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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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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지원금, 선별환수 문턱도 넘을까

민주당 “전 국민 지급 뒤 기부 통한 환수” 방침에 논란 지속
등록 2020-04-25 06:26 수정 2020-05-02 19:29
(왼쪽부터)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호승 경제수석이 4월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왼쪽부터)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호승 경제수석이 4월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긴급’이란 말이 무색하게 집권여당과 기획재정부의 의견 대립으로 추진이 지지부진하던 ‘긴급재난지원금’ 논란이 일단락됐다. 4월22일 국무총리실은 정세균 총리 명의로 낸 입장자료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주는 방안에 대해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정부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기부자에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소득 하위 70% 계층 지급을 고수하며 여당과 대립하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어쩔 수 없이’ 정부 입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홍 부총리는 같은 날 열린 비상경제회의 직후 고용안전특별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에)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

줄곧 도그마에 갇힌 기획재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은 여러 면에서 전례 없고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재난 국면에서 가장 논란이 된 정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전 어떤 정책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주는 ‘현금수당’이다. 처음 발표대로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 계층에 한정해도, 정부는 단일 정책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사회서비스나 현금수당을 지급한 적이 없다.

재난지원금 논란에서 도드라지는 두 번째 특징은,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이 보여준 강고한 신념이었다. 국내에서 재난지원금 논의는 ‘재난기본소득’ 논의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2월25일 에 기고한 ‘재난기본소득을 검토해보자’란 칼럼에서 이 명칭을 만든 당사자다. 기본소득이란 △모두에게(보편성) △자격 심사나 노동 여부 등 조건 없이(무조건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개별성) △일회성이 아닌 지속해서(정기성) 지급하는 △현금(현금성)이다. 재난을 계기로 시작하는 기본소득이란 의미로 ‘재난기본소득’을 개념화했고, 다섯 가지 기본소득 요건 중 정기성을 제외한 네 가지를 충족하고, 향후 세금제도를 개편해 정기적 재원을 확보하면 정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는 처음부터 재난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러 언론 보도에서 기재부가 밝힌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재정건전성을 훼손한다는 것, 가계에 직접 현금을 주는 정책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3월12일 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기재부 관계자는 “돈을 (가계에) 직접 지급하는 것은 일회적인 소비에 그쳐 재정지출시 국민소득 증가 효과(재정승수 효과)도 가장 낮다”며 “경제적 효과만 고려한다면 정부의 직접 투자나 구매가 (효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 ‘재정승수’를 따지면 가계에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물품 구매 등 정부의 소비, 기업에 지원하는 보조금 등에 비해 경제 효과가 가장 작다는 의미다. 이는 경제 부처가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뿐 아니라 일부 계층이라도 ‘가계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 자체에 대해 가진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다.

논쟁 불씨 살린 건 지방정부

하지만 이는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고 내세운 논리라고 필자는 본다. 코로나19로 비롯된 재난은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기에 재정승수만 따져서 정책을 세울 순 없다. 재정승수가 높은 도로 건설 등을 대규모로 추진하는 것이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난기본소득 논쟁의 불씨를 살린 쪽은 지방정부였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월8일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하되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사후 환수하자는 발표를 하며 국내 정치권에서 처음 ‘선별환수’라는 화두를 꺼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김 지사의 안을 찬성한다고 밝히며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을 제외하고,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안 내는 사람만 혜택을 주면 재원 부담자와 수혜자의 불일치로 조세 저항과 정책 저항을 부른다”고 주장했다.

선별수당이란 점에서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북 전주시는 3월10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발표했고, 해당 이름을 명시한 예산안을 시의회에서 사흘 뒤 통과시키며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경기도는 광역지자체 중에선 유일하게 전 도민에게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4월9일부터 지급 중이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절실한 사람들에게 지원할 재원을 모두에게 지급해 비효율적이란 비판도 받지만, 중앙정부에 전 국민 지급을 촉구하는 성격이 컸다.

