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맘때, 1년 육아휴직 했던 남편이 복귀했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결정해야 했다. 아이가 친환경 먹거리를 먹고 자연에서 놀 수 있었으면 했다. 무엇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라나길 바랐다. 일단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어 운영하는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세 번째로 알아본 곳이었다. 그 어린이집은 집에서 꽤 멀었고, 출자금 900만원(졸업·탈퇴시 반환)에 월 30만원 넘는 조합비(아이행복카드로 지원되는 정부지원금 외)를 내야 했다. 그래도 아이를 그곳에 보내고 싶었다. 설명회 때 보여준 졸업생 영상에서 한 아이가 “사탕(선생님 별명·가명), 나 키워줘서 고마워” 하는데 뭉클했다. 이렇게 평등하고, 따스하다니. 흡족했다. 2020년 봄 아이는 입학했고 어느덧 겨울이 됐다. 우리 부부는 말한다. “홍보가 다였어.”
3살이면 성을 구분한다. 그 무렵부터 아이가 ‘공주’ ‘핑크’를 선호했다. 어린이집 여름 물놀이 사진을 보니 분홍과 파란색으로 남녀 구분이 돼 있었다. 리본, 레이스 옷을 찾는다는 여자아이들을 선생님은 “여자여자~하죠”라고 표현했다. 7살 반을 ‘7살 형님반’으로 불렀다. 원장 선생님은 20년도 더 전에 나온 <모신>(‘엄마가 신’)이란 책을 읽도록 권했다.
아이들이 클수록 성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됐다. 교사회(교사 전체), 이사회(부모가 홍보·재정·교육·기획 이사가 되어 조합을 이끄는 조직), 부모(조합원)가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온라인카페 게시판에 ‘성평등 동화책’을 아이들 방에 놓는 것을 제안했다. 조회수는 100회가 넘었지만 댓글은 2개 달렸다.
엄마는 부엌, 아빠는 술집에 모였다긴 나들이를 가는 날이면 엄마 아빠들이 지원해 아이들 김밥을 쌌다. 출근을 미룬 채 아이를 헐레벌떡 내려놓고 부엌에 가보니, 죄다 엄마들만 모였다. 아빠들은 기술이 필요하거나 힘을 쓰거나 아니면 술자리에서 모였다. 공동육아 밖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역할로 보였다.
그나마 코로나19로 부모가 참여하는 행사도 적었다. 아이 연령별로 선생님과 부모들이 모이는 방모임도 미뤄졌다. 그러다가 9월 방모임이 오랜만에 잡혔다. 방장이 모임 전날 ‘방모임에 주양육자가 참여해달라’고 전했다. 아빠가 참여한다고 얘기한 두 집은, 한 이사가 메시지를 따로 보내거나 집으로 불러 ‘엄마가 왔으면 한다’고 했다.
방모임에서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 김치 먹이는 얘기, 미끄럽지 않은 신발 신기기, 고생하는 엄마 아빠들에게 감사하기 등을 말했다. 주제도 없이 훈계조의 말투로 오랫동안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난감했다. 다른 엄마들은 어리둥절해하거나, ‘왜 이리 일방적으로 얘기하지’ 생각했단다. 이사의 말도 자꾸 보태졌다. 1시간30분이 흘렀을 때 나는 원장 선생님의 말을 끊었다. 원장 선생님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방모임이 끝난 뒤 부모들은 나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교사회의 요청으로 11월 간담회도 열렸다. 방모임 형식과 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오로지 원장 선생님의 말을 끊은 내 태도만이 문제가 됐다.
간담회 뒤, 나와 다른 한 가정이 어린이집에서 탈퇴했다. 탈퇴서에 ‘공동육아의 가치·지향·모습에 대해 견해 차이가 있다’고 적었다. 다른 가정도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공동육아와 조합이 추구하는 가치가 맞지 않다’고 썼다.
얼마 뒤 전직 공동육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어린이집에 아이들 책을 선정하는 교육소위원회가 없느냐고 물었다. 어린이집에 교육소위원회가 있었다면 원장 선생님이 직접 해준 전래동화 인형극 ‘선녀와 나무꾼’에 대해서도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어린이집 생활 도중 아이들끼리 낸 상처, 사고, 교사의 훈육에 대해 부모로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합 규칙이 공동육아 정신과 맞는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전체 공식 회의를 통해 의결된 사항은 민주적으로 따르고 사후에 개별적으로 번복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과연 민주적인 것일까도.
좋은 공동육아 어린이집도 많다고 한다. 형태도 다양하다. 최근엔 국공립어린이집이 부모와 운영을 나누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내년 어린이집·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공동육아·공동체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민주적인 의견 개진이 활발한 곳인지,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곳인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그런 토론 문화가 없는 곳은 경계해야 한다. 교사-이사-부모 사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곳인지 알아보길 바란다. 대다수 구성원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정 능력이 있는지, 아이 교육에 열린 자세로 배워나가는지도 살폈으면 한다. 엄마와 아빠 양쪽을 고르게 육아와 모든 기관 생활에 동참하도록 이끄는지,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하고 성장하는 공동체인지도 따져봤으면 한다.
이런 팁이 추상적이라면 여러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과 어떻게 연계하는지를 설명회 때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서 펴낸 책자나 누리집을 보면 코로나 시대 공동체의 어려움, 문제 해결 방식, 다양한 터전의 생활 등을 미리 공부할 수도 있다.
이제 나는 공동육아 밖에서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의 건강하고 행복한 육아를 고민한다. 사립유치원 비리와 차별적인 급식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아이들의 안전한 보행권을 요구하는 ‘정치하는엄마들’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참, 공동육아에서 갑자기 나오게 된 아이는 예전 어린이집으로 돌아가 즐겁게 생활한다. 나온 때가 마침 유치원 신청 시기였고, 운 좋게 당첨됐다. 아이는 내년 3월 국공립유치원 등원을 기다린다. 오늘도 나는 행복하고 평등한 육아를 꿈꾼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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