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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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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정리, 이별...뭐든 대행해 드립니다

기상 알람부터 밤중 바퀴벌레 퇴치까지,
다른 사람에게 일 맡기는 ‘게으른 경제’의 시대
등록 2020-07-12 11:56 수정 2020-07-17 00:33
‘대행사회’를 끌고 있는 대표 주자는 배달음식 시장이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대행사회’를 끌고 있는 대표 주자는 배달음식 시장이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아침 6시33분,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머리맡을 뒤척여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를 받았다. “ㄱ님, 일어날 시간이에요. 일어나세요.” 오늘 있는 중요한 회의를 놓칠세라 미리 신청한 모닝콜 서비스였다.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 찍혀 있다. 휴대전화 알람은 잠결에 끈 듯하다.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열었다. 전날 도시락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에그 단호박 샌드위치가 도착해 있다.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고 씻은 뒤, 이틀 전에 세탁돼 배달된 정장을 꺼내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아차, 오늘은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날, 현관 앞에 분리 배출할 재활용품을 놓아두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분리수거 서비스를 신청했다. 간만에 집 청소 도우미 신청도 함께 했다.

낮 12시, 팀원들과 배달음식 앱을 통해 피자를 주문했다. 주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식사 뒤 약국에서 사다달라고 심부름 앱에 요청해 받은 감기약을 먹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집이 깨끗하게 청소돼 있다. 재활용품을 담아둔 바구니도 비워져 있었다. 저녁 8시, 중고 거래 카페에서 산 카메라를 받았다. 비싼 카메라라서 불안해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없었다. 심부름 서비스 앱에 카메라를 판매자에게 받아달라고 했더니 무사히 손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살펴보는데 에어컨 뒤쪽에 검은 물체가 서서히 움직였다. 악! 바퀴벌레다. 에어컨 주변 틈을 막아두고선,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요청글을 대행업체 앱에 올렸다. 밤 10시, 업체 직원이 와서 바퀴벌레를 능숙하게 잡았다.

한숨 돌린 밤 11시, 오늘 하루 누군가의 도움으로 얻은 서비스를 계산해봤다. 모닝콜 2천원, 새벽배송 0원(한 달 2900원), 세탁물 배달 3천원, 분리수거 4천원, 청소 4만원, 피자 배달 3500원, 약 배달 3천원, 카메라 배달 1만원, 바퀴벌레 잡기 1만5천원, 모두 합쳐 8만500원. ㄱ씨가 누린 편리함의 대가다.

사생활 아웃소싱 ‘대행사회’

ㄱ씨의 하루를 대행 서비스로 상상해봤다. 앞서 언급한 서비스를 ㄱ씨가 하루 안에 모두 받았다는 게 상상일 뿐, 서비스 자체가 상상인 것은 아니다. 모두 플랫폼을 기반으로 실제 운영되는 서비스다. 과거 가족 내에서 해결했던 일들이 이제는 시장으로 넘어왔다. 돌봄·가사를 도우미가 대신하거나, 음식을 배달해 집에서 먹는 일도 이미 익숙해졌다. 이젠 쓰레기를 ‘대신’ 버리고, 약을 ‘대신’ 사다주고, 책상을 ‘대신’ 조립해주고, 바퀴벌레까지 ‘대신’ 잡아주는 서비스가 일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사생활을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나를 빌려드립니다〉)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을 외주화하는 ‘대행사회’에 산다.

맞벌이 부부인 정소영(38)씨는 종종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 최근엔 수납 정리를 대신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라 재택근무를 하던 4월께였다. 5살짜리 아들과 남편, 세 식구가 함께하는 집은 치워도 치워도 어수선했다. 소영씨 부부가 “정리에 소질이 없기도” 했다. 소영씨는 “집에서 일하는데 집중이 안 됐다. 카페에 나가서 일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진단받고 집 정리를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리 업체에선 사전에 정리할 짐의 양을 살폈다. 그리고 정리 당일, 전문가 대여섯 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집 안의 모든 짐을 꺼내놓고 용도에 따라 분류했다. 전문가마다 옷, 주방 등 맡은 구역이 달랐다. 가격은 70만원. 비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소영씨는 대신 쾌적함과 일상을 얻었다. “5월 황금연휴 동안 옷방, 주방 등 매일 한 코너씩 직접 정리한 회사 선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몸을 갈아넣는 대신 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았고, 재택근무하는 동안 일하러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됐다. 정리하는 일이 전문 영역이라고 느꼈다.”

