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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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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공부의 기술…내가 모른다는 걸 발견하라

어떤 때보다 미래 예측 불가능성이 도드라지는 ‘코로나 시대’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사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공부의 기술
등록 2020-05-04 14:55 수정 2020-05-07 05:35
수험생이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 안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며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험생이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 안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며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300년 전 교사를 잠재웠다가 오늘날 교실에서 눈을 뜨게 해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형 온라인교육(무크) 업체 코세라의 공동창업자인 대프니 콜러의 말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사회 대부분의 영역을 과거와 딴판으로 변모시켰지만, 유독 학교와 교실은 신기술 수용에 둔감했다. 인터넷강의(인강)와 온라인 미팅이 있는 걸 알았지만 모든 학생이 온라인 개학을 하고 인터넷으로 수업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코로나19 심각 단계로 인한 개학과 등교 연기가 3월, 4월을 넘기자 결국 온라인 개학과 수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이 말했는데, 코로나19는 미래 기술을 단번에 모두에게 퍼뜨린 계기였다. 하루아침에 교사와 학생은 교실 아닌 온라인에서 만나 공부해야 했다. 불안과 함께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던져졌다. 온라인에서 교육과 공부는 어떻게 달라질까?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공부하는 게 효율적일까?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왜 배우느냐’

교육 환경과 방법은 수백 년간 거의 바뀌지 않았다. 바로 그 이유로 기술을 동원한 다양한 개혁이 시도돼왔다. 무크, 거꾸로교실, 디지털교과서, 맞춤형 강의 등을 활용하는 에듀테크다. 무크와 인강은 누구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강사로부터 최고의 수업을 듣게 해준다.

디지털교과서, 태블릿PC 등을 활용하는 ‘에듀테크’의 최대 장점은 학생별 맞춤 교육과 풍부한 학습자료 제공이다. 학습자의 흥미와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전달이 아닌 학습자별 특성에 최적화한 맞춤화와 정교한 상호작용으로 학생 주도적 개별 학습이 가능하다. 교과서 그림으로 신체 장기 구조를 학습하는 방식과 태블릿PC에서 입체 사진과 동영상으로 그 기능과 구조를 체험해보는 학습의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재난 상황이 불러온 온라인수업은 미래의 공부를 위한 복음일까?

실증적 연구와 사례는 섣부른 에듀테크 적용을 우려하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9월 발표한 보고서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보다 적은 시간 활용하는 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았다”며 컴퓨터 활용 교육 옹호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31개국 15살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평가한 조사 ‘피사(PISA) 2012’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였다. 교실에서 하루 평균 컴퓨터 이용 시간이 적은 국가일수록 학생들의 성취가 뛰어났다. 한국(9분), 중국(상하이 10분·홍콩 11분), 일본(13분) 등이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프랑스의 민간 교육단체 리부트재단이 2015년 피사 데이터를 분석해 2019년 6월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2012년 피사 데이터 분석과 같은 경향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학교에서 태블릿PC 사용이 독해력 학습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였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국가교육정책센터(NEPC)는 2019년 보고서에서 “미심쩍은 가정에서 출발한 맞춤화 온라인 학습 기술이 업계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카운티는 2014년 모든 학생에게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기로 하고 종이 교과서를 대체했는데 시험 성적이 떨어지고 학부모 우려가 커져 기기 보급을 애초의 5분의 1로 축소했다.

미국의 교육평론가 제프리 셀링고는 2014년 책 <무크U: 온라인 교육의 중도포기 이유>를 펴내 무크의 실제 성과를 점검했다. 무크는 학습 동기가 강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5%의 자발적 학습자들에게만 효과적일 뿐, 대다수 학생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절대반지’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디지털 기기는 학습용만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멀티태스킹이 학생들의 주의산만과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은 오래된 우려다. <지식 격차> 저자인 내털리 웩슬러는 2019년 12월 <엠아이티(MIT) 테크놀로지 리뷰> 기고에서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에듀테크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난 이유는, 기술 사용이 학습에서 동기부여와 상호작용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에듀테크는 개인별 맞춤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에 특화돼 결과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고 본다.

온라인학습은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저해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교육에서 지식 전달과 습득보다 학습 동기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의 저자 존 카우치는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왜 배우느냐, 즉 동기부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실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할 수도 없다. 미국의 전직 고교 교사인 스티븐 호퍼는 올해 초 <미디엄> 기고에서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은 디지털 기술 없이 일상생활과 학습이 불가능해졌다”며 디지털 기술 금지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학습과 생활의 필수 환경이 된 만큼 금지와 차단을 넘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는 온라인교육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려줬다. 미국 작가 니르 이얄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 능력인데, 교사와 학부모가 이를 가르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학생들이 로봇을 이용해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핀란드 학생들이 로봇을 이용해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래 예측 불가능을 알려준 코로나19

