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동부구치소 출소자 “누워서 고개돌리면 얼굴”

확진자 1천 명 나온 동부구치소 출소자가 말하는 당시 상황
남자 수용동에 무더기 확진자 있다는 소식을 뉴스 통해 알아
등록 2021-01-17 11:14 수정 2021-01-20 01:09
12월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확진자 과밀수용 등 불만 사항을 직접 적어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확진자 과밀수용 등 불만 사항을 직접 적어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겨울 시작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은 1·2차 때와는 달리 감염병이 누구를 목표 대상으로 삼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대부분 구치소,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시설에 거주하는 수용인이다.
동부구치소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가 1천여명을 훌쩍 넘었다. (2021년 1월14일 기준 1193명·법무부) 남자 수용동과 달리 확진자가 없었던 여자 수용동에서도 지난 10일 첫 확진자가 나왔고, 12일 5명 추가 확진됐다. <한겨레21>은 1월 13일과 15일 서울동부구치소 여성 출소자 2명과 전화 인터뷰해 1천여 명의 확진자가 쏟아졌던 지난 한 달의 생활을 물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 명에 육박하던 2020년 12월 말, 40대 여성 김민선(가명)씨는 서울동부구치소를 벗어났다. 그는 출소 직전 한 달여 공포에 떨었다. 1년여 수용된 동안 5인실 방에서 수용자 8명이 부대끼며 지냈다. 출소는 정해졌지만 구속은 예정이 없다. 수용자는 예고 없이 갑자기 늘었다. 8명이 지내던 방을 9명이 쪼개 쓰는 일도 허다했다.

2020년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뒤에도 구치소 쪽은 수용자 과밀도를 낮추기 위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무서운 전파력으로 번졌으나 구치소 안에서 거리두기는 불가능했다. 누우면 누군가의 머리나 발과 맞닿았다. 몸을 뒤척여 돌아눕는 것도 어려웠다. 감염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누워서 고개 돌리면 바로 얼굴이에요. 마스크를 하든 안 하든 밀착할 수밖에 없죠. 사람이 많고 환기가 안 돼 자다 깨면 공기가 탁해서 힘들었어요. 방에서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더라고요.”

김씨는 같은 방의 아픈 이가 외부 병원이라도 다녀오면 소독은 제대로 하고 들어왔는지, 혹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러나 구치소 쪽에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다. 8명이든 9명이든, 구치소 쪽이 사람을 방에 더 넣는다면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치소가 ‘갑’이고 수용자는 ‘을’이다. 그래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구치소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11월27일께 갑자기 매일 30분씩 허용된 운동과 일주일에 두 번 20분간 허용된 목욕은 물론 가족 접견 등이 금지됐다. 구치소 쪽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구치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만 수용자 사이에 퍼졌다. 주임 교도관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여자 확진자는 없다”는 말뿐이었다. 여자 수용자들이 모인 3층과 4층 주변으로 짐을 옮기는 건지 손수레 끄는 소음이 들렸다. 남자 수용동에서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비확진자끼리 분리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였지만 소음의 정체를 알 방법이 없었다. 며칠 뒤 텔레비전 뉴스에서 구치소 안 집단감염 사태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1·2차 전수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면마스크를 빨아 쓰다가 구치소 쪽이 무상 지급한 KF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구치소 내부 통제는 더 강화됐다. 운동과 목욕이 금지되니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도서 대출도 금지됐다.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운동도 목욕도 못하고 예민해지니,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자주 싸우고요. 그냥 그렇게 멍 때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였어요.”

또 다른 여성 수용자 박성현(30대·가명)씨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11월27일 운동, 목욕, 접견 등이 금지된 뒤 소문을 통해서 구치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달 18일 1차 전수검사 때도 구치소쪽으로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설명은 듣지 못 했다고 말했다. 19일 여자 수용동에 “코로나 검사 결과 전원 음성”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여자 수용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지만, 그날 텔레비전 방송 뉴스에서 직원 2명, 수용자 185명이 확진됐다는 전혀 다른 뉴스를 접했다. 구치소 쪽은 층별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데, 여성 수용자가 모여있는 3·4층에 코로나 검사 결과를 전하면서도 같은 건물을 쓰는 남성 수용자의 무더기 확진 소식은 전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운동도 안 되고 접견도 중지되는데 딱히 설명이 없어서 ‘혹시 누가 코로나에 걸렸나’ 다들 그렇게 생각만 했죠. 전체 방송으로는 전원 음성이라고 안심하라고 했는데, 뉴스에서는 185명 확진됐다고 하니까요. 뉴스에서 185명이 전원 남성이라는 설명도 듣지 못했고요. ‘전원 음성이라는 게 거짓말인가’ ‘사람들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맞구나’ 생각했어요.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누구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제일 불안하고 답답했어요.”

12월24일 김씨와 박씨 모두 동부구치소를 벗어났다. 이들은 출소 당시 자가격리 방침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출소한 지 4일이 지나서야 서울 송파구 보건소에서 ‘밀접 접촉자에 해당한다며 자가격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박씨가 ‘지난 며칠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역학조사 하느라 시간이 걸려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법무부가 모든 수용자가 출소할 때 관할 보건소에 출소 사실을 통보하기 시작한 건 12월26일부터다. 음성 판정을 받은 출소자에게도 밀접접촉자에 준해 자가격리를 하라고 고지한 것은 29일부터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소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았으나 출소 뒤 다른 수용자가 확진 판정을 받아 해당 출소자가 추가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 자가격리 고지는 출소 뒤 이뤄진다”고 했다. 여자 수용동에 집단감염 사태를 알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 “수용자들이 동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방송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민선씨는 그저 구치소 안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악독하게 들어온 사람도 있었지만, 친구끼리 돈 빌렸다가 늦게 갚아서 들어온 사람도 있고, 피해자와 합의했는데 못 나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데 언 밥에 시큼한 고기로 식사를 때운다는 사람들 편지 받으면…. 모르겠어요.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표지이야기 - 코로나19 격리시설 보고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