보편지급하고 세금으로 일부 계층에서 선별환수하면 개개인에게 선별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는데다 크게 세 가지 장점이 더해진다. 일단 일선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대상자를 선별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 선별지급하려면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확인하고 이의신청을 받는 등의 업무를 해야 하지만, 모두에게 지급한다면 신청자 계좌번호만 확인하면 된다. 선별환수는 바뀐 세법에 따라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에서 자동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작년 혹은 재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는 선별지급에 비해 선별환수는 코로나19로 직접 타격을 받은 올해 소득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세 번째 장점은, 소득 역전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선별지급은 약간의 차이로 기준에 못 미쳐 탈락한 이들이 지급 대상자보다 소득이 낮아지는 소득 역전 문제가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제5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제5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별환수의 다양한 방안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되 선별적으로 환수하자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기재부는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4월6일 는 “지급 후에 환수하는 복지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 가능한 방안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기재부 관계자의 입장을 소개했다. 20일엔 여러 언론 보도에서 기재부가 선별환수에 부정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가구별로 지급하는 수당을 개인에게서 환수하는 미스매치 △세법을 개정할 여유 없음 △저소득 자산가에게서 환수하기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세법 개정을 제외한 이유들은 형식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소득세법 체계가 원래 개인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저소득 자산가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싶다면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

기재부의 인식과 달리 선별환수는 충분히 가능하고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에서 누진적으로 소득세제를 개편하는 ‘보편지급 선별환수형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또 소득세 개편과 결합해 보편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은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맬컴 토리 영국 시민기본소득트러스트 이사 등 여러 연구자가 여러 차례 제시했다.

이번 재난지원금 국면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우선 고려해볼 수 있는 선별환수 방안은 수당을 ‘과세하는 소득으로 간주하는 것’(과세소득화)이다. 이렇게 하면 재난지원금은 자신의 소득에 따라 다른 세율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과세표준(소득에서 각종 공제 항목을 제외한 금액)이 연 5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겐 재난지원금이 추가 소득으로 얹혀지면 42% 세율이 매겨진다. 소득세액에 10%가 부과되는 지방소득세까지 합쳐지면 정부에서 받은 추가 수당(재난지원금)의 46.2%가 환수되는 셈이다. 반면 과세표준이 연 3천만원인 사람에겐 재난지원금이 더해져도 15% 소득세율(소득금액 1200만~4600만원)이 적용된다. 또한 근로소득자의 상당수는 재난지원금에 따른 세 부담이 없을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자의 41%는 각종 공제와 감면으로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은 면세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세소득화로는 충분한 환수액을 확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만일 미래통합당이 선거 국면에서 제안한 대로 1인당 50만원씩 지급하면 전체 소요 재원이 26조원이고, 이를 2017년 종합소득과 근로소득 백분위 자료(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확보한 자료)로 계산해보니 과세소득화로 환수될 금액이 1조3994억원 정도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득세의 실효세율보다 낮다. 기존 소득세 납부자가 전체 인구의 45%가량인 2248만 명이고, 이들에 해당되지 않는 3천만 명가량이 지급받은 수당에 대해선 각종 감면으로 비과세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과세소득화 통한 선별환수 주장도

