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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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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이주노동자 인권운동가 미노드 목탄 기리는 ‘미누상’,
11월15일 첫 시상 위해 모금 운동
등록 2020-09-01 06:11 수정 2020-09-04 01:33
2018년 1월 네팔을 찾아간 ‘스탑크랙다운’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지 9년 만에 공연하는 미누의 모습. 지혜원 제공

2018년 1월 네팔을 찾아간 ‘스탑크랙다운’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지 9년 만에 공연하는 미누의 모습. 지혜원 제공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공단의 거리는 여전히 후미지고 한산했다. 가구를 사러 오는 사람도 찾기 힘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주노동자도 많지 않았다. 8월25일 오후 2시께, 평일 낮인 탓도 있겠으나 코로나19 바이러스 재창궐에 맞닥뜨린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 가구를 새로 사는 수요 자체가 크게 준 탓이다. 여기저기서 결혼식마저 연기한다. 이곳 경기도 죽었다.

공단 초입에 있는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에서 이영 센터장(성공회 신부)을 만났다. 이 센터장은 요즘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18년을 살다 강제 추방된 뒤 2018년 숨진 네팔 사람 미누를 기리는 미누상 제정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적잖은 수의 동남아시아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일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 고단한 노동 끝에 체류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거나 제 발로 돌아간 이만 해도 수십만 명은 될 텐데 왜 하필 미누일까? 이 센터장은 “미누는 문화활동을 통해 한국인한테 이주민의 현실을 알리려 노력한 이주민문화운동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이 앉은 맞은편 벽에 붙은 포스터 속 활짝 웃는 미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주노동자가 부를 노래가 없다”

본명이 ‘미노드 목탄’인 미누는 최근 한국 사람들이 트레킹을 위해 자주 찾는 네팔 포카라가 고향이다. 스무 살 때인 1992년 2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관광비자 한 장만 달랑 손에 쥔 채였다. “2년만 있다 와야지”라고 생각했다. 의정부 쪽 식당에서 일하던 그는 가스밸브 공장을 거쳐 서울 창신동 봉제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미등록 신분인 탓에 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강제 단속에 가슴 졸여야 했다.

미누의 한국 생활에서 전환점이 된 사건은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일어났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연수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자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이 산업연수생제 대신 새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는 강제 추방하겠다”고 했다. 단속을 피해 도망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주노동자가 잇따랐다. 급기야 그해 11월 서울 명동성당과 성공회대성당에 이주노동자 150여 명이 모여 농성에 들어갔다. 이때 농성에 함께한 미누는 “우리(이주노동자)가 같이 부를 노래가 없다”는 생각에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 소모뚜·소띠하와 함께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단속을 멈춰라)을 결성했다. 그는 리드보컬을 맡았다.

스탑크랙다운은 그해 12월 1집 음반 《친구여 잘 가시오》를 낸 데 이어 2004년엔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 발간 20년을 기념하는 헌정음반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박 시인의 시 ‘손무덤’에 곡을 입혔다. ‘마왕’ 신해철이 편곡을 도운 곡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이후 미누의 활동은 거침이 없었다. 스탑크랙다운 멤버들과 함께 노동·시민단체 집회에 참석해 공연을 했다. 국내 버마민주화운동 단체 집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에 따라 2007년엔 이주민방송(MWTV)의 공동대표로 활약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보 접근에 한계가 많은 이주민한테 제 나라 말로 된 방송을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안녕, 미누>(감독 지혜원)에서 그는 “(2003년 투쟁 때) 11명이 죽고 이러는데도 신문에 안 나와요. 우리 뉴스를 아무도 안 다루는구나. 우리 뉴스는 우리가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영화제 운영에도 깊숙이 관여해 2008년 3회 땐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미누상 제정을 추진 중인 이영 성공회 신부. 전종휘 기자

미누상 제정을 추진 중인 이영 성공회 신부. 전종휘 기자


2018년 한국 방문 뒤 심장마비로 숨져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불법체류자’라서 미운털이 박힌 탓일까. 미누는 한국에 온 지 18년째 되던 2009년 표적단속에 걸려 강제 추방됐다. 그리고 9년 뒤인 2018년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인 <안녕, 미누> 상영에 맞춰 사흘짜리 특별 체류 허가를 받아 한국에 다녀간 지 한 달 뒤인 10월14일, 네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판명됐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미누가 숨진 다음달 언론 기고에서 “미누는 제가 아는 한 가장 진정성을 지닌 최고의 로커”라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던 미누는 우리가 하기 싫은 힘든 일을 떠맡겼다가 내수 고용시장이 악화하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생존권을 박탈하고 추방해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추악한 어둠의 이름”이라고 선언했다.

이 센터장 등이 제정을 준비하는 미누상은 스탑크랙다운이 만들어진 11월15일 주어질 예정이다. 미누상의 대상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 이주노동자다. 상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도 펼친다. 이를 위해 ‘미누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름으로 남양주세무서에 단체 등록을 마쳤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수유너머의 이진경·고병권씨 등 연구자들과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정혜실 이주민방송 공동대표, 최의팔 목사(전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센터장) 등 활동가들이 참여한다.

강제 단속이 그렇듯 바이러스도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습한다. 그래서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숙이 공격당한다. 영세업체가 즐비한 이곳 마석가구공단 업체들이 맞닥뜨린 불경기의 여파는 누구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한테 우선적인 현실이 됐다. 올해 들어 공단 안에서 월급을 받지 못한 노동자가 늘었다는 게 이영 센터장의 전언이다. 6월16일 일을 그만두기까지 일한 반달치 월급 120여만원을 받지 못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하산(30·가명) 같은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한참 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중략)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스탑크랙다운 <월급날>

남양주=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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