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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피해는 즉각적, 구제는 졸업 뒤에나

학교의 차별적이고 구조적인 문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학교 성폭력 문제와 해결
등록 2020-10-10 15:26 수정 2020-10-13 01:22
2018년 5월3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폭력 가해 교사에 대한 엄중 처벌과 서울시교육청의 철저한 감사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18년 5월3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폭력 가해 교사에 대한 엄중 처벌과 서울시교육청의 철저한 감사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20년 6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서 이 학교 교사가 설치한 불법촬영 카메라 발견, 6월26일 경남 창녕 한 중학교 여자화장실에서 이 학교 교사가 설치한 불법촬영 카메라 발견. 수사 과정에서 김해 교사가 전임지인 경남 고성의 한 고등학교 여자화장실과 경남교육청 산하 수련원 샤워실에서도 불법촬영을 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됨.

교사마저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른 참담한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7월20일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고개를 숙였다.

“강력한 징계와 빈틈없는 점검, 철저한 예방교육으로 성폭력 없는 안전한 경남교육을 만들겠습니다.”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는지 긴급점검하는 것을 사전에 예고할 만큼 떠들썩했지만, 정작 범죄가 일어나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사건을 알게 됐다. 그중 고성 고교를 졸업한 14명이 모여 ‘불법촬영 교사 대응모임’을 꾸렸다. 학교도, 교육청도, 수사기관도 이들에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려주지 않았다.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모교 화장실에서 몰래 찍은 불법촬영물엔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탓이다. 다니던 학교 화장실에서 내 몸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조차 알 수 없어 더욱 불안한 이들에게, 사건 경위조차 알려주지 않는 현실에서 과연 ‘성폭력 없는 안전’이 실현될 수 있을까._편집자주

2018년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재학 시절 교사들로부터 겪은 성추행·성희롱을 세상에 드러내자 재학생들이 학교 유리창에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 문구를 붙이며 화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스쿨미투’ 운동은 2020년 초까지 100여 학교로 번져나갔다. 수십 년 동안 묵인된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문화에 대한 말하기가 학교 밖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스쿨미투가 거세지자 교육부는 2018년 8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해 국공립 교원과 같은 징계기준 적용 등 개선안을 담은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한다. 최근엔 학교 안 불법촬영 카메라 연 2회 ‘불시’ 점검, 교원 양성 과정에서 성인지 교육 이수 연 1회 의무화 등 보완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직 교사들이 연이어 학교 안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하는 등 참담한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작성한 교육부 연구용역 보고서 ‘중·고등학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 연구’를 보면, 전국 중고생 14만4472명 가운데 25.4%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중고생 100명 가운데 3명꼴로 불법촬영 및 유포 피해를, 2.4명은 강제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불법촬영 및 유포 피해의 67.2%, 강제추행 사례의 52.7%가 교내 혹은 학교 밖 학업 활동 중에 일어났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성폭력에서 안전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스쿨미투에 참여했던 학생,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활동가, 초·중·고 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입단속

스쿨미투를 계기로 결성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나윤(18) 활동가는 학교 불법촬영 사건을 마주한 적이 있다. 2년 전, 재학 중이던 학교 여자기숙사 안을 몰래 촬영한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촬영물을 직접 본 학생들이 ‘이건 우리 학교가 맞다’고 술렁거렸지만 학교는 초기 2주 동안 ‘그럴 리가 없으니 공부하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영상 속 인물이 누구랑 닮았다는 말이 나오는 등 여러 피해가 있었다. 학교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는데,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경과는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이다. 불법촬영이 일어난 시점이 2010년 전후로 추정되면서 재학생은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특별한 심리 상담 지원이나 재발 방지 조처도 없었다. 극심한 불안을 느낀 학생 몇 명이 사비를 털어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를 마련해 직접 점검에 나섰다. 나윤 활동가는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주고,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학교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면 불안이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 여성위원회 소속 이희진 교사(초등)의 생각도 비슷하다. “학교에서 성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가 회복하기 위해선 학교가 구성원 모두에게 재발 방지책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론장은 위계 질서가 강한 학교 안에선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명목으로, 사건 경위나 징계 사유 등을 학생과 교사에게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통로도 없다. 이 교사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사건 경위를 공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적정한 사후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남 김해 지역 고등학교 김아무개 교사도 “교육 현장에서 2차 피해 방지를 매우 기계적으로 해석해 성폭력 사안에 대해 무조건 말하지 말라는 식인데,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해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단위: 건, 괄호 안은 % 자료: 교육부, ‘중·고등학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 연구’(2019년)

