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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위력적’ 장례식, 상주: 안희정

등록 2020-07-11 05:22 수정 2020-07-12 01:06

잊힌 줄 알았던 책 한 권이 다시 베스트셀러 자리에 놓였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와중에, 조문객을 마다하지 않은 한 장례식 덕이었다. 빈소 안쪽 한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직함이 표기된 조화가 자리를 잡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상주를 위로하려는 정치인들이 줄을 이어 빈소를 찾았다. 현직 국회의장, 국회의원, 국무총리, 장관… 현재 대한민국의 입법부와 행정부를 구성한 핵심 인물들이 상주의 손을 잡았고, 그 장면들은 모두 카메라에 잡혀 국민 앞에 놓였다.

‘위력’을 뽐낸 그 장례의 상주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였다. 안희정은 충남도지사를 지내던 시절 비서를 상대로 상습적인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사법부가 공인한 성범죄자의 모친상에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나서 위로의 뜻을 전한 것을 두고 비판이 이어졌다.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곳은 정의당이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안 전 지사 사건이 정치권력과 직장 내 위력이 바탕이 된 범죄이고,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피해자는 끊임없는 2차 가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했다. “오늘과 같은 행태가 피해자에게, 한국 사회에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도 덧붙였다.

수많은 여성이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를 이어갔다. 피해 생존자 김지은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사서 인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는 안희정 전 지사의 성범죄를 고발한 이후, 피해 생존자 김지은이 2년간 어떻게 싸워왔는지 생생히 담겨 있다.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최상위에 김씨의 책이 놓였다. 부산에서 독립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는 유진목 시인은 <김지은입니다>를 50권 주문했다며, 서점을 찾는 이들에게 나눠줄 예정임을 알리는 트위트로 연대의 마음을 밝혔다. 출판사 봄알람이 내놓은 책의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일이 우리의 정의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안희정이 아니다.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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