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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n] 성범죄 처벌 피하려 ‘장기 기증’ 서약이라니

수임료가 1천만원인 성범죄 전문 변호사들의 ‘기소유예 수법’
등록 2020-07-18 07:07 수정 2020-07-21 01:12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가 석방돼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가 석방돼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국민인 ‘W2V’(웰컴투비디오) 사이트 회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의 악순환적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범죄인의 신병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여 관련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수사 과정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구국으로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범죄인의 신병을 확보함으로써 주도적으로 대한민국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철저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범죄인인도심사 결정문 내용 중 일부다. 그러나 웰컴투비디오 사이트를 이용한 범죄자금제공자(일명 ‘유료회원’)들에 대한 수사는 2018년 대부분 마무리됐다. 검거인원 235명 중 43명(손정우 포함)만이 재판까지 이어졌다. 경찰 단계에서 217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 기소유예이거나 불기소처분이 내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고까지 이어진 43명 중 실형은 운영자인 손정우 단 한 명만 받았다. 대부분은 벌금형,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유예였다. 재판부의 ‘바람’과 달리, 물증 확보가 쉬운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한국에서 수사·재판은 철저히 진행되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어떻게 법망을 피하거나 선처를 받는 것일까.

① 성범죄 전문·전담 변호사

텔레그램(n번방) 집단 성착취·성폭력 재판을 모니터링하려고 서울중앙지법에 갔다가 분주히 움직이는 남성 변호사를 만났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상태에서 법정을 드나들며 떠드는 그가 낯익었다. 검색해보니 유튜브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에게 조언하는 변호사 중 한 명이었다. 공소사실 일부를 부인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를 불러내 증언의 고통을 안기는 방식으로 대응하라는 것, ‘성범죄 전문·전담 변호사’가 유튜브에서 하는 말들이다.

2020년 현재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바로 ‘아청법 기소유예’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현직 변호사들이 앞다퉈 디지털성범죄자에게 수사기관 진술 방법, 합의 방법 등 여러 ‘팁’을 제공하는 탓이다. 물증 확보를 최소화하려면 저장장치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압수수색이나 포렌식(과학수사)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 범행을 축소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물증 확보를 피할 수 없을 때는 ‘기소유예’를 끌어내라며 여러 전략을 소개한다. 반성문을 비롯해 선처받을 수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얼마 전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범 ‘배아무개씨’의 재판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갔는데, 한 변호사가 ‘요새는 장기기증서약이 대세’라는 말을 했다. 바로 검색했더니 유튜브 영상에 선처 자료로 장기기증서약을 올려놓은 것이 확인됐다.

이들 변호사는 ‘억울함’을 부각해 가해자의 죄의식을 옅게 한다. 물증이 있어 유죄가 나올 것 같으면 피해자를 압박해 합의하거나, ‘처벌불원의사’나 고소 취하를 유도한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무고, 명예훼손, 모욕 등 보복성 고소를 일삼아 법적 다툼을 얽히고설키게 한다. 가해자가 기소유예를 받을 경우 수임료는 건당 500만~1천만원. 정형화된 매뉴얼이 있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인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성범죄 전문을 내세우며 자극적인 문구로 광고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모니터링을 약속했지만, 성범죄 전문·전담 변호사들은 오늘도 성행 중이다.

② 증거인멸을 가르치는 인터넷

2019년 손정우에 대한 미국 법무부 자료가 공개된 뒤 바로 인터넷카페(파일공유 단속 관련 누리꾼 대책토론)를 검색했다. 2018년 진행됐다는 웰컴투비디오 사이트 유료회원의 수사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 인터넷카페는 회원만 15만 명 정도 되고, ‘아청법 마당’이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검색 결과, ‘대다수가 초범인 20대 남성’이라는 경찰 발표처럼, 10~20대 남성들이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이들은 댓글이나 별도의 게시물을 올려 △영상 다운로드 기록 삭제 방법 △컴퓨터 덮어쓰기(증거인멸) 방법 △수사기관 진술시 요령 △선처를 받기 위한 각종 자료 △실제 수사 과정에 대한 ‘후기’ △수사 결과 등을 공유했다. 그들에게는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호기심으로’ ‘남들이 다 하니까’ 해봤다고 자신의 범죄행위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조언’하는 이들도 ‘운이 없어서’ ‘위장·함정 수사에 걸려서’ 등의 표현을 써서 그 사람들의 죄의식을 희석하고 있었다.

이들이 웰컴투비디오에서 n번방으로 끊임없이 범죄를 이어온 것이다. 현재 검거돼 재판받는 피고인 중 이미 유사 범죄로 벌금형, 집행유예 등의 선처를 받은 이도 꽤 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빠져나온 경험이 일종의 ‘훈장’으로 남아 더 악랄한 디지털성범죄에 가담하는 동기가 된다.

③ 부실 수사, 판박이 판결문, 선처의 악순환

소라넷, 양진호, 손정우…. 디지털성범죄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가해자들은 가벼운 형을 선고받고, 범죄 수익 추징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의 수사기관은 ‘한국 남성이라면 다 야동을 보는 것이며 운이 안 좋아 걸렸다’는 인식을 피의자에게 심어주며 부실하게 수사했다. 거기에 변호사는 ‘큰 시장’인 성범죄 수임을 위해 윤리를 내던졌다. 법원은 어떤가? 손정우를 비롯한 해당 사이트 이용자들의 판결문은 어디서 찍어낸 것처럼 다 똑같다. 가해자가 인정하고 읍소하면 내용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선처하는 관행이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겠는가.

지난 일주일 동안 응급실을 여러 번 다녀왔다. 살 생각도 의욕도 없어진 피해자들을 붙들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붙들고, 메시지를 보내고, 불러내 식사하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한 목숨, 한 목숨 겨우 붙여놓고 있다. 정치권이, 법원이, 수사기관이 보내는 절망적 신호에 스러지는 사람들을 간신히 잡고 있다. 더는 피해자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기록되지도 알려지지도 않는 그 죽음들을 안고 가고 싶지 않다. ‘악순환의 고리’가 과연 무엇인지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 그건 바로 당신들이다.

반성폭력 활동가 ‘마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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