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있지만 안 보낸다.’
7월6일 세계 최대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에 송환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서울고법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또 ‘재량’이다. 그동안 디지털성폭력 범죄자들을 선처해왔던 한국 법원의 재량이 이번에 또 반영됐다. 재판부는 법대에서 엄중한 목소리로 ‘면죄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범죄인에게 적극적 수사 참여를 독려했지만, 법원의 선언은 틀렸다. 법원은 늘 그렇듯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예비) 범죄자들에게는 아무리 악질적인 디지털성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약한 한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으며, 몇 년 살겠다는 각오만 하면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한국 법원이 디지털성범죄를 양산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미 법무부 자료로 드러난 ‘Jong Woo Son’
그는 세계 128만 명 회원을 둔 ‘W2V’(웰컴투비디오) 운영자다. 유료회원 4천여 명을 보유한 이 사이트를 운영하며 ‘비트코인’ 거래소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한국 수사기관은 이를 4억원이라 계산하지만, 44억원에 이른다는 추정치도 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성폭력 영상물’이 수익을 창출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보고 ‘성인’이 아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만, 중복 여부까지 확인해가며 올리도록 강제했다. 미 법무부 발표 자료 등에 따르면, 2살 미만 영유아를 포함한 영상 속 아동들은 신체훼손 등이 포함된 성적 학대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한국의 공소사실에 포함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만 3055개(268GB 분량)다. 2017년 5월~2018년 3월까지 불과 10개월 동안 W2V에서 발생한 다운로드 건수는 36만 건(파일 7만3722개)에 달한다.
그는 2018년 3월 구속 기소된 이후 디지털성범죄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성범죄 전문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1심 재판에 임했다. 그 결과 운영자임에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신상정보 공개는커녕 취업제한조차 면제됐다. 검찰은 항소했다. 2019년 5월2일 손정우는 1심에서 면제됐던 취업제한 5년을 포함해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해당 재판부도 ‘피고인이 자백하고,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으며, 성장 과정에서도 충분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했던 점, (2심 변론 종결 다음날인) 2019년 4월17일 혼인신고서를 접수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했다. 손정우는 일주일 만에 상고를 취하한다.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한 상태에서 양형부당으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것은 의미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 국적의 해당 사이트 ‘이용자’에 대한 수사·재판은 더 엉망으로 흘러갔다. 2018년 수사 진행 당시 인터넷카페 등에서 공개적으로 수사에 대비하는 ‘팁’을 공유하거나, 수사 진행 상황을 알리는 글들이 올라왔다. ‘다운로드받은 영상물을 삭제하라,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법률 상담을 받아라, 수사기관이 물증을 확보했을 경우 시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 등 조언을 주고받았다. 수사기관에 제출할 ‘반성문’을 카페에 공유하고 서로 평가도 했다. 수사 단계부터 다수의 이용자가 선처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2019년 10월 미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서 웰컴투비디오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Jong Woo Son’의 실명이 알려진 것도 이때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 청구(2019년 4월) 소식이 전해진 뒤 인도 청구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결국 법무부 장관이 나서 범죄인 인도 심사 청구 명령을 내렸고, 검찰은 인도 구속영장을 청구해 출소일인 4월27일 영장을 집행했다. 그는 다시 구속됐다. 그렇게 미 법무부 성명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착취 범죄자’ 중 한 명인 손정우에 대해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듯했다.
‘사법주권’이 거기서 왜 나오나
7월6일 서울고법 403호 앞.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1시간여 전에 도착했다. 법정 앞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공판 과정을 되짚으며 불허의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지 계산했다. ‘청구국(미국)에서 아동 성착취 혐의 등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어야 한다, 청구 대상 범죄인 자금세탁과 관련해 혐의가 없다, 미국으로 송환되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라는 범죄인(손정우) 쪽 주장은 범죄인 인도 거절 사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더구나 서울고법은 지난 10년간 인도 심사 청구 30건에서 ‘정치범’으로 분류된 단 한 건을 제외한 29건을 허가한 바 있다.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정치적 성격의 사건, 절대적 사유 또는 임의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 인도를 불허할 수 있다. 이번 건에 대해서도 허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기존 흐름에 맞는다고 판단했다. 불허 결정을 내리기엔 부담이 커 보였다.
오전 10시, 두 개의 중계법정에서 선고재판이 시작됐다. 재판부가 결정 이유를 읽어내려갔다. 재판부는 우선 범죄인 쪽 주장을 다수 배척했다. 인도 범죄(자금세탁) 외의 범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필요하다는 범죄인 쪽 주장에, 범죄인 인도 조약의 성격상 청구 범죄 외의 범죄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므로 보증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인도 범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청구국(미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범죄인 손정우 쪽이 내세운 사유를 모두 배척하는 재판부의 결정을 손으로 받아 적으며, 내심 허가 결정을 기대하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한국 재판부의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에 대한 언급.
