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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살 할머니는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등록 2021-01-15 17:42 수정 2021-01-17 01:52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2021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할머니들 사진.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2021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할머니들 사진. 연합뉴스

30년이 걸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기까지.

1991년 12월6일. “내 평생을 일본군에게 짓밟히고 비참하게 살았다.”(고 김학순 할머니) 김 할머니 등은 일본 정부에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냈다. 일본에서, 미국 워싱턴에서 소송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도, 미국 연방대법원도 끝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주진 않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맺어 일본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거나, 세월이 너무 흘러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등의 이유였다. “재판에는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3년 일본에서 고 송신도 할머니의 발언)며, 할머니들은 법정 안팎에서 30년을 싸웠다.

반인도적 국가범죄에는 ‘국가면제’ 적용 안 돼

2021년 1월8일. “일본 정부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처음 이긴 날이다.

판결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한국 법원이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이른바 ‘주권면제’ 또는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의 논리는, 다른 나라에 대한 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고 본다.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같은 반인륜적,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국가면제’가 인정되느냐다. 소송을 낸 12명은 1938~45년 납치되거나, ‘취직시켜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중국, 일본 등으로 끌려간 뒤 일본군에게 “귀의 고막이 파열”되거나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맞으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성폭행당했다. 재판부는 “(이는) 당시 일본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라서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받을 ‘개인의 권리’가 ‘국가의 권리’에 우선해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제인권사에 큰 획을 그은 판결이다.” 판결이 나온 소송과 별개로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다른 손해배상소송(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에서 원고를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반인도적인 국가범죄에 대해 폭넓은 배상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도 1940년대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독일의 책임을 물은 바 있다.

1991년 12월6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겪었던 고통을 증언하며 눈물을 닦는 고 김학순 할머니.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AP 연합뉴스

1991년 12월6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겪었던 고통을 증언하며 눈물을 닦는 고 김학순 할머니.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AP 연합뉴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에 그쳐”

두 번째 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일본 쪽은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들어, 설사 법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손해배상을 청구할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 협상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원천 부인했고, 협정을 체결했다고 해서 국민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2015년 합의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간 정치적 합의가 있었음을 선언하는 데 그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대한민국 정부에 위탁한 바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합의로 인해, 손해배상 청구권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맞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첨예하고도 예민한 대목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일어난 ‘사법농단’과 관련한 재판에서도 이 사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직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시해서 당시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던 부장판사가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은 3년 넘게 재판부 서랍 속에 잠자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소멸했다고 판시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의견이 적혔다. 법원행정처가 판결에 영향을 미쳐,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결정을 뒷받침해주려 했다는 의심이 드는 정황이다.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 법원에서의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며 재판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이번 1심 판결은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1인당 배상금 1억원이 지급될 가능성은 작다. 가뜩이나 냉각된 한·일 관계 탓에, 정부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외교부 대변인은 1월8일 논평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는 문구를 굳이 넣었다. 판결문에 적시된 ‘정치적 합의’라는 재판부의 판단을 다분히 의식해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이 판결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퍼뜨릴 것인지를 한국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며 “세계 어느 재판소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판받을 권리가 인정받지 못했는데, 한국 법원이 ‘인권’의 문제로 ‘주권면제’ 논리를 넘어서고 일본 정부에 대한 탈식민적 방향성을 용기 있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106살 할머니는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사법부의 판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용수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다른 소송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선고 예정일(1월13일)을 이틀 앞두고 돌연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변호인 쪽에 통보했다. 법정에서 직접 판결 선고를 듣겠다며 13일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을 알아보던 이용수(93) 할머니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미 ‘이긴’ 재판에 원고로 참여했던 이옥선(93) 할머니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배상금 1억원은) 크게 의미 없다. 걔들(일본 정부)이 사과를 안 하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 돈보다 (위안소 운영)한 걸 했다고 해라.” 재판 결과를 들은 할머니의 반응을 ‘나눔의 집’ 김대월 학예실장이 전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건에 원고로 참여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32명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 분은 9명뿐이다. 모두 아흔을 넘어, 많게는 106살인 이분들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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