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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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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2주기] 말숙씨는 투명인간이 아니에요

노회찬재단 ‘6411프로젝트’ 5060대 여성 돌봄노동자 이야기
공공영역으로 들어왔지만 민간업체가 운영, 저임금·고용불안·잡무 등 여전
등록 2020-07-25 04:56 수정 2020-07-25 07:33
노회찬 전 의원이 2010년 5월 ‘6411번 버스’에 탑승한 모습.

노회찬 전 의원이 2010년 5월 ‘6411번 버스’에 탑승한 모습.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 중)

2018년 7월23일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가 ‘6411번 버스 연설’을 떠올리며 그의 부재에 슬퍼했다. 그가 떠난 지 2년, 6411번 버스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출발해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이들’을 싣고 달린다. ‘노회찬재단’은 2주기를 맞아 다시 ‘투명노동자’에 주목했다. 청소노동자·돌봄노동자·핵발전소 하청노동자·봉제노동자, 이 4개 직종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를 설문조사와 집담회(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등을 통해 심층 분석하고 정책 제안을 하는 ‘6411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노회찬은 없지만 ‘노회찬 정신’은 계속된다. <한겨레21>은 6411프로젝트 가운데 ‘코로나 시대’에도 변함없이 공동체의 ‘돌봄’을 책임지고 지탱하는 50~60대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5월 말~6월 초 시설요양보호사·재가(방문)요양보호사·장애인활동지원사 3개 직종에서 각각 3~4명씩 참여(11명)한 재단의 집담회와 <한겨레21>의 후속 인터뷰(참여자 3명), 재단이 7월12일 진행한 ‘6411 사회극’을 바탕으로 돌봄노동자들의 삶을 재구성해봤다. 집담회와 인터뷰는 서울·경기·충청에 거주하는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돌봄노동 경력 5~10년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_편집자주

7월12일 일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노회찬재단(재단) 교육장에 50~60대 여성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출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쓴 뒤 12명이 자리에 앉았다.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봉제노동자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재단이 최대헌 ‘소셜디자이너 Doing' 공동대표(심리극장청자다방 대표)와 함께 기획한 ‘6411 사회극’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사회극은 ‘역할극’(문제를 겪는 ‘가상의 인물’을 정하고 그의 입장에서 감정을 표출)을 통해 자신이 처한 문제나 현재 느끼는 감정을 털어놓아, 자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회사나 단체 등에서 구성원 사이 갈등을 줄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활용한다.

7월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노회찬재단에서 50~60대 여성노동자들이 ‘6411 사회극’을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7월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노회찬재단에서 50~60대 여성노동자들이 ‘6411 사회극’을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청소하러 온 주제에 별나게 군다’

재단이 50~60대 여성노동자들을 사회극에 참여시킨 건, 이들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집담회에서 50~60대 여성 돌봄노동자들은 사회를 유지하는 자신들의 노동에 자부심을 보였지만, 일터에서 겪는 다양한 ‘갑질’과 차별에 위축된 상태였다. 특히 코로나19로 사실상 집이나 시설에 갇힌 돌봄 대상자들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최대헌 대표는 사회극 시작에 앞서 노동자 12명에게 일터에서 화나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는 상황을 종이에 적어 교육장 벽에 붙이게 했다. ‘직장에서 존칭을 써야 하잖아요. 야~라고 부르지 마세요’ ‘청소하러 온 주제에 별나게 군다’ ‘너 바꿀 수 있어(물건이랑 동일 취급)’ ‘이 시국에 일 주는 게 어딘데’ ‘당신은 우리 집에 왔으니까 파출부처럼 다 해야 돼’….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팀장·센터장, 이용자(돌봄 대상자), 이용자 보호자 등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울분을 삭인 마음이 글자로 표현돼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한 50대 돌봄노동자(요양보호사)는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말했다. “집에서는 위대한 엄마라고 생각하는데 직장에 오면 그런 기분이 싹 사라져요. ‘아줌마’ ‘야’ 대신 ‘○○씨’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기분이 덜 상할 것 같아요.”

“이름은 말숙씨가 좋을 것 같아요.”

역할극이 시작됐다. 빈 의자를 가운데 두고 가상의 인물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의자를 지켜보던 노동자들은 가상의 인물 이름을 ‘말숙씨’라고 부르자고 했다. 연기자 역할을 맡은 3명('소셜디자이너 Doing' 디렉터)이 말숙씨를 둘러싸고 앞서 벽을 가득 채운 ‘갑의 언어’를 외치며 몰아붙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켜보던 노동자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숙씨는 왜 당하기만 할까요

“말숙씨는 왜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할까요?” 최대헌 대표의 질문에 노동자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잘리잖아요. 놀아야 하잖아요.” “일을 못하면 생활하기 힘들잖아요.” “말숙씨는 아마 늦은 나이에 직업을 찾아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을 것 같아요.” “언니들도 그렇게 일해왔으니까요.”