“범죄인의 범죄는 초국가적 네트워크 기반 범죄다. (중략) 범죄 관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재판부 말을 받아 적던 펜을 집어 던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디지털성범죄는 선진적 수사기법과 국제 공조에 기반한 물증 확보가 중요하지 범죄인인 손정우의 진술은 의미가 없다. 디지털성범죄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형량을 낮추려 여러 꼼수를 동원하는 이유도 수사 과정에서 물증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정우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 더 적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판사들이 디지털 환경과 그에 기반한 성범죄에 무지하다는 것이 또 한 번 확인됐다.
한국에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는 최대 징역 5년
법원은 명백히 재량권을 일탈했다. “주권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국내에서의 적극적 수사를 통한 발본색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재판부가 도대체 이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운영자 손정우를 비롯해 웰컴투비디오 사이트 이용자에 대한 수사는 이미 2년 전 국내에서 종료됐다. 경찰과 검찰도 현재진행중이거나 예정된 수사가 없다고 밝혔다. 200명 넘는다는 한국 국적의 사이트 이용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기소유예 등을 받아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았다. 기소돼 재판받았다 하더라도 현재 검색되는 것은 43건에 그친다. 벌금형이 대다수인데다, 실형 선고는 운영자 손정우뿐이었다. 손정우가 추가적으로 조사받을 것이라곤 그의 아버지가 고발한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한 것이다. 이 역시 법정형이 징역 5년 이하다.
언제부터 한국 법원이 수사 명령을 내리고 지휘를 했던가. ‘운영자인 손정우의 신병을 한국에서 확보해 관련 수사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손정우를 미국으로 인도할 경우 국내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검찰 수사를 앞세우는 법원의 판단은 재량권을 넘어선 명백한 월권행위다.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는 것이 한국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상당한 이익이 된다’는 대목에서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한국 법원의 얄팍한 이해 수준과 더불어 권위를 내세워 현실을 무시하는 법관들의 경향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는 더 엄중하게 처벌할 곳으로 (범죄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는 세간의 이목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밝혔듯 ‘초국가적 범죄’이기 때문에, 그리고 과학적 수사기법을 총동원한 국제 공조가 절실한 범죄이기 때문에, 더구나 아동·청소년 대상의 성착취·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오히려 범죄인 손정우의 인도가 필요했다. 상호 호혜의 성격을 지닌 범죄인 인도에서 이번 한국 법원의 판단은 유사 범죄에서 한국 국적 피해자가 생길 경우 국제 공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시 법원으로 간다
법원이 불허 결정을 내린 뒤 당시 중계법정에서 해당 결정을 지켜봤던 수많은 여성이 법정 밖에 하나둘 모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디지털성범죄 등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락. 재판부는 ‘사법주권’을 강조하고 ‘자국민 보호’를 내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배제됐다. 피해자는 주권국가의 ‘자국민’이 아닌 것이다.
한국 법원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1심에서는 입법이 미비하다며, 손정우의 디지털성범죄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사법주권을 앞세워 국제 공조가 절실한 초국가적 범죄를 외면하고,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일부 해소할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범죄가 악순환되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그 연결고리는 바로 한국 법원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에서 디지털성범죄의 예방과 억제는 한 걸음 더 멀어졌다. 그러니 ‘우리들’이 그 연결고리를 끊어야겠다. 다시 법원으로 간다.
반성폭력 활동가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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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기소 가능성 불투명”
“손정우 송환 불허 판결로 사법 정의는 죽었다.”
7월8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시민 150여 명이 국화를 들고 줄지어 섰다. 이들은 ‘사법 정의’라고 쓰인 액자 앞에 헌화한 뒤 두 차례 절했다. 이틀 전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기로 한 서울고법 결정에 분노한 이들이 마련한 ‘장례 퍼포먼스’다. 시민단체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모두의 페미니즘’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았다. 한 여성 활동가는 성명을 읽으며 반문했다. “한국 사법부는 명백하게 무능했다. 그런데 미국 송환까지 거부하다니 공범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행동인가?”
같은 시간,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는 대학생 ㄱ(23)씨가 “성범죄자가 판사님들을 응원합니다. #판사님_덕분에”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남성인 그는 “가해자를 두둔하는 판결이 나온 걸 보고 화가 나서 (1인시위에) 나왔다. 동종 범죄를 억제하는 게 재판의 목적일 텐데 이런 악질적인 성범죄를 저질러도 엄벌은 피할 수 있다고 사법부가 홍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재판장인 강영수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등록 나흘째인 7월9일 청원 서명자가 40만 명을 넘어섰다.
청소년·여성 단체도 잇따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사법주권을 언급한 재판부 판단을 비판하며 “대한민국 법원이 지키고자 한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법원의 체면을 세우고 자존심을 지키려 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명을 통해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는 게 범죄 억지의 효과가 있다는 재판부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손씨에 대한 추가 증거 수집이나 추가 기소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재판부는 “범죄인 신병을 확보해 관련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 수집하고 이를 수사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세간의 우려대로, 손정우에 대한 추가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사기관이 쥐고 있는 손씨 혐의는 그의 아버지가 손씨의 미국 송환을 막기 위해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범죄수익은닉 혐의 건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살펴보면, 이 혐의의 최대 형량은 징역 5년 이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추가 기소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장윤미 변호사(법무법인 윈앤윈)는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앞선 수사로 기소 가능했으면 진작 했을 것이다. 실제 기소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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