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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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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반은 산양을, 반은 사람을 위해

울진 오지의 금강소나무길, 주민들이 가이드 하고
점심식사 내고 잘 곳 제공하는 생태여행 주도해
등록 2021-05-10 18:02 수정 2021-05-14 08:02
2021년 4월21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에 있는 ‘국터골’ 계곡.

2021년 4월21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에 있는 ‘국터골’ 계곡.

코로나19 이후 자연 보전과 향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을 보전함으로써 누리고, 자연을 누림으로써 보전할 동기와 역량을 얻는 생태여행지에 다녀왔다. ‘생태여행’(생태관광)은 199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개념으로, 국제생태관광협회(TIES)는 ‘자연으로 떠나는 책임 있는 여행’ ‘환경을 보전하고 지역주민 삶의 질을 보장하며 해설과 교육을 수반하는 여행’으로 정의한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북면 일대 산림보호구역에 있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생태여행지다. 지역공동체는 자연을 보전하려고 가이드 동반 예약 탐방제를 도입했고, 여행자는 잘 보전된 자연을 누리고 알아가며, 주민들은 숲길 탐방 운영과 안내에 핵심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춘 여행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걷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뿐. 지난 십수 년간 우후죽순 늘어난 걷기여행 길의 현실을 짚으며, 자연과 문화·역사 속에 파묻히기 좋은 길 10곳도 함께 소개한다._편집자주

태백산맥이 등뼈라면, 등에 손을 뻗어도 잘 닿지 않는 부위쯤에 경북 울진이 있다. 북쪽 강원도 삼척, 남쪽 경북 영덕, 서쪽 경북 봉화와 영양이 에워싼다. 동쪽은 동해다. 동해안 따라 경북에서 강원도로 넘어가기 직전이 울진이다. 실제 1963년 1월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했다.

사람 손이 잘 닿지 않은 곳이다. 울진 해안에서 내륙으로 갈수록 오지다. 울진군 2개 읍과 8개 면에서 내륙 가장 안쪽이 금강송면이다. 면적은 서울시 절반쯤 된다. 금강송면이 약 298.51㎢, 서울시가 약 605.24㎢다.(행정안전부, 2019년 12월31일 기준) 각각 인구는 1293명, 972만9107명이다. 금강송면은 서울 인구밀도 3712분의 1 수준이다. 대신 숲 밀도가 높다. 임야가 약 95%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539년 된 ‘500년소나무’

4월21일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2리, ‘500년소나무’ 앞에 섰다. 곧 개명해야 할 처지다. 1982년 조사 당시 수령 500년으로 추정했으니, 2021년 기준 539년이다. 조선 9대 성종 때 태어났다. 풍채가 위압적이다. 다른 숲이라면 으뜸으로 꼽힐 만한 소나무가 이곳에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압도적이다. 남부지방산림청이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다. 키 25m, 흉고 직경(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의 지름) 96㎝라고 적혀 있다. 황적색 수피는 노장의 갑옷을 닮았다. 보통 소나무는 수령이 약 80년 되면 거북이 등껍질 같은 수피 무늬가 선명해진다고 한다. ‘500년소나무’는 그 무늬조차 닳아 희미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난 세월 풍파를 견뎌온 노령목의 연륜이 느껴졌다. 줄기 옆 가지는 여전히 제힘을 주체하지 못한 듯 똬리를 틀다 사방으로 뻗어 있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다. 지표면에서 가장 가까운 가지도 줄기 높은 곳에서 뻗는다. 속(심재·줄기 중심)이 노래 황장목이라 부른다. 겉은 붉어 적송이라고도 한다. 북한 강원도 금강군부터 남한 울진, 봉화, 청송에 주로 분포한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분포 지역(금강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1950년대부터 울진과 봉화에서 벌채한 금강소나무를 봉화 춘양역에서 전국으로 실어 날랐다고 해서 춘양목이라고도 불렀다.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는 국내 최대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조선 후기부터 산림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이유다. 조선 숙종 6년인 1680년 황장봉산 제도가 생겼다. 황장목(금강소나무)을 보호하려고 벌채를 금지한 제도다. 금강소나무가 궁궐 건축이나 황실 관곽 제작에 쓸 만큼 우수한 목재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초까지 전국 60곳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광리 일대도 그중 하나였다. 소광1리와 소광2리에 각각 ‘황장봉계 표석’과 ‘황장봉산 동계 표석’이 남아 있다. 황장봉산 경계를 적어놓은 비석이다.

