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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묻는다

표지이야기 - 지심도와 가우도, 두개의 섬
등록 2020-08-08 06:08 수정 2020-08-15 08:15
지심도 전경. 

지심도 전경. 

여름휴가를 내고 관광객이 될 당신을 위해, 관광지 두 곳을 준비했다. 섬이다. 실은 이미 꽤 유명한 곳들이다.

경남 거제 지심도, “섬 전체가 거의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다. 빨간 동백꽃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어서 오라!”(거제시 누리집).

전남 강진 가우도, “사방으로 강진만과 무인도를 조망할 수 있다. 쉬이 닿는 곳, 바다 위를 건너서 만나는 섬”(강진군 누리집).

관광객으로서 기대하는 게 아름다운 풍광이라면 어느 섬이든 좋다. 관광객으로서 기대하는 게 섬사람 사는 모습이라면? 그럼 선택이 조심스럽다. “여행자에게 섬에 가서 무엇을 보고 싶냐는 질문에 여행자가 첫째로 꼽은 것은, 해변·풍경이리라는 예상을 가볍게 깨고 ‘마을’이었다.”(윤미숙 경상남도 섬가꾸기 보좌관)

두 섬, 마을과 주민의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지심도 주민의 존재와 생활은 ‘불법’으로 규정됐다. 거제시로 섬 주인이 바뀐 뒤, 집 담장을 늘린 것은 ‘불법 증축’, , 관광객에게 막걸리와 파전을 판 것은 ‘불법 영업’이 됐다. ‘명품섬’으로 가는 길, 주민은 눈엣가시다. 7월29일 지심도에 거제시청 공무원 22명이 들이닥쳐 단속했다. 주민들은 당장 내일, 당장 모레 섬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마음 졸인다.

5년 전 가우도를 전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발표할 때 강조한 것은 ‘주민, 장기적, 식생, 삶, 역사’ 같은 것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주민 참여나 주민 삶의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농어촌 관광 개발 개념을 행정에도 들여왔다.”(정태균 전남도 섬발전지원센터 전문위원) 성공적이었는가? 묻는다면, “아직은”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섬이 바뀌는 속도는 주민의 적응 속도를 압도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주민들은 제 목소리 내기가 자주 벅찼다. 그래도 주민들, 10년 뒤, 20년 뒤 섬의 미래를 스스로 생각하길 멈추지 않는다.

두 섬, 마을과 주민의 걱정은 어쩌면 통한다.‘주민’은 살던 곳이 관광지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자리에 있을 수 있나. 주민이 감당할 만한 개발의 속도와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지속가능성이란 말, 수십 년 살아왔고 수십 년 살아갈 주민만큼 절박하게 느낄 이들이 있을까. 생계가 변하고 수익이 생겼고 이를 배분하는 동안, 주민 사이는 예전 같을 수 있을까.

농부나 어부에서 돌연 ‘관광지 주민’이 된 이들 모두 품을 고민이다. 고령화한 농어촌, 힘 잃은 농어업을 만회하려 관광개발사업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찾아가고 싶은 섬’ ‘명품섬’ ‘명품마을’ ‘가고 싶은 섬’ ‘농촌체험 휴양마을’… 부처별, 지자체별 사업 목록이 정신없이 더해진다. 섬과 뭍을 잇는 연륙·연도교 사업이나 바닷마을 시설을 정비하는 ‘어촌뉴딜300’에도 각각 조 단위 재정이 투입된다. 사람 몰리게 할 사업이다. 나아지는데, 반가운 일인데… 거대한 숫자와 개발 속 주민은 여전히, 때로, 한층 더 혼란스럽다.

“관광이란 게 뭐 있당가. 최고는 그저 사람 정 느끼고 가는 거재. 그럴라믄 우리부터도 행복해야 하고.” 가우도 이장 김성현이 올여름 관광객 맞을 포부를 밝힌다. 표정이 살짝 어둡다. 1년에 다만 일주일, 꿀 같은 휴가를 얻고 들떠 있을 당신에게 그저 “잘 놀고 잘 쉬다 와” 한마디면 족할 텐데. 이장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도 아주 잠깐 헤아려보면 어떨지, 구태여 덧붙인다.

신지민 godjimin@hani.co.kr·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두개의 섬’ 표지이야기 모아보기]
개발 앞둔 지심도…평생 산 섬에서 나가라니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76.html
가우도, 주민 중심 관광사업은 아직 ‘잰걸음’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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