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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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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자살률, 2008년과 닮았다

20대 초반 여성 자살률 크게 늘어난 코로나 우울, 12년 전 경제위기 상황과 비슷…
“노동·주거·생활·젠더 폭력 전반의 문제”
등록 2020-12-14 17:41 수정 2020-12-16 21:32
20~30대 여성들의 우울증과 자살 증가에 대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앞을 걸어가는 젊은 여성 뒤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겨레 자료

20~30대 여성들의 우울증과 자살 증가에 대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앞을 걸어가는 젊은 여성 뒤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겨레 자료

‘2030(20~30대)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높다.’ ‘청년보다 노인 자살이 더 심각하다.’ 최근 ‘2030 여성 자살 위험이 커졌다’는 분석이 잇따르자, 반박이 이어졌다. 인터넷 논쟁은 젠더 갈등 양상까지 띠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먼저 ‘나무’(2030 여성 자살률)에 앞서 ‘숲’(전체 자살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우울증, 생활고 등의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가 매달 1천 명 안팎이다. 인구 10만 명당 26.9명(2019년 기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OECD 평균 자살률 11.2명의 2배가 넘는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은 47.7명에 이른다. 남성 자살률(38명)은 여성(15.8명)의 2.4배다. 남성이 여성에 견줘, 노인이 청년에 견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대 여성 자살률에 주목하는 이유

문제는 추이다.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2020년 1~9월 자살 사망자(9755명)는 전년보다 5%포인트(518명) 줄었다. 그런데 성별로 나눠보면, 조금 다른 양상이 보인다. 남성 자살자 수(6732명)는 전년보다 줄었으나(8.9%포인트), 여성(3023명)은 늘었다(4.8%포인트). 특히 2020년 1~6월 20대 여성 자살자(296명)는 전년(207명)보다 크게 늘었다(보건복지부 자살 현황 자료). 최근 더 위태로워 보이는 ‘나무’(2030 여성 자살률)에 주목하는 이유다. 김현수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20대 여성 자살 시도자 수, 위기 상담 전화 건수 등이 늘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스페인독감, 사스(SARS) 같은 팬데믹 이후에 경제적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이 증가했는데 핀셋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러 지표가 2030 여성을 ‘위험군’으로 가리킨다. <한겨레21>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1~7월 우울증 등 기분(정동)장애로 인해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 수는 전년보다 8.7% 늘었다. 무엇보다 젊은 여성 환자의 증가가 뚜렷했다. 19~34살 여성 환자가 1년 새 34%가량 늘었다. 25~34살 남성 환자도 21.1% 증가했다(그래프1).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10월 발표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우울 위험군’으로 분류된 응답자 비중이 여성은 26.2%로, 남성(18.1%)보다 높았다(그래프2). 이 조사 보고서는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에서 20대 여성의 증가폭이 가장 컸다”고 분석했다. 2020년 9월 전국 성인(2063명)을 대상으로 피로도, 수면 문제,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다.

여성은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 될 위험성이 크다. 자살 동기를 분석해보면, 여성의 절반 이상은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로, 남성은 경제적 이유와 정신적 문제(각 30% 정도)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높은 노인 자살률에 그동안 가려져 있던 청년 여성의 자살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장 교수가 지난 33년간(1985~2017년) 자살률 증가폭을 성별과 연령에 따라 분석한 결과(그래프3)를 보면, 2030 여성의 자살률은 연평균 5%씩 높아졌다. 20~30대는 75살 이상 노인을 제외하면 여성의 자살률 증가폭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연령대다.

일본도 40살 이하 여성 자살자 수 10% 늘어

‘코로나 우울’이라는 사회 전반적인 우울 정서가 여성에게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2030 여성이 보내는 경고음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12월8일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주최로 열린 ‘자살예방 정책포럼’에서 “최근 연구 과정에서 만난 2030 여성 대부분이 만성적인 우울감을 호소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하더라. 남녀 차별과 다양한 형태의 젠더 폭력을 겪으면서 그동안 청년 여성에게 축적된 우울감이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만나 증폭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러 위기가 겹치면서, 우울과 자살 증가라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무엇이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청년’과 ‘여성’이라는 두 열쇳말에 그 답이 숨어 있다.

