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태릉골프장 떠난 곳에 공원인가, 아파트인가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그린벨트 해제 논란… 세계문화유산인 태릉 훼손 우려도
등록 2020-11-15 10:46 수정 2020-11-18 00:48
태릉골프장은 조선 때 태강릉 영역에 포함돼 있었다. 아파트 앞쪽이 태릉골프장이고, 그다음이 현재의 태강릉 숲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태릉골프장은 조선 때 태강릉 영역에 포함돼 있었다. 아파트 앞쪽이 태릉골프장이고, 그다음이 현재의 태강릉 숲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7월20일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해제하지 않겠다. 국가 소유 태릉골프장 부지를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8월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태릉골프장 등 서울과 수도권에 모두 13만2천 채의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대통령 발언으로 7월15일 당정협의에서 불붙은 서울 동남권(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동시에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논란이 불붙었다. 불을 끈 것이 아니라 서울 강남권에서 노원구로 옮겨놓은 것이다.

7월30일 태릉골프장이 있는 노원구의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노원갑)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태릉골프장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태릉CC(태릉골프장)는 보존 가치가 있는 땅이다. 녹지 공원으로 개조해 더 많은 시민이 애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노원을 지역구로 한 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8월18일 페이스북에서 “태릉골프장의 녹지와 호수 훼손을 최소화하고 녹지를 태릉호수공원으로 조성해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육사까지 이전하고 그 자리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노원구도 8월4일 대통령에게 공식 편지를 보내 △저밀도 개발 △부지의 50% 공원 조성 △교통 대책 우선 수립 등을 요구했다.

강릉에서 바라보는 구릉산(안산=앞산)의 경관은 갈매지구 아파트에 가려졌다. 류우종 기자

강릉에서 바라보는 구릉산(안산=앞산)의 경관은 갈매지구 아파트에 가려졌다. 류우종 기자

부지 25%가 ‘절대 보존’해야 하는 1등급 지역

환경단체들도 전면적인 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7월21일 28개 시민·환경 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공급 확대 핑계로 그린벨트를 한 평도 훼손하지 말라”고 집회를 열었다. 이어 서울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시민 여론조사와 태릉골프장 생태 조사, 정부서울청사 앞 시위 등 반대 운동을 본격화했다. 10월21일엔 7개 주민·환경·역사 단체로 이뤄진 ‘태릉보전연대’(태릉연대)가 출범했다.

태릉연대가 제기하는 태릉골프장 그린벨트 해제의 가장 큰 문제는 △태릉골프장 생태환경 파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과 강릉(태강릉) 훼손이다. 태릉연대는 “태릉골프장의 98%가 환경평가 4~5등급지로 보존 가치가 낮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9월18일 서울시립대 환경생태연구실이 정의당 이은주 의원과 함께 태릉골프장을 현장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대 보존해야 하는 1등급 지역이 25.5%, 보존 가치가 비교적 높은 2등급이 19.5%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3등급은 46.9%, 보존 가치가 낮은 4~5등급은 8.1%에 그쳤다. 특히 줄기가 지름 25~104㎝로 굵고 나이가 85~200년에 이르는 잘 가꾼 소나무 숲이 전체 면적(73만7250㎡)의 15.3%인 11만2482㎡나 됐다.

단 1시간30분 만의 조사에서 모두 19종 179마리의 야생 새가 관찰됐다. 여기엔 천연기념물인 원앙 60마리, 서울시 보호종인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박새, 꾀꼬리 등 5종 21마리가 포함됐다. 포유류로는 하늘다람쥐, 다람쥐, 청설모, 멧돼지, 고라니, 양서류로는 맹꽁이, 개구리 등이 확인됐다.

현장 조사를 벌인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조경학)는 “기존 환경평가는 전체를 하나(골프장)로 보고 한 등급을 매겼지만, 더는 골프장이 아니라면 각 부분을 나눠 평가해야 한다. 1등급지가 25% 나왔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실제로는 그보다 넓은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릉골프장 비오톱(생태공간) 평가

태릉골프장 비오톱(생태공간) 평가

일제와 독재정권 때 훼손, 일부라도 회복해야

태릉연대는 태릉골프장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강릉 지역이었다는 점도 보존 이유로 들었다. 노원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2008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에 맡겨 작성한 ‘태·강릉 문화재 보호구역 합리적 조정과 제외 부지 활용 연구’ 보고서에는 태릉골프장 전체가 옛 태강릉 영역이었다고 돼 있다. 조선 때 국가 예법을 집대성한 <춘관통고>를 보면, 조선 때 태강릉 영역은 현재 태강릉(태릉선수촌, 태릉사격장 포함) 외에 태릉골프장, 육군사관학교, 서울여대, 삼육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특히 현재 태릉골프장 서쪽에 있는 호수는 태릉의 연못(연지)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도 2015년 ‘세계유산 조선 왕릉 보존·관리·활용 중장기계획 연구’에서 태릉사격장과 태릉선수촌 철거에 이어 태릉골프장 안에 있는 외금천교와 연못 부지를 매입해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 기준은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문화유산의 완전한 원형 보존”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외금천교와 연못은 물론이고 태강릉 영역이었던 태릉골프장 전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사실 현대 태강릉의 역사는 훼손으로 점철됐다. 20세기 초까지 잘 보존되던 태강릉이 훼손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7~1938년 태릉 남쪽 영역에 조선인 지원병 훈련소가 들어서면서다. 해방 뒤 1946년 이 자리에 군사영어학교(현 육군사관학교)가 자리잡았다. 1949년 삼육대가 강릉 북동을, 1961년엔 서울여대가 태릉의 남서를 차지했다. 1966년 태릉과 강릉 사이에 태릉선수촌, 태강릉의 남쪽 영역에 태릉골프장, 1971년엔 태릉과 서울여대 사이에 태릉사격장이 들어섰다. 이렇게 태강릉은 이리저리 뜯겨 위엄을 잃고 홍살문과 어로, 정자각, 봉분 구역만 초라하게 남았다.