단위: 건, 괄호 안은 % 자료: 교육부, ‘중·고등학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 연구’(2019년)


2차 피해

학교의 ‘입단속’으로, 되레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기반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가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학교에서 교사나 또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학생 4명과 교사 3명에 대한 면접조사를 기반으로 한 ‘학교 성폭력 2차 피해 사례분석 연구’(2020년)에 따르면, 학교에서 2차 피해는 성폭력 피해 뒤 즉각 발생하는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교실은 학생 수십 명이 장시간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목격자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에 대한 소문도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온라인에서 동시다발로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피해자의 평소 옷차림, 행동, 사진 등이 빠르게 공유되기 때문이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안재희 홍익대 교수(교육학)는 논문을 통해 “학교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경우,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건 경위와 진행 과정, 대처 방안을 알리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2019년 2월 교육부가 발행한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보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육청 보고나 수사기관 신고 절차 등이 제시돼 있다. 교육부나 지역 교육청별로 신고센터도 설치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사든 학생이든 폐쇄적인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는 건 매우 어렵다. 특히 교사의 평가가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 학생이 교사의 성폭력을 신고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매우 낮고,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스쿨미투는 주로 졸업생이 중심이 됐다. 또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 범위를 어떻게 봐야 할지, 해당 사안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과 예방책은 어떻게 가능할지 등은 구체화돼 있지 않다.

징계 처분

어렵사리 드러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제대로 조사해 적정한 징계 처분을 하는 것도 과제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스쿨미투 대책으로 학교 성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담당 장학사와 함께 조사에 참여하는 ‘성인권 시민조사관’ 20명을 위촉했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일원으로 용화여고 교사 성희롱·성추행 사건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최경숙(56) 폭력예방통합전문강사도 성인권 시민조사관으로 활동한다. 그는 “학교 성폭력 처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 참여했다. 시민조사관이 낸 의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됐는지 그 결과까진 알려주지 않는데 이 점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19년 5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스쿨미투가 가장 많았던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학교 안 성폭력 발생 뒤 가해 교사 직위해제 여부, 징계처리 결과 등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올해 3월 서울행정법원은 “피해자·가해자 분리 여부, 가해 교사 직위해제 여부, 교육청의 징계요구 내용 및 처리 결과 등을 가해자 성명을 제외하고 공개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성명을 지워도 학교명 등 이미 공개된 정보들과 결합해 교사가 누군지 특정될 경우 명예훼손과 민형사상 분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20년 4월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의 엄중 처벌과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4월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의 엄중 처벌과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교육

성평등한 학교 문화를 만들고 성폭력 가해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져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유네스코(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포괄적 성교육’(CSE)을 교과과정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생물학적 성(sex)뿐 아니라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아울러 다른 사람과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울산시교육청은 초등학교 교사가 1학년 학생에게 속옷 빨래 숙제를 내어 논란을 빚은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상담과 인권단체 전문가, 교사 등이 참여하는 ‘성인지 교육 네트워크’를 설치해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제솔지 교사(초등)는 “포괄적 성교육을 하기 위해선 종전처럼 보건교사에게만 성교육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 교과 과목과 성교육을 연계하고 충분한 학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스쿨미투를 통해 학교 안의 성폭력을 학교 밖으로 드러내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학생은 여전히 말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보호받는 대상이다. “사립학교 교원 징계를 강화하도록 법이 바뀌고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스쿨미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학생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학교 안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는 그대로이다.” 학교에서 보내는 일상이 변화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나윤 활동가의 말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표지이야기-교사 불법촬영 그 후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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