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사진)의 머릿속은 온통 ‘청년’으로 가득 차 있다.
청년 불안정 노동과 기본소득 등을 연구한 학자인 그는 2020년 9월부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청조위) 민간 부위원장(장관급)을 맡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의 청조위는 17개 정부 부처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부위원 20명, 청년 당사자와 정책 전문가 등 민간위원 20명으로 구성된 청년정책의 컨트롤타워다. 2020년 8월 청년기본법(19~34살 청년 대상)이 시행되면서, 그동안 정부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청년 관련 정책을 모아 5년마다 ‘청년정책 기본계획’이라는 큰 틀을 짜고 주요 사항을 심의·조정하는 구실을 하기 위해 설립됐다.
“청년기본법이 시행되고 청조위가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청년이 정부 정책의 대상으로 호명된 거예요. 그동안은 생애주기의 특정 연령대에 해당하면 청년정책이라고 불렀을 뿐, 청년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보고 청년들이 바라는 미래 비전을 세워둔 상태에서 정책을 수립하진 않았거든요.”
여러 통계 수치가 보여주는 지금 청년의 삶은 위태롭다. 당장 구직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취업할 의사가 있는 잠재 구직자나 짧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 등을 합치면, 15~29살 청년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27%까지 치솟았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만 집계하는 청년 실업률(1월 기준 9.5%)을 크게 웃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재난이 덮친 탓이다.
‘코로나 청년세대’는 앞으로 5년간 일자리 감소, 신규 채용 위축 등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 한국만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시기 청년세대를 ‘록다운 세대’(Lockdown Generation)로 이름 붙였다. 교육과 직업훈련 기회가 막히고, 소득이 줄어들고, 앞으로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3중으로 봉쇄(록다운)된 청년을 빗댄 말이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난 3월3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 대상을 애초 계획(5만 명)보다 갑절 늘려 11만 명까지 지원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교수는 발표 자료를 훑어보고 정부 관계자들이랑 통화하느라 분주했다. 청조위가 2020년 12월 발표한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들어온 세부 시행계획 자료 1천여 쪽도 검토 중이다. 청조위는 3월 말에 본위원회를 열어 세부 시행계획을 의결·발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시대 청년들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나.
“지금 가장 시급하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청년 노동시장과 마음 건강 문제다. 확장실업률이나 20대 우울증 비율이 이렇게 높게 치솟은 적이 없다. 청년층의 어려움은 중장년층, 노년층보다 더 심각하다. 앞으로 생애 단계가 많이 남아 있는 청년일수록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효과가 있고, 훨씬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첫 노동시장 진입과 이행(이직)이 늦어지거나 어려워지면 생애 전체에서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다. 그다음에는 독립적인 가구 형성이 늦어지고, 주거 불안이 생기고, 중장년이 되어도 일자리 불안이 이어진다. 노년이 됐을 때도 사회보험에 가입한 이력이 짧아서 연금 등을 적게 받아 노후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게 될까.
“IMF 때는 즉각적으로 거리에서 실직자, 노숙인 등이 보였다. 중장년층 자살과 가정 파괴 등의 뉴스도 많이 나왔다. 지금은 물리적으로 거리에 쏟아져나오는 실직자가 보이지 않는 시대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이미 노동시장에서의 불안정성이 ‘실직’으로 나타나지 않는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업사회와 달리,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시대다. 실직이냐 아니냐가 불안정성의 지표가 아니다. 일하면서도 불안정한 노동자, 장기 취업준비생 등은 그 수가 늘어나도 여전히 (실제 거리에서나 통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자체가 20여 년 전과 달라졌기 때문인가.
