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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이탈여성 성착취’는 숨겨지는가

전수미 변호사 인터뷰… 한서은씨 #미투, 피해 말하기의 계기 되길
등록 2020-06-20 06:56 수정 2020-08-02 01:23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2019년 기준 북한이탈주민 3만3523명이 남한에서 살고 있다(통일부). 여성은 2만5276명(75%)으로 남성(8247명)의 세 배다. 여성 1인 가구도 26.6%나 된다.

불행히도 북한이탈여성 25.2%는 ‘자유의 땅’ 남한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는다. 음란전화(26%), 성추행(20%), 성희롱(18%), 스토킹(17%), 성기노출(17%), 강간미수(15%), 강간(11%) 등 피해 유형도 다양하다.(여성가족부 2017년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용역보고서, 조사 대상 북한이탈여성 158명) 2012년 같은 설문조사와 비교해보니 “음란전화 등 제외하고 모든 영역(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성기노출 등)에서 성폭력 피해가 증가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소극적이다. 자리에서 도망치거나(15%), 당하고 있거나(13%), 무조건 빌고 애원하는(11%) 식이다. 저항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10%)은 드물고 경찰 신고는 거의 없었다. 성폭력이 처벌되는 범죄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에서 보복당할까봐 두려워서다.(전수미 변호사)

그럼에도 용기 내어 다른 길을 선택한 북한이탈여성이 있다. 2010년대 중반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여성 한서은(30대 초반·가명)씨는 2019년 12월 국군정보사령부 군인 2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에 고소했다. 혐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이다. 북한이탈여성의 #미투다.

하지만 군검찰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답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당시 상황을 녹음한 음성을 듣도록 해 ‘플래시백’(재경험)이라는 2차 가해를 안기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 조처는 거부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한씨는 공포와 자살충동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에 기름을 부은 사건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에서 출발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이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법원이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한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법원’만 새겨야 할 글귀가 아닐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 사회’로 주어를 바꿔도 틀리지 않는다. _편집자 주

북한이탈여성 상당수가 탈북 뒤 남한에 들어오기까지 중국이나 제3국을 거치면서 성폭력이나 인신매매 등의 범죄에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탈여성은 남한 내에서 성폭력 피해(25.2%), 탈북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26.8%), 북한 내에서 성폭력 피해(18.7%) 등을 경험한다.(여성가족부 2017년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 남한 내에서 성폭력 피해 비율이 상당히 높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조사는 없다.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자문위원인 전수미(38·변호사시험 3회·사진) 변호사는 6월15일 <한겨레21>과 만나 “내 경험으로 볼 때, (북한이탈여성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는) 탈북 남성이 가장 많고 중국 동포, 남한 남성 순인 것 같다. 남한 남성 가운데 일반인도 있지만 경찰과 군인도 있다. 이 중 경찰은 북한이탈여성이 거주하는 동네를 관할하는 경찰서 보안과 소속 신변보호담당관(신변보호관)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현재 하나원에서 격주에 한 번꼴로 성폭력이나 자녀 양육 문제 등에 대한 법률 이슈를 강의하기에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법률 상담을 하려고 전 변호사를 찾는다. 남북 갈등 해소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화해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북한이탈주민 관련 단체에서 북한이탈여성을 돕는 활동을 십수 년간 했다.

전화나 대면으로 성폭력 상담 했지만…

신변보호관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건 보호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런 사례는 얼마나 되나.

전체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2015년부터 6년 동안 자신을 담당한 신변보호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 9명과 지인의 신변보호관에게서 성폭력 피해를 본 3명 등 모두 12명의 북한이탈여성 상담을 전화나 대면으로 진행했다. 가해자의 혐의는 강제추행 6건, 성희롱 3건, 폭행·협박 3건, 간음 2건, 강간 1건이었다. 일부 범행은 중복돼 벌어졌다.

