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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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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사건’ 피해자 “n번방에서 수많은 악마를 보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해자 엄벌 요구하는 ‘박사방’ 피해자의 탄원서
등록 2020-11-25 12:06 수정 2020-11-27 04:24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 조주빈이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 조주빈이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사방과 n번방 등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세계가 드러난 지 1년, 주동자 조주빈(박사방)의 1심 선고가 내일(11월26일)로 다가왔습니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엄벌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피해자 ○○○는 조주빈의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하고 <한겨레21>에도 보내왔습니다. <한겨레21>은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고, 11월27일 나오는 <한겨레21> 1340호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고민으로만 채웁니다.

조주빈 등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 8만장을 담은 상자들이 11월13일 서울중앙지법 앞에 놓여있다. 화난 사람들 제공

조주빈 등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 8만장을 담은 상자들이 11월13일 서울중앙지법 앞에 놓여있다. 화난 사람들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2020고합 486 사건의 피해자 ○○○라고 합니다.

탄원인은 이 사건 가해자 조주빈을 비롯한 피고인 6명의 엄벌을 부탁드리며 이렇게 서류를 제출합니다.

어느덧 11월이지만 올해는 살아오면서 그 어떤 해보다 저에게 참 소란했던 해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잘 보냈다고 생각했던 하루도 사실 스스로를 위한 위로일뿐,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 어떤 날도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평온하던 일상에 무너져 내리고, 다시 사회에 적응하려 나설 때마다 불안이 발목을 잡아 굼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황합니다. 하루라도 맘 편히 자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오늘은 괜찮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그날의 기억을 아주 잊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집단이 저와 다른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행위를 합리화하고 발 뻗고 잘 것을 생각하면, 또다시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는 수치심이 몸을 휘감아 분노와 답답함에 몸서리쳐집니다.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날 텔레그램 방 안에서 수많은 악마를 보았습니다. 저와 그리고 다른 피해자 분들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n번방 사건의 첫 재판에서부터 가해자들을 엄벌해, 운 좋게 잡히지 않고 지켜보는 다른 가해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그렇게 한다면 이런 범죄행위가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여태껏 한 번도 받지 못했고 그럴 시기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가해자들이 저지른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스스로 사람이 아닌 악마라 칭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입니다. 이제 와서 사람이 되겠다, 권리를 찾겠다, 선처해달라고 하는 가해자들의 말은 저와 다른 피해자 분들의 마음을 더 찢어놓습니다. 가해자들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입니다. 이 사건에 마음 아파한 모든 이가 흘린 눈물의 반의반도 안 됩니다. 울 자격도 반성의 기미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또다시 제 얼굴이 ○○녀라 돌아다닐까봐 너무 겁이 납니다.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주빈을 비롯한 피고인 6명에 대한 엄벌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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