 거지. 월급 아무리 또박또박 모아봐. 1억원 모으는 데 몇 년이 걸리잖아. 그런데 3천만원 30배 불려서 9억원 됐다는 이야기가 들려. 허탈하지. 그 사람의 운이겠거니 하고 체념해.”
근로소득으로 집 사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중간 정도 소득의 계층은 연간 소득을 15.6년간 고스란히 모아야 서울에서 중간 정도 가격의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집값 상승으로 주택 구매 여력을 갖출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2019년 1월(12.9년)과 비교해 2년이나 늘었다.5
‘주거사다리’가 붕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거사다리란 보증금이 낮지만 월임대료 부담이 크고 주거 안정성이 떨어지는 월세에서 전세로 이동하고, 착실히 자산을 축적해 다시 내 집을 사는 모델이다. 청년가구의 월세 거주 비율(50.2%)은 전세(27.2%)나 자가(17.2%)를 초월한 상태다.2 저금리 시대에 전세의 월세화 경향은 가속되고 있다. 2020년 11월 전국 주택 전세가는 7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였는데, 그마저도 물량이 부족해 전세 대란이 벌어졌다.
현 정부의 주거 정책을 망라한 주거복지 로드맵의 공식 발표명이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일 정도로 주거 정책의 가장 큰 목표이지만, 다수의 청년은 누수된다. 월세방살이 청년이 대표적이다.6
“나도 (원룸에) 잠깐 살 거라고 생각했지. 학교 졸업하면 괜찮은 집에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 나도 모르게 이렇게 길게 살게 됐지만.(웃음)”
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최예진(33·가명)은 다가구주택 9평형 원룸에 산다. 2010년 강원도에 있는 원룸 크기의 소형 아파트→ 서울 복층 오피스텔→ 원룸→ 원룸인 척하는 고시원으로 이어지다 이 원룸으로 이사 온 게 2년 전이다.
월세 20만원 지원금 경쟁률 8 대 1서울에 온 뒤 계속 서대문구 인근을 떠돌았다. 본가에 잠시 거주했을 때를 제외하고 6개월~2년마다 이사했다. 많은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복층 오피스텔에 살 때 복도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려 있고 관리인이 상주해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관리비가 매달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대학가 원룸촌으로 옮겨갔다. 2층임에도 비탈길에 있어 창문을 열면 행인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그 뒤로 항상 커튼을 쳐놨다. 채광이 잘될 리 없다. 지금 방에 가장 만족하는 건 베란다의 존재다. 원룸에 건조대는 위협적이다. 빨래를 방이 아닌 공간에 널 수 있다는 게 매우 만족스럽다.
대학생도 아니고 사회 초년생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월세는 부모님이 지원해준다. 전세로 집을 얻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7천~8천만원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부모님 명의로 대출받아야 하나 생각도 해봤다. 행복주택이니 뭐니 관련 사이트를 며칠 동안 매일매일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놔버렸다. 2020년 7월 전세난으로 안 그래도 높던 임대주택의 입주 경쟁률이 2배 이상 치솟았다. 체념이 깊게 배었다. “아마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애초에 포기해버렸던 거 같아.”
얼마 전 서울시 청년월세지원사업에 지원했다. 주거비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 1인가구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가 2020년부터 시행하는 제도다. 월세 20만원을 최장 10개월 동안 생애 한 번 지원한다. 떨어졌다. 경쟁률이 8 대 1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월2일 정부가 서민·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 한도를 늘리는 규제완화 대책을 이달 중에 발표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허용률을 현재보다 10%포인트 늘리고 적용 대상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 실수요자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으니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사다리 어디쯤 위치한 걸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참고 문헌
1.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신민주 지음, 디귿 펴냄, 2021년
2.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국토교통부, 2020년 3월
3. ‘도시 속의 청년 ‘난민’: 청년들의 ‘방’ 거주 경험에 대한 문화적 분석을 중심으로’, 구승우 지음, 2016년
4. ‘영끌하는 2030세대와 1가구1주택 소유체제’, 홍정훈·김기태 지음,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2020년
5. ‘KB 부동산 보고서 주거용 편’,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0년 12월
6. ‘점유중립 정책을 통한 주거취약 청년 주거지원 방안’, 한국도시연구소,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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