벌채와 전쟁 피해가 작았다. 오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보호했다. 1959년 농림부가 육종림으로, 1982년 이후 산림청이 천연보호림,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현재 울진국유림관리소 금강소나무생태관리센터가 맡은 소광리 일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만 37.05㎢다. 축구장 5189개 넓이다. 금강소나무 수령 200년 이상, 흉고 직경 60㎝ 이상인 나무만 8만5천 그루에 이른다고 한다. 문화재 복원용 소나무는 4137그루, 수령 500년 이상 보호수만 3그루다.

소광리 일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숲길이 있다. ‘금강소나무 숲길’ 1, 2구간이다. 북면 두천1리에서 시작해 금강송면 소광2리~전곡리를 잇는다. 1, 2구간을 축으로 삼아 다른 5개 구간 숲길이 위아래에 잎맥처럼 나 있다. 구간별로 짧게는 5.3㎞, 길게는 16.3㎞다. 7개 구간 총 79.4㎞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 산림청, 군청, 환경단체가 힘을 모았다. 자연과 문화를 보전하면서 마을 주민에게도 이익이 되고, 여행자는 자연과 지역문화를 향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500년소나무’는 2021년 기준 수령 539년으로 추정한다.

‘500년소나무’는 2021년 기준 수령 539년으로 추정한다.

오전 9시부터가 사람의 시간

금강소나무 숲길은 아무나 들어가서 걸을 수 없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라 임산물 채취를 금지하는 건 물론,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1년 내내 일반인 입산을 통제한다. 단, 가이드 동반 예약탐방제를 운영한다. 탐방 기간에 사전 예약자(하루 구간별 최대 80명)는 걸을 수 있다. 가이드가 항시 동행한다.

길은 폭신했다. 박광훈(64) 두천1리 이장은 “반년간 밟고 반년간 쉬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매해 봄~가을(보통 5~11월) 예약탐방제를 운영하고, 나머지 반년은 전면 통제한다. 밟히지 않으면 길도 숨을 쉰다. 흙 알갱이, 낙엽 조각 사이에 들숨이 찬다. 오전 9시 가이드와 함께 출발하는 예약탐방제는 숲에 사는 동식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 결과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의 국내 대표적 서식지일 만큼 자연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이다. 2009~2011년 금강소나무 숲길 조성에 참여한 서재철 녹색연합 생태조사팀 전문위원은 “산양 서식지 때문에 반년을 고민한 끝에 예약 가이드제를 운영하기로 했다”며 “모든 구간을 오전 9시에 출발해 특정 지점마다 사람이 나타나는 시간대를 일정하게 맞춰서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산림청 협조를 구해 1구간 중반부 약 2.5㎞를 걸었다. 샘터인 ‘찬물내기’에서 1㎞ 지난 지점에서 출발했다. 대광천 초소까지 1구간을 따라 걸을 참이었다. 돌계단을 오르자 연둣빛이 나는 완연한 봄날의 숲이었다. 나무와 꽃보다는 길이 보였다.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숲에 있던 흙, 돌, 나무로 길을 다듬었다고 한다. 비탈길에 돌을 쌓고 흙으로 틈새를 메워 계단을 만들고, 나무로 난간을 만들었다. 가끔 절벽 길에서 난간 구실을 하는 돌무더기를 봤는데, 옛길 그대로 둔 흔적처럼 보였다.