“청년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비정규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 등 고용주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모호한 고용형태를 차례로 경험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들어가는 문은 점점 좁아졌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스펙을 쌓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취업 학원에 다니는 등 개인의 인적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기반도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양극화가 심하다. 청년이 느끼는 불안정성도 양극화되는 양상인데, 그러다보니 어떻게 줄 세울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공정 논쟁도 점점 첨예해진다. 경쟁 심화는 우울감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변화에 걸맞은 제도나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위기가 닥쳤다. 청년 가운데서도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는 집단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승윤 교수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에서 ‘누락된 중간지대’라는 개념으로 지금 청년들이 처한 위기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집이 가난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자가 아니어서 생계급여 등을 받지 못하는 청년이 있다고 해보자. 이 청년은 특수고용직, 프리랜서나 플랫폼노동자로 일한다.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모호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다. 사회보험료를 낼 만큼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가 없다. 이 청년은 생계급여 같은 공공부조 대상인 빈곤층과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제도 혜택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중간지대’에 있다는 이유로 사회정책에서 배제되는 셈이다. 이런 청년들이 진입장벽이 낮은 플랫폼노동 등의 일자리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각종 배달서비스 노동자, 디자인·게임 관련 업무 용역, 프리랜서 요가·필라테스 강사, 여행업 프리랜서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등 안정적인 일자리에 진입하는 경쟁이 심해진 가운데, 청년들이 선택의 여지 없이 그리고 진입장벽이 낮은 플랫폼노동 시장 등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 기존에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됐던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 노동자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구분도 안 되는 ‘모호한 노동자’ 수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여파가 특히 여행업, 항공업 등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치명적인 것 같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언제까지 버티라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한데.
“서비스업, 도소매업 등 특정 업종의 타격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큰 타격을 받은 쪽을 어떻게 보상해주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 지금 코로나19 관련 대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비상한 상황이니 단기적으로 재정을 지출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등 비상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좀더 중장기적인 로드맵(이행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 위기는 코로나19 탓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경제, 보건, 기후위기 등이 겹친 복합적인 위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정말 사회를 전환하는 정책을 시도해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녹색전환, 생태주의 등 미래지향적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청년이 경험하는 막다른 골목의 출구를 생태전환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어떤 녹색일자리 창출이 가능한지 아래에서부터 지혜를 모아, 청년들이 창의적인 녹색일자리를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만들어내면 이 자체를 일로 인정해주고 참여소득이든 청년수당이든 지원해주는 형식으로 가보면 어떨까.”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청년 출발 자산제도’ 도입을 주장했다고 들었다.
“청년에게 기초자산(종잣돈)을 한꺼번에 줄 거냐, 정기적으로 나눠줄 거냐, 배당 방식으로 줄 거냐 등 조금 구체적인 논의까지 오갔지만 최종 계획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당장 시행되는 건 아니지만, 올해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아보려고 한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일자리보장제, 참여소득제, 기초자산제 등 청년정책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만의 논의가 아니라 청년 당사자 사이에서도 논의되기를 바란다.”
이 교수는 청년 문제가 해결되려면 “청년 당사자가 발언할 수 있는 통로,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책 결정 구조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구구조상 지금 청년세대는 전체 인구의 20%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이른바 ‘엔(n)86’ 세대가 청년이었을 때와 인구구조 자체가 다르다. 절대적인 수 자체가 줄어든데다 노동시장 이행도 늦어진 탓에 30대 학자, 국회의원, 노조위원장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청년이라는 자체가 소수자가 되는 거다. 청년이 정치적·사회적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구조가 되고.”
청조위 민간위원 20명 가운데 12명은 청년 당사자다. 이른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 거주하는 저소득 청년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대학가 등에서 벌어지는 ‘불법 방 쪼개기’를 특별 점검하는 등 청년의 삶에 실제 도움이 되는 정책이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에 포함된 데는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한몫했다. “청년들이랑 일하면서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더라. 청년 민간위원들이 직접 정부 부처 관계자를 만나서 정책을 설득하고 움직였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 변화를 추동한 것은 청년들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다시 ‘청년’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청년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원해줘야 하는 정책의 대상자인 동시에, 사회와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당사자다. 이 교수는 청년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경험하는 어려움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연대하자. 청년세대 안에서, 그리고 다른 세대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1353호 표지이야기 - 여행업계 청년 코로나 실업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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