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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미누상’ 수상한 섹알마문... 이주노동자 곡진한 삶 담아

이주노동자 관련 다큐·영화 10여 편 제작한 공로 인정

제1338호
등록 : 2020-11-14 20:03 수정 : 2020-11-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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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알마문이 11월10일 서울 영등포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사무실에서 제1회 미누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독립영화 감독인 마문은 작품 주제를 이주노동자에서 평화와 인권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박승화 기자

방글라데시계 한국인 섹알마문(46)이 네팔 이주노동자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11월.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명동성당과 성공회 대성당에 이주노동자 수백 명이 모인 날이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산업연수생제 대신 고용허가제를 도입키로 한 정부가 체류비자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대대적인 단속과 추방을 예고한 뒤다. 단속 과정에서 다치고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성당에 모인 이들은 단속 중단과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노조지부 남양주시지회장이던 마문은 농성단에서 투쟁국장을 맡았다. 그 성당에서 그는 ‘록 스피릿’ 충만한 밴드 ‘스탑 크랙다운’(단속을 멈춰라)을 결성한 미누를 만났다.

빨간 목장갑 끼고 ‘록 스피릿’ 충만했던 미누
“창작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자존심이 강하잖아요. 미누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자기주장이 확고하고 강한 사람이었죠.” 11월10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이주민문화예술단체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마문은 미누가 당시에도 한국말을 잘할뿐더러 노래도 멋지게 불러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그 뒤에도 마문은 이주노동자 관련 집회와 행사에서 빨간 목장갑을 낀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미누와 종종 마주쳤다. 미누는 2009년 표적단속에 걸려 네팔로 강제 추방됐고, 2018년 10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마문은 최근 미누란 이름을 다시 마주했다. ‘미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18년 한국 생활 동안 문화활동으로 이주노동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저항한 미누의 공적을 기리는 ‘미누상’을 제정(제1328호 ‘미누 없는 세상을 위하여’ 참조)하고 11월6일 제1회 수상자로 그를 선정한 것이다. 마문은 2013년부터 계속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곡진한 삶을 담거나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10여 편의 극·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이사로도 활동한다. 주최 쪽은 후보 6명 가운데 마문을 선정한 이유로 “이주노동운동 및 문화활동을 병행하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진한 공로와 향후 활동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는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이영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 석원정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국내 이주노동 관련 연구자와 활동가 등 30여 명이 함께한다.

마문에게 울면서 “고맙다”던 한국인 관객도
마문은 수상 소감을 묻자 “미누상이라는 의미 있는 상의 첫 수상자가 돼 기분이 너무 좋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국에 귀화한 뒤에도 이주노조 운동과 더불어 문화활동을 한 점을 인정해준 것 같다. 이주민 활동 하는 다른 이들도 더 열심히 뛰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가 고향인 마문은 1998년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마석가구공단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2003년 명동성당 투쟁 현장에서 지금의 아내(한국인)를 만나 이듬해 결혼한 뒤, 2009년 2년간의 기다림 끝에 한국에 귀화했다. 공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공장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때다. 2012년 마석가구공단 일을 그만둔 마문은 당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의 ‘이주민 독립영화감독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국내 영화 <반두비>에 출연한 방글라데시 출신 배우 이마붑도 마문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이주노동자 얘기를 영상에 담아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마문의 첫 작품은 단편 극영화 <파키>(벵골어로 ‘새’라는 뜻)로 모습을 드러냈다. 백인과는 달리 동남아시아계 이주민에게 배타적인 한국 사회의 편견을 깨려는 그의 노력은 단·장편 다큐멘터리 <굿바이> <하루 또 하루> <세컨드 홈> 등에 잘 표현됐다. 이들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인디포럼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현재 제작 중인 단편 극영화 <빠마>는 올해 영화진흥위원회 단편 부문 사전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2천만원을 지원받는 성과도 올렸다.

평화와 여성, 인권으로 넓혀가는 작품세계
“다큐멘터리영화를 찍는다는 건 행복이에요. 내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한테 영화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얘기를 전할 수 있잖아요. 2016년 인디포럼영화제에 <하루 또 하루>를 출품해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였어요. 한국인 관객이 ‘감독님 영화 못 봤으면 한국에서 이주민한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속당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계속 울면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마문의 작품 세계는 이주노동자와 국가의 틀을 벗어나 평화와 여성, 인권의 문제로 진화하는 중이다. 2021년 1월 방글라데시 다카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돼 마무리 작업 중인 60분짜리 장편 다큐 <기다림>은 한국과 방글라데시에서 저질러진 전쟁 성폭력 문제를 다룬다.

영국은 1947년 식민지를 분할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인도를 사이에 두고 종교가 이슬람으로 같다는 이유를 들어 서파키스탄(현재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을 한 국가로 묶어놓았다. 정치적으로 우위에 선 파키스탄 쪽의 지속적인 탄압에 맞서 1971년 독립투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여성 40만여 명이 파키스탄 군인 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산한다. 마문은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한국인 여성 피해자와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전쟁을 할 때 일어난 성폭력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한국의 ‘수요집회’ 현장도 카메라에 담았다. 두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범죄가 마문한테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 특히 여성 관련 범죄는 한 나라만의 일이라고 볼 수 없어요. 우리가 전쟁범죄에 대한 재판과 처벌을 하지 못하면 그런 범죄는 또 일어나요. 파키스탄을 보세요. 지금 (독립운동을 지속하는) 발루치스탄주에 가서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전쟁범죄는 반드시 청산해야 해요.”

미누가 노래라는 징검다리로 한 걸음씩 놓던 아시아 민중 사이 화합의 다리를, 한국인 마문은 영상 언어로 한땀 한땀 잇고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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