구아무개(47)씨도 ‘역할 대행’ 서비스를 받았다. 1인 가구인 구씨는 1월 내시경 검사를 할 때 보호자가 꼭 동행해야 한다는 병원 쪽 요구에 병원 동행 서비스를 신청했다. 검사일이 평일이라 멀리 사는 가족이나, 휴가를 내야 하는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지인 대신 병원에서 구씨를 기다린 동행 담당자는 구씨에게 검사실을 안내하고, 의사에게 소견을 듣고 메모를 전달했다. 그리고 구씨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구씨는 “5만원가량 들었지만, 동행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선 또다시 이용할 것 같다”고 했다.

수납 정리 서비스를 받은 뒤 옷장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정소영 제공

수납 정리 서비스를 받은 뒤 옷장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정소영 제공


최고의 자원, 금전에서 시간으로

대행사회의 주 고객층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1인 가구나 맞벌이하는 2030세대로 본다. 이 세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기꺼이 돈을 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직장 업무나 취미 생활 등을 뺀 나머지 일을 대신할 서비스 제공자를 구한다. 중국에선 이를 ‘란런(懒人·게으른 사람) 경제’, 미국에선 ‘레이지 이코노미’(Lazy Economy·게으른 경제)라고 소비시장을 분석해왔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소비시장을 분석하며 매년 내놓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꼽은 키워드도 ‘게으른 경제’와 일맥상통한 ‘편리미엄’(편리+프리미엄)이다. 편리함이 곧 프리미엄, 즉 편리함을 위해 돈을 쓴다는 뜻이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건, 그동안 최고로 여겨온 자원이 금전에서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기술 발달로 수요와 공급 매칭이 더 쉬워져 앞으로 대행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용자는 가계경제의 책임감을 갖고 재정 상태를 잘 운용할 필요가 있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대행사회를 끌고 있는 대표 주자는 배달음식 시장이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 동향을 보면, 배달음식 시장은 2017년 2조9624억원에서 2018년 5조2731억원, 2019년 9조7328억원으로 해마다 껑충껑충 늘고 있다. 배달앱 1위인 ‘배달의민족’도 이를 뒷받침한다. 배달의민족 주문 건수는 2017년엔 전년 대비 209%, 2018년 207%, 2019년 183%로 매해 세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다. 2020년 6월 기준 주문 건수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매달 60~80%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회사의 주문 건수가 늘어났다기보다, 배달음식 시장 전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정착되면 배달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배달음식 시장이 대행사회를 끈다면, 새로 등장한 심부름 서비스 시장은 대행사회를 밀고 있다. 2018년 5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심부름 서비스 ‘김집사’는 대단지 아파트에 ‘직원 스테이션’을 두고 각종 심부름을 대신한다. 음식 배달은 기본이고 약국·편의점의 상품을 사서 배달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가구 옮기기 등 소소한 가사 서비스를 한다. 세탁물 배달은 3천원, 약 구매 대행은 3천원, 짐 옮기기는 1만원이다. 김집사 관계자는 “편의점에서 마스크 사기, 학교나 학원에 아이 책가방 갖다주기 같은 심부름도 있다. 매년 이용자가 늘어 2020년 1~6월 서비스 건수는 2019년 같은 기간보다 5.52배 늘었다”고 했다.