말숙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현재 처한 상황을 좀더 들여다봐야 한다. 노동자들은 빈 의자에 앉은 투명인간 말숙씨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했다.

#1 코로나 스트레스

재가요양보호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가정을 정기 방문해 보통 3~4시간 간호와 목욕, 간단한 가사노동 등의 서비스를 한다. 시설요양보호사는 요양시설에서 교대근무를 하며 중증 노인 환자를 24시간 간호한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월 100시간 안팎(장애 정도에 따라 다름)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중증 치매 환자, 장애인 등 돌봄 대상자들은 사실상 집이나 시설에 갇혀 생활했다. 이들의 스트레스는 자신을 돌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전가된다. 그만큼 돌봄노동 강도가 올라간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무방비로 노출된다. 감염병 확산이 지속될수록 돌봄노동자의 스트레스는 쌓여간다. “코로나가 있다보니 어르신들이 불안한 거예요. 계속 불안하니까 ‘왜 왔느냐’ ‘마스크 쓰고 다녀라’ ‘딴 데 움직이지 말고 집에만 있다가 우리 집에만 와라’ ‘소독해라’ ‘어제 어디 갔냐’ ‘혹시 다른 데 가서 뭔 일을 한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온종일 계속하세요. 감정노동도 늘고 번거로운 일이 많아졌죠. 이분들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시다보니 그런 건 알겠는데….”(50대 후반 재가요양보호사 ㄱ씨)

“우리 집에만 와라” “소독해라”

“저는 휠체어 이용하시는 중증장애인(뇌병변) 활동지원사예요. 코로나 때문에 운동 못 가고 집에 계시니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요. 장애인분들의 특성이 (활동을 안 하시면) 근육이 굉장히 망가지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장애인이 평소 다니던 체육관이 문을 닫았어요. 집에만 머물다보니 ‘음식을 어떻게 해달라’ ‘조미료를 넣어달라’ 요구도 많고요. 이용자 기분을 맞춰야 하니까 그게 많이 힘든 것 같아요.”(40대 후반 장애인활동지원사 ㄴ씨)

“치매 어르신 집을 방문하는데 가족 중 하나가 △△△(5월 다수 확진자가 나온 지역)를 다녀온 거예요. 보호자 가족과 이야기하다 우연히 알았어요. 가족 한 명이 보건소를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식겁했어요. 바로 검사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다시 그 집에 갔어요.”(50대 후반 재가요양보호사 ㄷ씨)

“코로나 걸리면 안 되니까 일 끝나면 집에서만 ‘방콕’해요. 모임도 안 가고 사람도 안 만나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풀 데가 없죠. 우울증 같은 게 온다는 동료가 많아요.”(50대 후반 시설요양보호사 ㄹ씨)

#2 마늘을 까야 하는 이유

50대 중년 여성은 보통 자식을 어느 정도 키운 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데, 경력 단절 탓에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돌봄노동 일자리를 선택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장기요양 실태조사’를 보면 돌봄노동자(91.1%가 요양보호사)의 94.7%가 여성으로, 평균연령은 58.7살로 집계된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도 많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봄 대상자와 그 가족들의 ‘갑질’과 ‘성희롱’ 등에 수시로 노출된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94.7%가 여성

정부가 노인(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과 장애인 돌봄(2011년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시행)을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였지만 실제 운영은 민간에 맡겨놓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민간 센터와 1년 안팎의 근로계약을 맺어도 이용자가 싫다고 하면 그냥 일이 끊긴다. 일이 그렇게 끊겨도 근로계약이 유지된 상태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재가요양보호사의 경우 돌봄 대상자나 그 가족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일이 없어지면, 다음 대상자를 만나기까지 한참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돌봄 대상자에게서 “내가 바우처(장애인이 정부에서 받는 한 달 활동지원 시간을 차감하면 임금이 지급되는 방식)를 긁으니 먹고살지 않냐”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고 한다. 돌봄 대상자들의 폭언을 묵묵히 참고 지속적으로 요구받는 온갖 허드렛일을 거절할 수 없는 구조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재가요양보호사 절반 이상이 손님 접대, 김장, 농사일 등 본래 업무 외 일을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전국요양보호사협회 실태조사)”며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책을 권고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대로다.

