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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에 신생아 포개기’ 신고했더니…

국가가 인정하는 ‘피해의 값’ 턱없이 적어, 국가는 공익신고자의 조력자 돼야
등록 2021-03-13 14:43 수정 2021-03-19 01:20
신생아보호실에서 간호사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생아보호실에서 간호사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3월2일 경기도 김포경찰서가 신생아 입에 젖병을 물려두고 아기를 방치한 ㄱ산부인과병원 신생아실 간호조무사들을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분만수술 중 아이의 눈에 상처를 입히고 이를 진료 차트에 기록하지 않은 이 병원 의사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ㄱ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조무사 ㄴ씨가 2020년 9월 ㄱ산부인과의 ‘셀프수유’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 포개기’ ‘분만수술시 신생아에게 생기는 잦은 상처’ 등을 공익신고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밝혀진 사실들이다. 이제 겨우 경찰 조사가 끝났을 뿐이어서, 검찰과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ㄴ씨가 지나야 할 시간의 터널은 한참 남았다. 이 결과를 받아들기까지 ㄴ씨는 이미 많은 두려움과 혼란의 시간을 겪었지만 말이다.

해당 산모에게 알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

ㄴ씨는 2020년 5월 병원 소재지에 있는 김포경찰서에 찾아가 한 인큐베이터에 신생아 두 명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셀프수유’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 포개기’ 등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운영 실태를 말하고 어떻게 신고할 수 있는지 등을 상담했다. 경찰은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해당 행위를 처벌할 법이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위와 식도 사이 괄약근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의 입에 젖병만 꽂아두고 방치하는 ‘셀프수유’는 분유가 식도로 역류한 경우 기도로 들어가 폐에 분유가 차서 폐렴을 일으킬 수 있고, 기도가 막히면 질식사할 수도 있다. 또 분유가 중이로 들어가면 중이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모자보건법은 산후조리원에서 셀프수유 행위를 금지하지만, 수유가 의료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작 똑같이 신생아가 태어나서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머무는 산부인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신생아의 침상 간격, 인큐베이터 치료 규정 등은 의료법이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큐베이터에 신생아 두 명 넣기’ 또한 처벌이 어렵단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많은 부모가 들으면 기절할 일이다. ㄴ씨는 이런 사실을 2020년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올렸는데 “병원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와 괴롭힘뿐이었다”고 썼다. 수사기관과 지역 보건소도 병원의 행위에 대해 처벌할 의지가 없다는 생각에 ㄴ씨는 ‘자식이 있는 엄마로서 산모들에게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모에게 전자우편을 보냈고, 해당 산모는 그 사실을 인터넷 맘카페에 올렸다. 신고자 ㄴ씨는 병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ㄴ씨는 명예훼손 피의자로 수사받으면서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최정규 변호사는 셀프수유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없다는 사실에 한 차례 분노하다 아동복지법을 떠올렸다.

자신이 보고 겪은 사실을 인정했을 뿐인데

아동학대 행위를 금지하는 아동복지법은 ‘성인이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를 학대 행위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다른 법을 찾아서 신고했고, 경찰은 이 법에 따라 신고자의 신고 내용이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간호조무사들을 입건했다.

신고자 ㄴ씨의 다른 신고는 인정되지 않았다. ㄴ씨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아이들이 울 때 싸개로 꼭꼭 싸매서 인큐베이터에 넣었다’고 했지만 증언은 인정되지 않았고, ‘인큐베이터에 신생아를 두 명씩 넣어두거나, 황달치료실에 두 명을 같이 넣고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는 신고는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ㄴ씨가 병원에 의해 고발된 명예훼손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익신고자는 공익신고로 순식간에 여러 쟁송 절차의 당사자가 되기 일쑤다.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 ㄷ씨는 ‘시설 내 장애인 간 성폭력 방조’에 대해 제3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실에 대해 인권위에서 사실관계를 진술했다가 시설장에게 찍혀 사회복지사 업무와 무관한 ‘스테이플러 작업장’으로 전보 조처됐다. 자신이 보고 겪은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을 뿐인데도 결국 징계 절차에 회부되고 괴롭힘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고초에 대해 국가가 인정하는 ‘피해의 값’은 턱없이 적다. 공익신고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실을 진술할 때도 ‘공익신고자 등’에 해당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ㄷ씨에게 부당 인사 조처를 한 시설장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을 처분받았다. ㄷ씨는 시설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1심에서 5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증언의 대가로 직장에서 모욕당하고 결국 사회복지사 일을 접고 택배노동자로 일하는 ㄷ씨에게 700만원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시설장 벌금 200만원, 배상금 500만원

최정규 변호사는 “ㄴ씨는 처음 병원 내에서 셀프수유 등에 대해 문제제기했을 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고, ㄷ씨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공익신고를 하면 곧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고 이 괴롭힘이 또 다른 쟁송 절차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낼 방법이 무엇일지, 손해배상액 기준은 적절한지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와 ㄷ씨 사건은 모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최정규 변호사가 변론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법률 구조금을 통해 공익소송으로 진행 중이다. 두 신고자의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에 든든한 조력자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신고자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한데 국가가 어떻게 제대로 조력자 역할을 할지가 숙제로 남아 있다.

박수진 경기도 공익제보지원팀장

*‘제보자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박수진 팀장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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