울진군 북면 두천1리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 들머리.

울진군 북면 두천1리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 들머리.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

숲길은 굽이굽이 휘돌아 간다. 옛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이다. 옛길은 십이령길이라고 불렀다. 울진에서 봉화까지 열두 고개를 넘어가는 약 130리(약 51㎞) 숲길이다. 금강소나무 숲길 1, 2구간은 십이령길 전반부와 겹친다. 1구간에 고개 4개, 2구간에 고개 2개가 있다. 보부상들은 조선시대부터 1950~60년대까지 바닷가 울진 죽변장과 내륙 봉화 춘양장 등을 십이령길 숲길 따라 오갔다. 바닷가에서 소금·어물·미역 등을 사서 내륙에 팔고, 내륙에서 곡식·포목·잡화·약품 등을 사서 바닷가에 팔았다. 길이 휘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봇짐, 지게, 가마를 지고 가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느리지만 힘들이지 않고 가는 길이다.

샛재는 새도 쉬어간다는 고개다. 거기 보부상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목조 단층 건축물인 ‘조령성황사’다. 십이령길을 지나는 보부상들이 스스로 안전과 번영을 비는 곳이었다고 한다. 내부 15개 현판에 1천여 명 이름이 적혀 있다. 건축물을 보수할 때마다 기부한 보부상 명단이다. 현판에 쓴 연도를 보니 을미년(1895년), 소화 10년(1935년)이 눈에 띈다. 박영웅(78)씨는 가족이 4대째 소광2리에 살고 있다. 박씨는 “한국전쟁 지나서도 보부상들이 십이령 고개를 넘어 다녔다”며 “매해 음력 4월과 10월 보부상들이 조령성황사에서 제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 시작점인 두천1리에도 보부상들이 세운 비가 남아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다. 울진과 봉화(옛 내성)를 오간 보부상들이 자신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이들(접장, 반수)의 은공을 기리는 비다. 전통은 주민들이 이어받았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개장한 2011년부터 마을 주민들이 매해 봄 조령성황사나 내성행상불망비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생태관리센터 신재수(38) 팀장은 “매해 숲길 개방 시기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탐방객의 안전을 비는 제를 올리고 있다”며 “지난해엔 두천1리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고 설명했다.

여행길은 주민들의 삶의 길

샛재를 지나자 버려진 솥과 사기그릇이 보였다. 산속 옛 주막터 자리다. 보부상들이 하룻밤 묵고 쉬어갔던 곳이라고 한다. ‘국터골’이라 부르는 계곡 따라 옛 화전민 흔적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밑동만 남은 콘크리트 기둥과 생활 집기들이다. 화전민은 산속에 터 잡고 옥수수, 감자 등을 재배하며 살던 이들이다. 국터골 따라 대광천에 이르는 숲길은 옛 화전민들이 마을을 오가던 길이다. 1968년 11월 울진·삼척지구 북한 무장공비 120명 침투 사건과 1970년대 화전 정리 사업 이후 숲길엔 화전민 흔적만 남았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마을 주민들에게 각별한 공간이다. 그 길로 학교 가고, 심부름 가고, 일하러 갔다. 익숙한 만큼 애정도 서렸다. 두천1리 박광훈 이장은 1968년 11월 당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울진·삼척에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해, 군인들이 산속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산속 군인들에게 총알을 배달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동네 친구와 2인 1조로 25㎏짜리 총알 한 상자를 ‘찬물내기’(숲길 1구간 점심 장소)까지 배달하곤 건빵 한 봉지를 받았다. 박광훈 이장은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며 “당시엔 옥수수, 칡, 밤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라 건빵 한 봉지가 귀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학생일 땐 동네 산에서 땔감을 구해 십이령길을 따라 울진 해안까지 가서 내다 팔았다”며 “그 돈으로 검정 고무신과 풀빵을 샀다”고 덧붙였다.

