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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묻는 ‘여성가족부 존재 이유’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등장한 ‘폐지’ 청원과 다른 결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의 잇단 실언으로 사퇴 촉구 여론 나와

제1338호
등록 : 2020-11-14 00:37 수정 : 2020-11-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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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2020년 10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2021년도 여성가족부(여가부) 예산 심사가 10여 분 만에 중단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정옥 여가부 장관을 보이콧하며 장관직 사퇴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2021년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이 장관이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기회”(11월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라고 말한 점을 문제 삼았다.

앞서 이 장관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피해자를 ‘피해 고소인’으로 지칭하고 성평등한 관점에서 선정·배포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 대한 비난이 일자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 배포한 책을 즉각 회수해 논란이 됐다.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등 피해자 지원 단체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여가부가 존재 이유를 망각했다”며 이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10만 명 동의 달성한 청원인의 주장은
여성계가 이 장관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과거 온라인에서 제기됐던 여가부 또는 여가부 장관 비판과는 그 결이 다르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여가부 폐지 요구는 2001년 여가부 탄생 이후 계속 있었지만 이번엔 그 성격이 다르다. 지금은 ‘(여가부가) 더 잘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졌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미투’ 운동과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범죄 이슈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면서 성평등 정책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여가부가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는 설명이다.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여가부는 축소와 퇴행을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여가부를 아예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여성계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고, 이후 여가부는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 발효로 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됐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당시 여가부 업무에서 젠더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았으며 양성평등위원회도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다”며 “장관을 포함한 핵심 인력의 ‘젠더 마인드’(성평등 의식) 부재로 (여가부가)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기는커녕 논란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2013년),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제정(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5년) 등의 사건에서 여가부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더 적극적으로 성평등 정책에 나서달라”는 지적까지 ‘여가부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7월 여가부 폐지 요구를 담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는데, 청원인은 여가부가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를 만들 뿐 아니라 “최근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서 수준 이하의 대처와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원래 해야 할 일인) 여성 인권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이 여가부를 조명하는 방법
‘여가부 폐지’ 주장은 2015년 이후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대중화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의 일환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가부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은 2020년 11월 기준 1500개가 넘는데, 이런 청원은 대개 여가부가 △남성 권리를 축소하고 △‘잘못된 페미니즘’에 기반해 역차별 제도를 만들며 △남녀 갈등을 야기하고 △각종 ‘여성 전용 구역’을 만드는 등 여성 편향 정책을 실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여성혐오 현상은 “정규직 취업을 향한 무한경쟁의 고통에 더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누렸던 다양한 기득권을 체감하지 못하는 젊은 남성들의 박탈감이 자신(남성)의 것을 빼앗아가는 여성을 향한 분노로 표출”(허윤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되곤 한다. 이의 연장선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은) 정부의 공식 부처로서 여성만 앞세운 여가부의 존재 때문”이란 주장이 힘을 얻는다. 폭력·차별·불평등 관련 의제가 온라인에서 ‘젠더 갈등’이란 이분법적 구도로 치환되고, 성평등 정책은 모두 ‘여성 우대 정책’으로 여겨지는 점도 여가부 폐지론에 불을 붙이는 요인이다.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은 “여가부는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이기적인 한국 여성’이라는 범주가 갖는 부정적 조항들이 응축된 상징물로 굳어버렸다”며 “온라인에서 ‘여가부 만행’이라고 떠도는 글은 허위사실 혹은 루머가 대부분이다. (일부 비판엔) 실제 정책도 뒤섞여 있는데 여가부 정책의 의의 등을 논할 틈 없이 이 모든 것이 ‘여성부의 만행’으로 퉁쳐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진보평론> 2013년)

여가부에 대한 혐오 정서는 언론이 여가부를 어떻게 조명하는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사강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과 홍지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여가부와 여가부 장관이 기사에 인용되는 방식을 분석한 연구 결과(2019년)를 보면 “보수 성향 언론은 여가부 정책이 성 편향적이거나 여가부가 존재감이 미미한 부서라는 점을 강조한다. 보수 언론이 재현하는 여가부는 한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가부장적 프레임과 다르지 않으며 한국 사회 여성 혐오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여성의원·여성단체가 여가부 존치와 강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여가부에 ‘외주화’
다른 부처에 견줘 규모와 예산이 적다는 점도 여가부의 존재 기반을 약하게 한다. 여가부 고위 공무원으로 1년여간 재직한 경험이 있는 ㄱ씨는 “여성폭력, 가족, 청소년 등 전 국민적 이슈와 사회적 갈등을 다루라고 하면서 부처 규모는 300명이 채 안 된다. 성폭력 사건 조사권 등 실질적인 권한도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돼 있다. 사실상 정책기획 업무만 할 수 있는 부처인데, 권한은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모두 지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돌봄(보건복지부), 범죄 피해자 보호(법무부), 청소년 정책(교육부) 등 여가부 소관 업무 대부분은 다른 부처 업무와 겹치지만, 소규모 부처인 여가부가 협력을 이끌어내긴 쉽지 않다. 차인순 위원도 “거대 부처의 조직 이기주의에 갇힌 사업을 구조조정해서 여가부로 가져와야 한다. 특히 여러 부처에 흩어진 아동·청소년, 다문화가정 관련 사업을 여가부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2019년도 여가부 예산은 이례적으로 전년보다 40% 넘게 늘어나 1조원을 돌파했으나, 전체 정부 예산(약 470조원)의 0.2%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 예산은 같은 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국회 증액 규모(1조2천억원)보다 적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국가 차원에서 성평등 정책을 (여가부에) 외주화해놓고, 사회적 갈등에 대해선 여가부 뒤에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성별 임금격차, 돌봄노동, 여성폭력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 마련은 없이, 관련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여가부를 ‘총알받이’처럼 내세운다”는 지적이다. 임 자문위원은 “여가부의 실질적인 정책 목표는 ‘차별을 없애는 것’인데 다른 부처 정책이 얼마나 성평등을 지향하는지 점검하고 관철해내기엔 한계가 있다”며 “국무조정회의에서 차별과 불평등 해소에 대해 발언할 수 있고 전 부처가 성평등을 지향하도록 하는 권한을 지닌 조직이 생길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삼중고 벗어나 제구실하려면
이정옥 장관의 성평등 의식 부재, ‘여성 혐오’ 상징으로 굳어진 여가부, 소규모 조직과 예산이란 ‘삼중고’에서 벗어나 여가부가 제구실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은 “모든 정부 부처가 성평등한 관점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기존 제도와 규범으로 인해 차별받았던 여성을 남성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국정 과제로 내세웠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처럼 전 부처를 조정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를 이끄는 고위직의 성평등 의지도 중요하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지난해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이 생겼지만 권한, 예산이 부족한데 이는 각 부처 고위직의 관심 결여를 방증한다”며 “‘성 주류화’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스웨덴은 각 부처 장관들이 누리집을 통해 자신의 소관 업무와 관련해 어떻게 성평등에 기여할 것인지를 밝히고 내각 회의에서 성평등 의제에 대해 토론한다”고 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참고 문헌

강혜란, ‘페미니즘의 도전과 젠더 정책, 그리고 여성부’, <함께가는 여성> 223호, 2017년

윤보라, ‘일베와 여성 혐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진보평론> 57호, 2013년

정사강·홍지아, ‘국가 페미니즘, 여성가족부, 여성 혐오’, <미디어, 젠더 & 문화> 34권, 2019년

허윤 ‘#지금_가장_정치적인_것은_여성적인_것이다’, <#혐오_주의>, 알마,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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