더 많이 환수하려면 긴급재난지원금에 일부 금액을 더해 과세소득화하자는 방안도 제기된다. 이 주장을 내놓은 쪽은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다. 만일 이 안대로 재난지원금의 2배를 과세하는 소득으로 산정하면 초고소득자는 재난지원금의 92.4%를 도로 세금으로 내야 한다. 비율 조정으로 일정 수준 이상 소득계층에선 아예 100% 환수도 가능하고, 환수액 비중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외국의 선별환수 사례로 영국의 자녀수당을 참고할 수 있다. 영국은 고소득자 부모가 받은 자녀수당에 과세하는 방안이 오랜 논의 끝에 도입됐다. 연소득 6만파운드(약 9100만원) 이상이면 자녀수당을 100% 환수하는 제도가 2013년부터 시행됐다. 이 논의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1998년 3월17일 당시 재무부 장관인 고든 브라운(2007년 총리 취임)은 자녀수당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자녀수당이 인상된다면 원칙적으로 높은 세율의 납세자가 세금을 더 내는 게 맞다”고 논의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스승으로 유명한 앤서니 앳킨슨(전 영국 런던정경대학 교수)도 자녀수당을 과세소득화하자는 주장에 힘을 실은 인물이다. (영국에선 가구소득별로 자녀수당 과세액이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는 누리집이 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3월17일 소득공제상 인적공제를 폐지해 선별환수하는 ‘재정개혁형 재난기본소득’ 모델을 제안했다. 모든 소득공제 항목은 나름의 도입 취지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더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인적공제는 본인과 부양가족 1인당 150만원씩 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로, 과세표준이 연 5억원 이상 소득자에게 1인당 150만원의 42%인 63만원씩 세금을 깎아준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41%에 이르는 근로소득세 면세자에겐 역시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한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제안은 기존 세금제도가 가진 문제를 개선하는 제안을 했다는 점에선 가장 과감하지만, 재난 대응 성격을 고려해 역진적인 비과세·감면 제도 중에서 인적공제만 개편한다는 점에선 조심스러워 보인다.

물론 재난지원금을 과세소득화하는 방안에는 우려할 만한 지점이 여럿 있다. 일단 세법 개정 사항이란 점이다. 세법 개정은 국회의 권한이다. 다른 공적이전지출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이로 인해 생계급여 등의 수당에 과세소득화가 추진될 경우 복지 수급자의 소득이 이전보다 줄어드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재난지원금의 과세소득화가 넘어야 할 장벽은 ‘줬다 뺏는다’는 심리다. 실제 선별환수가 선별지급과 동일한 지원 효과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주는 것과 거둬가는 것을 동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줬다 뺏는다’는 부정적 심리는 사전에 효과적인 정책 홍보로 완화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일부 환수하기 위해 기부하는 이들한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여당은 15% 정도 세액공제 혜택을 제시했다. 4인 가족이 받는 100만원을 포기하면 연말에 세금 15만원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세금을 통한 직접적인 환수보단 불만이나 저항이 적다는 장점이 있으나, 실질적인 환수 효과가 제한적이리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세금을 통한 선별환수는 재정을 아끼는 장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바로 유권자가 세금과 수당을 통한 재분배 체계 조정을 피부에 와닿는 소득 변화로 체험하는 효과다.

재난은 우리 사회에 기존 문제를 드러내고 새 정책의 도입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의 창’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조세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음에 따라 사회안전망도 허술하다. 하지만 세금에 대한 신뢰가 앙상해 단번에 조세부담률을 높이기도, 복지를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선별환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세금제도를 개편해 확보한 재원으로 광범위한 대상에 복지나 수당을 지급하면 지금보다 더 안전망이 강화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일회성이라고 해도 세금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편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는 손색이 없다.

세제 개편 논의 본격화할 때

진보와 보수 등 여러 가치관이 경합하겠지만, 양쪽 모두 동의하는 개혁을 모아보는 게 중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가 세금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걷어내, 단순하고 누진적인 세금제도로 개편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 비과세·감면 제도에서 혜택을 누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그런 이해를 조정하는 게 바로 정치의 역할 아닌가. 이런 개혁이 실행되면 누구나 자신의 세금액을 쉽게 계산할 수 있고, 모두가 세금을 내는 국민개세주의(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도 실현할 수 있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서로 논쟁하면 된다. 비과세·감면 폐지가 너무 큰 증세 효과를 가져온다면 보수 쪽에선 오히려 세율과 과표를 기존 실효세율만큼 조정하자는 견해를 낼 수도 있다. 진보 쪽에선 증세로 확보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국민한테 거두고 나누는 체계를 정하는 게 정치다. 우리도 이제 그런 정치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윤형중 LAB2050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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