이현석(66) 소광2리 금강소나무 숲길 운영위원장은 “중학생 때 울진읍에서 자취할 당시 토요일에 비 오면 버스가 다니지 않아 읍에서 소광2리 집까지 종일 걸어와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당시 걸은 숲이 두천1리~소광2리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이다. 그는 마을 주민 25명과 함께 모교인 소광국민학교(1995년 폐교) 터(숲길 1, 2구간 종점)에서 금강송 펜션과 십이령 주막, 금강소나무 숲길 운영에 참여한다.

마을 주민들은 금강소나무 숲길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여행 온 이들에게 숲 생태와 마을 문화를 알린다. 탐방객과 동행하는 가이드(숲해설가) 총 17명 중 9명이 마을 주민이다(숲길이 지나는 두천리, 소광리, 전곡리 거주). 북면, 금강송면 주민으로 넓히면 현지 주민 해설사가 17명 중 13명이다. 마을 개별적으로도 전통 문화를 알리려 노력한다. 두천1리는 숲길 1구간 바릿재 너머 장평마을에 디딜방아, 탈곡기, 써레 등 옛 농기구를 전시했다. 아이디어를 낸 박광훈 이장은 “탐방객이 지나가다가 디딜방아도 밟아보고 옛 농기구를 보면 이곳 문화를 하나라도 더 알아가잖나”라고 말했다.

탐방객 점심 식사도 마을이 맡는다. 아침 9시에 출발한 탐방객들은 점심에 현지 ‘자연식’ 도시락을 먹는다. 한 끼 7천원이다. 두천1리, 소광1리, 소광2리 마을 주민들이 구간별로 나눠 도시락을 준비하고 점심 장소로 배달한다. 1구간은 두천1리가 ‘찬물내기’로 산채비빔밥을, 4구간은 소광1리가 ‘대왕소나무’ 자리로 현지 나물과 밥 도시락을 배달하는 식이다. 도시락은 “마을에서 적잖은 소득원”(박광훈 이장)이다.

자연 보전과 함께 가는 마을 소득

금강소나무 숲길 주변 마을들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탐방객도 마을 소득도 줄었다. 2020년 탐방객은 1만2155명으로, 2019년 3만7531명에서 32% 수준으로 줄었다. 마을 소득은 2억600만원에서 6519만1천원으로 약 3분의 1로 떨어졌다. 도시락과 식당 수입이 줄고, 마을 주민 개인이 민박집 운영을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 등으로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숲길 개장이 늦어졌다. 4월29일 오후 3시 금강소나무 숲길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울진국유림관리소, 울진군청, 산림청 산하기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금강소나무 숲길 운영 위탁 기관), 두천1리, 소광2리, 소광1리, 전곡리 마을 대표가 참석했다. 숲길 개장 시점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처음부터 우려 섞인 말들이 나왔다. 이현석 소광2리 운영위원장은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70대 고령층이라 코로나 걱정이 많았다”며 “게다가 지난해(2020년)에 문 열었더니 탐방객이 적어 오히려 적자가 나서 그 걱정도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회의에선 개장일을 결론 내지 못하고, 추후 소광2리 주민들이 모여 다시 의논한 끝에 가까스로 개장일을 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5월8일부터 11월30일까지 열린다.

금강소나무 숲길에서 자연 보전과 마을 소득은 함께 간다. 소득을 위해 보전하고, 보전을 위해 ‘소득한다’. 자연을 보존하고 지역주민 삶의 질을 높이며, 여행자들은 자연·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생태여행’이 사람 손 잘 닿지 않은 이곳에 있다. 옛 보부상들이 십이령 고개 따라 물건과 함께 말과 정보를 날랐듯, 숲길 탐방객들이 자연 생태와 문화 가치를 전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울진=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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