정보의 바다에 빠진 디지털 세대를 향한 우스개가 있다. 미국의 게시판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문답이다. “60년 전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로 시간여행을 왔을 때 가장 이해하지 못할 현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쏟아진 답변 중 사람들이 무릎을 친 것이 있다. “누구나 주머니 속에 인류가 쌓아온 지식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갖고 다니지만 주로 고양이 사진을 보고, 모르는 사람들과 말다툼하는 데 사용한다”는 답변이었다. 오늘날 정보 이용 환경과 교육 현실의 문제를 웅변하는 문답이다. 달라진 정보 이용 환경에서 전통적 교육법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열쇠가 들어 있다. 지난 시절 혜택받은 소수만 지닐 수 있던 ‘절대반지’ 같은 도구를 누구나 지니게 됐지만, 절대반지답게 쓰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학교 공부는 목표가 명확했다. 입시와 성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시험이 요구하는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암기·기입하는 능력이었다. 2016년 12월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서울대 A+의 조건>은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질문과 토론이 활발할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였다. 서울대에서 최고 학점을 받는 학생들의 비결은 질문 없이 교수의 말을 토씨까지 적고 외워서 강의 내용와 똑같이 답안지를 작성하는 능력이었다.(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이른바 명문대, 자격증 등 공부의 목표와 경로가 외부에서 주어졌던 시기였다.

코로나19로 개학, 대학수학능력시험일 등 학사 일정이 연기되고 온라인수업이 이뤄지면서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관련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코로나 난국’에서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현실이다. 지금 교육 관련자들이 혼란에 빠진 이유가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의 공부는 지향하는 목표와 과정이 명확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졌다. 코로나19는 미래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란 것을 알려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공부는 항상 미래를 위한 계획이자 준비였는데 오늘날 미래는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해졌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알려준 사실이다. 미래 보고서는 회계사, 약사, 변호사 등 유망 전문직이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위협에 더 취약한 직업이 됐다고 전망한다. 지난 시절엔 사회변동이 적어 부모 세대가 추천하거나 선망한 전공을 택해 공부했고, 그것이 유효했다. 학습의 동기와 결정을 부모 등 외부에 위임했다. 숨가쁘게 지식과 기술이 발전하는 세상에서는 미래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다. 코로나19는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을 알려주는 사례다. 공부가 과거엔 고정된 목표를 향한 질주였다면 이제는 수시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향한 달리기가 됐다.

앨빈 토플러는 1974년 저서 <내일을 위한 공부>에서 미래를 대비한 교육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남아메리카 내륙의 호수 유역에서 살아온 원시 부족의 예화다. 대대로 호수에서 살아온 이 부족은 젊은이들에게 카누 만드는 법과 고기 잡는 법 등 소중하게 전승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호수로 유입되는 강의 상류에 거대한 댐이 건설됨에 따라 호수가 말라버린다. 부족이 전수한 생계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전통과 문화는 모두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토플러가 묻는다. “호수가 말라버리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후손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달인에게는 내면적 동기가 있다

공부를 항해에 비유하자면, 지난 시절에는 등대와 별자리, 나침반을 의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항해했다. 이제는 길잡이 자체가 사라진 망망대해고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의 항해다. 미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공부는 무엇일까.

외부적 동기는 주변의 평가와 영향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공부는, 미래의 확실한 변화 방향을 탐지해 그것에 대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공부를 위한 내면적 동기를 찾는 길이다. 생텍쥐페리가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무한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하라”고 말한 대로다.

2005년 이후 16년째 방영 중인 <생활의 달인>(SBS)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술과 전문성을 지닌 ‘달인’이 소개된다. 다양한 분야의 달인이 등장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생활의 달인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을 구체적 생업에서 구현해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달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고객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일을 정말 사랑해서 몰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인들은 노력과 연구를 통해 기술과 전문성이 개선되는 것을 무엇보다 즐거워하고 보람 있어 한다.

생활의 달인들은 어떠한 배경과 계기로, 끝없는 배움과 이를 통한 탁월한 성취라는 동기를 갖게 되었을까. 달인들이 지금 하는 일을 처음부터 천직이라고 여겼거나 간절하게 소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하면서 노력과 연구를 통해 기술이 개선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즐거움을 알게 됐다. 달인들은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는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누구보다 분명한 자신만의 동기와 목표를 지닌 사람이다. 그들이 생활의 달인이 된 또 다른 비결은 외적 보상과 동기가 아니라, 자기만의 내면적 동기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달인들의 공통점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재료비를 아끼거나 작업 시간을 줄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나 승진, 출세 같은 외적 보상을 자신의 가치로 설정한 게 아니라, 완벽함이나 아름다움 같은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설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현재 학교 교육의 80~90%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쓸모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가장 중요한 기술은 ‘어떻게 해야 늘 변화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일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2016년 한국을 찾아 인공지능 시대 미래 교육의 방향에 대해 한 말이다.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무지의 발견’이 메타인지다. 일찍이 공자가 앎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라고 자로에게 설파하고,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대로다.

레딧 게시판의 문답이 알려주듯, 공부는 어느 때보다 자율적이 됐으며, 그 출발점은 동기 발견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는 메타인지다.

구본권 <한겨레> 기자·<공부의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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