12월8일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코로나19와 청년 정신건강’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서울에 거주하는 19~34살 청년 2011명에게 ‘2020년 2월 이후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26.8%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울증을 자가진단하도록 했더니, 중증도 이상 우울도를 보인 청년이 셋 중 하나(36.3%)꼴이었다. 특히 여성일수록 미래 직업 전망이나 교육·훈련 기회, 주관적인 건강 상태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률이 높았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모두 어렵지만,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옮겨가는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은 일자리 자체가 줄면서 아예 초기 이행조차 실패하는 상황”이라며 “가장 활발하게 관계맺기를 하던 청년 세대의 특성상 관계 단절과 고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충격도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은 청년층, 특히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2020년 10월 취업자 감소폭은 여성(27만 명)이 남성(15만 명)의 배에 이르렀다. 판매·서비스 업종에서 여성 임시직 일자리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여성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6월 이후 40살 이하 여성 자살자 수가 예년보다 10% 넘게 늘었다.

‘가부장’의 시간이 많이 늘어날 때

이 대목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덮쳤던 2008~2009년으로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당시 20대 후반 여성의 자살률은 26.1명(2008년), 29.5명(2009년)까지 치솟았다. 처음으로 여성 자살률이 남성 자살률보다 높아졌다(그래프4). 20대 초반 여성 자살률도 남성과 엇비슷하게 늘었다. 평소 남성 자살률이 많게는 여성의 2배에 이른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했다. 왜 이때 평소보다 많은 2030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정혜주 고려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2008년에 나타난 여성 자살률 증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난 노동시장의 변화, 그 안에서 구조적인 여성 차별로 인한 저임금·노동빈곤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분석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정규직 남성의 실직으로 나타났다면, 2008년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가 겹친 2020년 상황은 2008년과 닮은꼴일 수 있다. 정 교수는 “자라는 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크게 차별받지 않았던 2030 여성이 열심히 노력해도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차별로 인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과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탓에 가부장적인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여성이 돌봄을 더 많이 짊어지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정신건강의 위험요인”이라고 말했다.

미취업 상태인 미혼 여성들만 고통스러운 상황인 것은 아니다. 김선영 이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자녀 양육을 전담하거나 재택근무하면서 돌봄노동까지 맡아야 하는 여성들이 우울 증상이 악화해 병원을 찾는 일이 늘었다”며 “코로나19 유행 초기의 공포와 불안에서 이제는 우울과 분노, 짜증으로 감정이 변해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업주부가 자녀를 돌보는 시간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하루 평균 9시간6분이었으나,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선 12시간38분으로 늘었다. 맞벌이 가정에서도 여성의 돌봄 시간은 5시간3분에서 6시간47분으로 증가했다. 남성의 경우 홑벌이는 29분, 맞벌이는 46분씩 늘어나는 데 그쳤다(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2020년 11월호).

이처럼 여성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지자, 11월30일 정부는 2030 여성 맞춤형 자살예방 대책을 내놨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이 심한 1인가구 여성, 무급휴직 중인 청년 여성, 가족 돌봄 부담이 큰 여성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단기적 처방뿐이라면 상처는 평생 흉터로

그러나 단기적 처방에 그친다면 지금 ‘상처’는 평생의 ‘흉터’로 남게 된다. IMF 외환위기 전후에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경쟁과 노력을 강요받고, 청년기에 코로나19와 고용 불안을 겪은 20~30대의 심리적 위기는 자칫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삶에 대한 허무 또는 혐오”(이현정 교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장숙랑 교수는 “2030 여성이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주거, 생활 전반, 젠더 폭력 등에서 큰 불안을 느끼는데 이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젠더 갈등 양상으로만 축소 인식돼서는 안 된다”며 “이들 세대에게 지속적인 흉터가 남는다면 1990년대 출생 코호트(비슷한 연령 등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의 미래 자살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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