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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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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두 바퀴 노사가 나섰다

노조·기업·전문가 머리 맞댄 ‘플랫폼노동 사회적 대화 포럼’ 출범
등록 2020-04-04 07:19 수정 2020-05-06 06:28
4월1일 서울 명동에서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 출범식이 열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4월1일 서울 명동에서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 출범식이 열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방역 당국의 노력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는 지금, 배달노동자들은 바빠지고 있다. ‘언택트(비대면) 소비’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는 밥도 차도 배달해 먹고, 편의점 물건 구매도 배달을 활용한다. 코로나19가 원래 성장세이던 배달산업에 더더욱 속도를 붙이고 있다. 그만큼 배달노동자의 역할과 기여가 높아지지만, 최근 몇 년간 제기된 플랫폼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상 지위와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배달 플랫폼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플랫폼노동이 워낙 ‘핫한’ 이슈이고 사회적 대화기구의 구성과 논의 방식 역시 전에 없던 일이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플랫폼노동 문제 해결 방안 못 찾는 정부

4월1일 서울에서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이 출범했다. 포럼에는 배달산업 노사와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배달노동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라이더유니온, 배달 플랫폼기업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요기요·배달통)·스파이더크래프트와 이들을 회원사로 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여기에 공익 전문가로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위원장)와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박은정 인제대 교수(노동법)도 참여하기로 했다.

배달산업은 최근 몇 년간 크게 성장했지만 대다수 종사자가 근로계약을 하지 않고 위탁·용역 계약을 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됐다. 오토바이를 활용한 배달이니만큼 산업재해 우려가 상존하지만,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가 상당수여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 배달대행 시장이 형성된 초기부터 문제로 제기됐다. 지역 영세 배달대행업체들의 임금체불이나 오토바이 수리비 전가 등 ‘불공정 거래’도 해묵은 이슈였다. 시장이 서서히 규모 있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경쟁하는 모습으로 흘러간 이후에는, 조변석개하는 배달수수료 등 노동조건 문제나 ‘부업형’ 배달노동자의 등장에 따른 전업 배달노동자의 노동조건 문제가 대두됐다. 최근에는 배달 플랫폼기업들이 배달노동자를 위탁·용역 사업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실상 근로기준법 노동자처럼 지휘·감독하는 노동자성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번 포럼은 노사 당사자가 사회적 대화를 직접 기획해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동안 플랫폼노동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3~4년간 국회와 정부는 이렇다 할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 산하 위원회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4차산업혁명위원회·일자리위원회가 각각 별도 논의의 장을 구성해 전문가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등 부산스러웠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산업안전보건법에 배달대행업체의 배달노동자 안전보건을 위한 의무가 포함된 것 정도가 ‘성과’라고 볼 수 있었다.

노사가 직접 사회적 대화 기획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노사가 먼저 대화 제안에 나섰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2019년 11월11일 플랫폼기업과 정부에 배달시장 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노사정 논의를 제안했다. 이후 사 쪽에 해당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논의 제안에 화답하면서 대화기구 구성 논의가 공식화됐다. 앞서 우아한형제들·메쉬코리아·바로고 등 배달 플랫폼을 회원사로 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플랫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대표적으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2018년 10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플랫폼은 소비자와 공급자(플랫폼노동자) 양쪽에게 이득이 되고 있다”며 “플랫폼사업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안전망 체제 개편을 위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번 포럼에 참여하는 공익 전문가 역시 양쪽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고 한다.

이병훈 포럼 위원장은 “현재까지 노사 간 사회적 대화는 정부의 필요에 따라 정책적 어젠다(의제)를 정하고 노사가 여기에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졌지만, 이번 포럼은 노사 주체가 적극성을 갖고 앞장서서 플랫폼노동의 제도적 질서를 만들려는 논의를 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회적 대화기구라고 하면 구성부터 소모적 논의가 있었지만, 노사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타협점을 만들어갔기 때문에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으나,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불발되고 탄력근로제 도입 등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동원형 사회적 대화’라는 비판이 제기돼 위상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상황에서 경사노위의 논의 테이블을 벗어나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참여 없이 사회적 대화기구가 마련된 것도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이날 “오늘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노사 당사자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최초로 출범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을 통해 사회적 대화가 성공하는 기회가 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 점유율 1위 업체는 빠져

또한 학자들과 정부가 우선 논의를 주도한 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법·제도 개선을 모색해왔던 것과 달리, 업계 현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당사자로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노사가 논의의 물꼬를 트고 개선 방향을 정부와 국회 등에 제안하리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현재 우아한형제들 이사는 “배달산업에 활용되는 이륜차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적정한 속도로 밸런스(균형)를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합리적인 답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포럼은 활동기간 6개월 동안 △플랫폼노동 보호 대상에 관한 당사자 협의와 제안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기준 마련 △종사자 처우 안정을 위한 사회안전망 논의 △법·제도 개선 방안 협의와 제안 등을 하기로 했다. 노사가 직접 참여하고 공익 전문가가 중재와 조정에 나서는 낮은 수준의 교섭이니만큼 법·제도 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사가 합의해 시행할 수 있는 사항은 바로 시행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다만 이번 포럼에 모든 배달대행업체가 참여하는 것은 아니어서 나름의 한계가 있다. 배달 플랫폼업체 기준 점유율 1위는 ‘생각대로’인데, 이 업체는 이번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사도 아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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