전 변호사는 대표적 사례를 소개했다. 북한이탈여성 ㄱ씨가 하나원에서 나온 지 7개월여 만에 정착지원금 등 총 1천여만원의 사기를 당했다. ㄱ씨는 많이 힘들어하며 자신의 신변보호관에게 도움받을 방법을 호소했다. 유부남인 신변보호관은 위로해준다며 ㄱ씨와 술을 마셨다. 이후 신변보호관은 ㄱ씨를 모텔로 데려가서 성폭행했다. ㄱ씨는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고통을 겪다 전 변호사와 상담했다. 증거를 모아 소송을 진행하자고 했는데 이후 연락이 끊겼다.

20대 초반의 젊은 피해자 ㄴ씨는 신변보호관과 나이 차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신변보호관이 ㄴ씨의 생일에 꽃다발을 주는 등 살뜰하게 챙겼다. ㄴ씨는 신변보호관이 총각인 줄 알고 사귀게 됐고 임신까지 했다. 나중에야 신변보호관이 결혼한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과의 관계를 알리면 ‘같이 죽는다’고 협박했다. ㄴ씨도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됐다.

상대방의 삶을 장악한 ‘강자’

상담하고 나서 왜 연락이 끊기는 건가. 성폭력을 신고하거나 소송하는 일도 적은데.

우선, 북한이탈여성은 자신이 당한 성폭력이 처벌되는 범죄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신변보호관이 개인정보와 인적 네트워크 등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아는 만큼 보복당할까 두려워한다. 설령 처벌받는다고 해도, 몇 년 뒤 감옥에서 나와 자신에게 보복할 수 있다는 공포를 떨치지 못한다. 신변보호관은 경찰이라 고소·고발하는 게 더 어렵다. 본인이 경찰관이기에 수사기관에서 무엇이 증거로 쓰이는지 잘 알아 성폭력 범죄에서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진 옮기고 줄게, 잠깐만 보자’며 피해 여성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주요 증거인 통화음성 녹음파일이나 카카오톡·문자 메시지 등을 싹 지워버리는 식이다.

신변보호관이 가해자가 되는 메커니즘이 무엇일까.

신변보호관은 북한이탈여성의 이름, 나이, 집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훤히 알고 있다. 이들의 역할에는 ‘보호와 지원’도 있지만 ‘감시’도 있다. 북한이탈여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며 ‘여기는 왜 갔냐, 여기서 무슨 말을 했냐’ 등을 물으며 생활 전반을 관리한다. 이렇게 정보를 통해 상대방의 삶을 장악한 강자가 되는데다, 북한이탈여성이 믿고 의지하니까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우가 있다. 특히 홀로 탈북한 여성이 성폭력 범죄에서 주요 대상이 된다. 가족이 있는 여성은 성적으로 잘 건드리지 못한다.(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2019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가구 중 여성 1인 가구는 26.6%다. 2019년 기준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 비중은 75.4%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의 성폭력을 고소한 한서은(30대 초반·가명) 사건 말고도 군인이 가해자인 성폭력 범죄가 더 있나.

군인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3건 더 있다고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들었다. 이 3건은 피해자가 원치 않아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법적 절차를 시작하지 않거나 중도에 포기한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한씨가 대단하며, 이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탈여성 미투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말고도 비슷한 피해자가 있구나, 나만 당한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피해 여성이 더 나서주길 바란다. 성폭력이 일어난 건 본인 탓이 아니라 가해자 탓이다.

성인지 감수성 높이는 교육을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 한국의 법과 제도, 신고와 소송 절차 등 하나원에서의 교육을 좀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원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살펴본 건 아니다. 다만 본인이 당한 게 범죄인 줄 모르고, 본인이 피해자인 줄 모르고, 수치심에 자책만 하는 북한이탈여성이 많기에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탈여성이 교육받는 경기도 안성 하나원뿐 아니라 북한이탈남성이 교육받는 강원도 화천 하나원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성폭력 범죄가 예방되는 쪽으로 향상되면 좋을 것 같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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