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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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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

시민단체 등 반대에도 추진 강행… 박원순 전 시장 약속과도 달라
등록 2020-10-10 15:35 수정 2020-10-13 01:27
2019년 9월부터 서울시와 광화문광장 조성 방안에 대해 재논의한 시민단체들은 2020년 10월5일 서울시청 앞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은 광화문광장 사업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내년 4월에 취임하는 새 시장에게 넘겨라”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2019년 9월부터 서울시와 광화문광장 조성 방안에 대해 재논의한 시민단체들은 2020년 10월5일 서울시청 앞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은 광화문광장 사업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내년 4월에 취임하는 새 시장에게 넘겨라”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시민 목소리를 더 치열하게 담아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완성하겠다. 사업 시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 시민 소통과 공감의 결과에 전적으로 따르겠다.”(2019년 9월19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민단체 등에서 이견이 있어서 합의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코로나 상황이 계속된다. 그래서 광화문광장 사업을 중단하려고 한다.”(2020년 5월23일 시민단체들과의 만남에서 박 전 시장)

“시민 의견을 기반으로 전문가, 관계기관 등과 논의해 ‘변화되는 광화문광장’의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 10월 말부터 광장의 동측 차로를 확장, 정비하는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2020년 9월28일 시장 대행 체제의 서울시)

서울시, 서쪽 차도로 광장 확장 등 발표

대한민국 서울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재조성) 사업이 돌고 돌아 애초 방안과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다시 추진된다. 주요 내용은 ①광장을 서쪽 차도로 확장하고, ②확장된 공간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형으로 만들며, ③광화문 앞 동쪽 차도를 5차로에서 7~9차로로 확장하고, ④광화문 앞 월대는 2021~2023년 별도로 발굴,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019년 9월부터 서울시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온 시민단체들은 한가위 연휴 직후인 10월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요구했다. “새 광화문광장은 그동안 진행해온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를 거의 포함하지 않았다. 사업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내년 4월 취임하는 새 서울시장에게 결정과 집행을 넘겨라.”

무엇보다 시민단체들은 2019년 9월 박 전 시장의 전면 재검토 선언 이후 진행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가 이번 광화문광장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가장 논란이 많은 내용은 ‘승효상 안’이라고도 부르는 ‘서측 안’이다. 서측 안은 2005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승효상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공동으로 제안한 것이다. 서울시는 현재의 중앙광장 형태가 시민 이용과 안전에 좋지 않다며 2015년부터 사실상 서측 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서측 안이 국가 상징 공간인 광화문광장에 어울리지 않게 한쪽으로 치우쳤고, 세종대로의 선형도 비뚤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시민 이용 시설과 보행자 수가 더 많은 세종대로 동쪽을 배제하는 안이라며 강하게 반대해왔다. 2019년 5월 서울시의 보행량 조사를 보면, 평일 저녁 6~7시 세종대로 동쪽의 보행자는 시간당 1815명으로, 서쪽 보행자 941명의 두 배에 이른다.

정기황 문화도시연구소장은 “2019년 2월 국제설계공모의 승효상 심사위원장은 서측 안을 제안한 사람이어서 심사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또 동쪽엔 교보문고, 한국통신(KT),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의정부 터(열린시민마당) 등 시민 이용 시설이 많은데 보행 환경은 매우 나쁘다. 세종대로 양쪽에 광장을 만들어 시민들이 차도를 건너지 않고도 광장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9월28일 서울시가 갑자기 발표한 세종문화회관 앞쪽 광화문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9월28일 서울시가 갑자기 발표한 세종문화회관 앞쪽 광화문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실제 보행자 이용은 동쪽이 서쪽의 2배

2019년 9월 이후 토론에서 시민단체들은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혼잡통행료 부과와 버스 체계 개혁, 친환경 교통수단 확대 등 지속가능한 교통정책을 도입하라고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계획에는 이런 내용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4년 2월 혼잡통행료 도입을 검토한 ‘지속가능한 도시교통 관리방안 연구’라는 보고서까지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사대문 안에서 혼잡통행료를 4천원 부과하면 승용차 통행량이 40.4% 줄고, 6천원을 부과하면 49.7%, 8천원을 부과하면 57.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혼잡통행료를 통해 승용차 통행량을 대폭 줄이고, 수송분담률이 정체된 버스를 중심으로 대중교통을 개혁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도심에서 보행과 자전거 등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광화문광장 조성의 의미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광화문 앞 역사 복원도 ‘서측 안’으로 왜곡된다고 비판했다.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비교하면 조선 시대의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남동쪽으로 휘어 있었다. 이번에 차도로 만들어지는 동쪽이 육조거리였고, 광장으로 조성되는 남서쪽은 옛 관청 터였다. 따라서 서측 안은 오히려 역사 복원에 배치된다.

광화문 앞 월대 복원도 서울시가 밝힌 것처럼 2021~2023년 뚝딱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현재 진행 중인 창덕궁 복원에서 알 수 있듯, 월대를 복원하려면 발굴 조사와 함께 주변 땅의 높이를 1~1.5m가량 낮춰야 한다. 광화문 앞 일대의 땅 높이를 그 정도 낮추려면 상당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박 전 시장이 2016년 9월 시작해 2019년 9월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으며, 2020년 5월 중단하겠다는 뜻까지 밝힌 이 상징적인 사업을 선출직 서울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 관료들이 추진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광화문광장 조성은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는 행정 관료들이 대행 체제에서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음 시장 체제가 들어설 때까지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새 시장 들어설 때까지 연기해야”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연 10월5일 오후 바로 해명 자료를 내어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택 서울시 광화문광장추진단장은 “5월27일 박 전 시장이 참석한 사업 관련 회의 때도 광화문광장 사업은 현재 계획에 따라 추진하기로 했다. 광장의 형태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황보연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혼잡통행료는 아니지만, 현재 환경 등급이 낮은 차량의 사대문 안 출입을 제한한다. 모든 차량이 대상인 혼잡통행료 정책은 당장 시행하지는 않고,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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