‘각자도생’ 사회가 불러온 단면

김집사 외에 인터넷에 ‘심부름 대행’을 검색하면 업체 이름이 10개 이상 뜬다. ‘애니맨’이라는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6년째 독특한 ‘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고객 요청으로 매년 설·추석 명절에 서울~대구 왕복 기차표를 끊고 있다. 가족이 여럿인데다 출발 시간이 제각각이라, 온라인 구매가 쉽지 않은 탓이다. 명절 전 아침 6시께 역에 가서 기차표 4~10장을 사서 우편으로 보낸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도움이지만, 일상이 외주화된 사회를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적 연대와 협력 대신 ‘각자도생’ 사회가 불러온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과거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탁’해 해결했던 일들이 사회 전반이 개인화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홀로 생활하는 이들이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며 공동체를 더 잊게 되는 악순환, 즉 편리함의 저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영화 <새드 무비>에 이별 대행 서비스를 하는 인물(차태현)이 나온다. 영화사 제공

영화 <새드 무비>에 이별 대행 서비스를 하는 인물(차태현)이 나온다. 영화사 제공


전 애인의 새 애인을
떼어놓고 싶으세요?

2005년 개봉한 영화 <새드 무비>에서 가난한 백수인 정하석(차태현 역)은 다른 사람들의 이별을 대신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차태현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가 개봉되면 하석처럼 ‘이별 대행’을 하겠다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당시 우스개로 했던 농담은 현실이 됐다.

“애정이 식은 애인(또는 전 애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으신지요? 애인과 헤어지고 싶은데 마땅한 명분이 없으신지요? 전 애인의 새 애인을 떼어놓고 싶으세요? 전문심리분석가의 분석을 통한 시나리오와 철저한 상황 보고. ○○○이 귀하의 상황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한 역할 대행 업체의 누리집에 올라온 글이다. 이 업체가 내세운 대행 업무는 연애 상황 연출 외에 설득, 동정심 유발, 질투심 유발, 화해, 이별 통보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대신 전하는’ 서비스다. 이런 ‘감정 대행’은 역할 대행 업체에서 이뤄진다. 과거에는 하객이나 연인 등 특정 상황에 필요한 역할을 대신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던 업체들이 개인의 내밀한 감정인 사랑, 이별, 사과 등을 상품으로 내건 것이다. 비용은 10만~20만원 정도.

역할 대행 업체에 따르면, ‘이별 대행’을 할 경우 미리 의뢰인과 상담해 이별하려는 이유, 의뢰인과 통보 대상자의 연애 상황 등 정보를 공유하고 시나리오를 짠다. 이별 통보를 대신하는 업체 직원은 의뢰인의 가족, 친척, 직장 동료 등으로 관계를 설정한다. 이별 통보를 받는 당사자의 기분을 덜 상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별 대행을 해본 이아무개씨는 “이별하자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도 기분 나쁠 수 있는데 역할 대행 업체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나. 또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말해야 의뢰인에게 해코지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정 대행에는 ‘퇴사 대행’ 서비스도 있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 그만두거나, 급히 퇴사해야 할 때 주로 활용된다. 서비스 순서는 간단하다. 원하는 퇴직일을 정하고, 사직서 등 문서를 작성해 퇴사 대행 업체에 넘기면, 업체는 의뢰인을 대신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반환해야 할 물품을 전달한다. 이후 퇴직금 정산 같은 사후 처리 업무도 대신한다. 비용은 처리해야 할 업무에 따라 20만~30만원 선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이를 ‘감정 근육’이 부족한 ‘MZ(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반~2010년대 초중반 출생자)의 성향으로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텍스트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가 ‘언택트’에 익숙해지면서 대면을 어려워하고 자기 감정을 전달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정해준 루트(경로)대로 살아온 이들은 직접 부딪치고 감정을 겪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감내하길 꺼린다”고 했다.

스스로 겪어내야 할 감정을 타인에게 맡기는 현상을 전문가들은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개인의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인 감정은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삶에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시장에 위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퇴사 대행 서비스에 대해 기업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기업의 인사팀 직원은 “평판조회를 하면 퇴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것을 알게 될 텐데, 자기 일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판단돼 채용이 꺼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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