더욱이 2016~2018년엔 아파트 등 주택 9900채가 태릉골프장 남쪽 구리 갈매지구에 최고 29층 높이로 들어서 태강릉에서 보는 구릉산(안산=앞산) 경관을 병풍처럼 막았다. 갈매지구는 태강릉에서 1㎞가량 떨어졌는데도 경관에 악영향을 줬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일제와 군사독재 시절 훼손된 태강릉 일부라도 회복하는 것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지에 맞는다. 태릉선수촌과 태릉사격장을 정리한 것처럼 태릉골프장도 이번에 정리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역사 유적이자 공원으로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태릉골프장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국방부 소유 체육시설이다. 육군사관학교 바로 북쪽에 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 때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문을 열었다. 육사와 마찬가지로 조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과 명종·인순왕후의 강릉 남쪽 영역을 차지한다. 현재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골프장이다. 8월4일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공공택지지구에 골프장 전체가 포함됐다. 넓이는 골프장 영역 74만㎡, 주변 자투리땅까지 포함하면 83만㎡.

태릉골프장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국방부 소유 체육시설이다. 육군사관학교 바로 북쪽에 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 때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문을 열었다. 육사와 마찬가지로 조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과 명종·인순왕후의 강릉 남쪽 영역을 차지한다. 현재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골프장이다. 8월4일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공공택지지구에 골프장 전체가 포함됐다. 넓이는 골프장 영역 74만㎡, 주변 자투리땅까지 포함하면 83만㎡.

노원구는 이미 주택 80%가 아파트

그린벨트를 푼다는 점도 비판받는 이유다.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를 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으나, 실제로는 강남권이 아니라 강북권의 그린벨트를 푸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도 지역 따라 차별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의 지현영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가 3기 수도권 신도시 사업 때도 대규모로 그린벨트를 풀었고, 이번에도 그린벨트를 해제하려 한다. 도시 확장을 억제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그린벨트의 취지에 완전히 어긋난다”고 말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개발 독재 시절도 아닌데, 대통령 한마디에 그린벨트를 푸는 것이 말이 되나. 골프장은 나무와 풀, 호수를 공원처럼 가꾼 곳인데, 이곳이 훼손됐다며 개발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곳에 1만 채의 주택이 들어서면 주거 환경과 교통 등 생활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고 주민들은 우려한다. 노원구는 전체 주택 20만539채 가운데 79.4%인 15만9270채가 아파트로, 아파트 밀도가 서울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박영래 노원구청 기획재정국장은 “노원구 주거지 인구밀도는 1만㎡당 383명으로 서울 최고 수준이다. 서울시 평균은 303명, 강남구는 226명, 서초구는 230명, 송파구는 323명”이라고 설명했다.

‘초록태릉을 지키는 시민들’ 이정인 대표는 “이미 노원구는 인구와 아파트가 너무 많아서 주민들이 더 이상 개발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원을 원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냥 골프장으로라도 유지해달라. 그래야 나중에 후손이라도 공원으로 쓸 수 있을 것 아니냐”고 했다.

태강릉과 태릉골프장 사이 화랑로는 출퇴근 때 상습 정체 구역이기도 하다. 이미 주변 갈매지구에 9900채, 별내지구에 2만7천 채가 들어섰고, 앞으로 갈매지구에 6천 채, 태릉골프장에 1만 채가 더 들어서면 교통 지옥이 되리라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게다가 다산진건, 왕숙 택지 개발지구도 추가로 들어선다.

“환경생태, 문화유산 공동 조사하자”

최근 태릉연대와 이은주 의원, 노원구 등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태릉골프장의 환경생태와 역사 문화재 등을 공동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에 따라 태릉골프장 택지 개발 여부와 규모 등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은주 의원은 “공원과 역사 유적이 돼야 할 곳에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모든 서울시민과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땅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부 김승범 공공택지기획과장은 “태릉골프장 부지 가운데 20~30%를 공원으로 만들고, 태릉 연못 등은 문화재청 조사 결과에 따라 보존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목표를 생각할 때 1만 호로 계획한 규모를 많이 줄이기는 어렵다. 환경영향평가도 법적 절차에 따라야지 별도의 공동협의체에서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는 2021년 상반기까지 공공택지지구로 지정할 방침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