“(김치를 담그거나 김장할 때) 마늘 까는 거 진짜 양이 장난이 아니에요. 집에 가서도 우린 마늘 까야 하잖아요. 여기(손가락)가 물집이 잡힌 적도 있어요. 센터에선 배추 5포기 이상은 김장으로 취급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데, 막상 해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아요.”(50대 초반 재가요양보호사 ㅁ씨)

절반 이상이 업무 외 일 강요받아

“(돌봄 대상자가) 방울토마토를 다 눌러봐서 탱탱한 것만 사오라는 거예요. 다른 선생님(요양보호사)들은 다 해준다 그러면서. 시장 가는 게 엄청 스트레스죠. 반찬 하는 것도 스트레스예요. 어제는 좋다고 했는데 오늘은 맛없다 그러고. 그릇이나 양념이 없는 집은 제가 집에서 식재료를 가져가요. 그런데 어떤 집에선 1년6개월 잘 드셨는데 어느 날 반찬 못한다고 잘랐어요.”(ㄱ씨)

“장애인과 이동할 때 차량 문제가 있어요. 해피콜(장애인 콜택시)이 잘 안 잡히잖아요. 그럼 이용자가 자차가 있는 활동지원사를 원해요. 기름값 제 돈으로 부담하며 차를 갖고 가요. (부당하거나 거절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말하면 잘리는 거예요. 왜냐면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해줄 수 있잖아요.”(50대 초반 장애인활동지원사 ㅂ씨)

“이용자 집 제사를 준비해서 지낸 적도 있고, 며느리 생일상을 차려달라 해서 한 적도 있어요. 이용자가 ‘나 때문에 네가 돈을 번다’ ‘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그래요. 그런데 저희가 노(No)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용자가 ‘너 마음에 안 들어’ 하면 끝나버리니까요.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이 더 잘할 것 같아서’같이 잘리는 이유도 황당할 때가 많아요.”(ㄴ씨)

7월2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다리 소극장’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헌정음반 발매 공연. 노회찬재단 제공

7월2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다리 소극장’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헌정음반 발매 공연. 노회찬재단 제공


#3 “우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요”

돌봄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 등 노동조건의 개선을 꿈꾸며 동시에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와 이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중증질환을 앓는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돌봄 대상자의 아픔에 안쓰러워해도 누군가의 거친 말 한마디에 노동자들은 움츠러든다.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이용자나 보호자도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양보호사 업무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이런 거를 알아야죠.”(ㄱ씨)

“이용자 교육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년에 몇 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한하는 방식 같은 건 도입할 수 없을까요?”(50대 초반 장애인활동지원사 ㅇ씨)

“장애인분들이 이용자로서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지원사 서비스를 정부와 센터에서 주는 대로 받으니 쉽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이용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ㄴ씨)

코로나 시대에 돌봄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는다. 정부는 2019년 3월부터 서울·대구·경기·경남에 돌봄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원’을 차례로 열었는데 이 제도가 더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원 도입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다. 집담회에는 사회서비스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50대 중반)가 참여했는데, 그는 사회서비스원에 소속된 것을 “든든한 ‘빽’”이라고 말한다. 월급제인데다 2인1조 근무가 가능해 돌봄 대상자의 성희롱, 폭력, 갑질에 노출될 위험이 줄었다고 한다.

사회서비스원 소속 ‘든든한 빽’

말숙씨 사정을 살펴본 ‘6411 사회극’은 막바지를 향해 갔다. 사회극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말숙씨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종이를 찢으며 외쳤다. “말숙씨도 사람이야, 노비가 아니고. 말을 못하는 게 아니야. 애들 학원비 못 내는 심정 경험해봤니? 먹고사는 게 바빠서 말 못하는 거야!” “말숙씨도 예전에 잘나갔어. 니들이 사람을 우습게 보지만 그래도 가정에 가면 최고의 엄마야!” “말숙씨가 얼마나 노력하고 살았는데 인정도 안 해주고… 사람 취급 좀 해주면서 뭐라고 해.”

최대헌 대표는 노동자들에게 말숙씨를 위로하는 한마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노동자들은 한마디씩 남긴 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가정으로,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숙씨, 인생 열심히 살고 있어. 훌륭한 사람이야.” “말숙씨, 네 잘못이 아니야. 힘내고 파이팅!” “말숙씨, 누가 뭐래도 우리 떳떳한 일을 하는 거야.”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질 거야. 말숙씨, 힘내.”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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