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앞서 2017~2018년 구치소에 갇혀 있던 날수다. 2021년 1월18일, 다시 354번째의 날이 시작됐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 86억여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법정 구속됐다.
1078일 만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2월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나서 1년 남짓 형기를 채운 뒤였다. 갇힌 시간(1년)보다 풀려나 있던 시간(3년)이 길었다. 2021년 1월18일 이 부회장은 다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파기환송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거나, 이 부회장과 특별검사 양쪽 모두 재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면 2022년 7월 풀려난다. 물론 먼저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제껏 실형을 선고받은 재벌 총수 자체가 손에 꼽혔고, 실형을 산다 하더라도 그나마 형기를 꼬박 채운 재벌 총수는 없었다.
아버지인 고 이건희 회장만 해도 그랬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996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바로 특별사면됐다. 이른바 ‘X파일 사건’으로 알려진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 역시 2009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불과 넉 달 만에 사면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 단 1명을 위해 특별사면권을 행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가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서 “과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방법을 삼성 쪽이 스스로 분석해 (이를 피해갈) 대응 방안을 마련해둘 필요”를 언급한 것도 그래서다. 경영권만이 아니라 불법 비자금과 정경유착 관행도 대물림된 탓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처럼 구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징역 2년6개월의 형량을 두고 ‘봐주기 판결’과 ‘재벌 총수 단죄’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재벌 총수들에겐 ‘정찰제 판결’이 내려졌다.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는 일이 많아 ‘3·5법칙’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고 이건희 회장을 포함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박용성 전 두산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고 조양호 한진 회장에게 모두 ‘3·5법칙’의 형량이 선고됐다.
김종보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하지는 않았지만, 처단형(판사가 법률적으로 가중·감경해 선고할 수 있는 형) 범위 안에서도 최소인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는 것은 ‘또 다른 재벌 봐주기’에 불과하다”며 “사법부가 재벌 범죄를 엄단하는 추세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2013년 이후로는 재벌 총수의 범죄에 실형 선고가 늘어나는 분위기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구치소나 교도소에 갇힌 기간은 형량에 견줘 길지 않았다. 2013~2018년 9월 재벌 총수 일가가 금고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분석해 펴낸 ‘재벌범죄백서’(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실)를 보면, 재벌 총수 가운데 최태원 회장의 구금 일수가 924일로 가장 길었다. 계열사 자금 465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 회장은 확정된 전체 형량(징역 4년)의 63%가량을 채웠을 무렵인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심 징역 2년6개월)과 김승연 회장(1심 징역 4년)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각각 233일과 143일만 수형생활을 했다. 신 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형이 선고돼 풀려났고, 김 회장은 1심 선고 뒤 다섯 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나왔다(표 참조).
구속집행정지와 보석, 가석방, 특별사면은 재벌 총수들이 수형생활을 피하기 위해 자주 동원하는 카드다. 이호진 전 태광 회장은 2011년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됐으나 63일 만에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간암 등의 이유였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7년 넘게 수감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받았다. ‘황제 보석’ 논란이 일자, 검찰은 2018년 다시 그를 구속했고 이듬해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은 2013년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됐으나 만성신부전증 등 건강이 악화해 구속집행정지와 재수감을 반복했다. 그는 2015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돌연 재상고를 포기하고 곧이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이 됐다.
이 부회장에 대해서도 역시 벌써부터 가석방이나 특별사면 가능성이 거론된다. 형법 제72조에 따라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형량의 40%가량을 채웠다. 형이 확정돼야 특별사면 대상이 되기 때문에, 변호인단이 재상고 포기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거짓 정보를 유포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임정엽)는 공판준비기일을 1월14일로 잡았다가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미뤄둔 상황이다.
353일 동안 총 439회. 이재용 부회장은 앞선 수감생활 중 하루 평균 1.24회 변호인을 접견했다. 재벌 총수에게 변호인 접견은 단순히 다음 재판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업 경영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통로로 이용된다. 이른바 ‘황제 접견’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변호인 외에 일반인 접견은 금지돼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 부회장이 이번엔 ‘옥중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징역형 집행종료 이후 5년간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한다. 경제개혁연대는 1월19일 논평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법무부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이재용 부회장 해임을 즉각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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