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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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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으로 들락날락

같이 살고 배우고 연대하며… 네 명의 청년이 소멸도시에서 살아가는 법
등록 2020-02-09 04:18 수정 2020-05-03 04:29
금산금빛시장 청년몰에서 만난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의 르마, 해주, 쌀, 마고.(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들락날락 제공

금산금빛시장 청년몰에서 만난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의 르마, 해주, 쌀, 마고.(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들락날락 제공

은 제1294호 신년호 표지이야기로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역 소멸’을 말하는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문화기획, 창업 등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그들이 만드는 공동체의 의미, 그리고 ‘같이’의 가치도 담았다. 2020년 연중기획으로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을 이어간다. 첫 회는 충청남도 금산에서 청년 자립을 위한 도전을 이어가는 ‘들락날락’ 청년들을 소개한다. 2015년 청년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2018년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을 만든 그들의 성장 이야기다.

한낮의 시장은 한산했다.

2월4일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에 있는 금빛시장. ‘금산금빛시장 청년몰’이라는 커다란 알림판이 입구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피숍, 술집, 옷가게, 디저트가게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다. 그 상점 사이에 작은 간판을 내건 ‘두루미책방’이 보였다. 독립출판물을 파는 작은 동네책방이다. 이곳에서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 청년들, 해주(김해주·25), 르마(이다솜·27), 마고(이세연·27), 쌀(전하연·23)과 이들의 멘토 대금(박성연) 이사장을 만났다. 이들은 본명 대신 별명으로 부른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위계와 무관하게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자는 뜻이다.

청년 모임에서 협동조합이 되기까지

‘들락날락’은 2015년 금산간디학교 졸업생들을 비롯한 금산군 청년들의 네트워크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청년이 지역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배움, 주거, 네트워킹(연결망)’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배움을 위해 청년자립학교 ‘아랑곳’을 만들고 주거를 위해 금산군과 함께 청년 셰어하우스(공유주택)를 열고 네트워킹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원했다. 2018년 10월 ‘밥벌이’라는 새로운 열쇳말을 정하며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2019년 4월 지역 청년들의 문화예술 작품과 금산 지역 콘텐츠를 활용한 상품을 파는 ‘여우잡화점’을, 2019년 12월에는 동네서점 두루미책방을 열었다.

들락날락이 있는 금산군은 여느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절벽 우려가 커지는 곳이다. 충남연구원이 2017년 충남 15개 시·군의 소멸위험지수(20~39살 가임여성 인구수를 65살 이상 노인 인구수로 나눈 지표)를 발표한 것에 따르면, 금산군은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 8개 시·군 중 한 곳이었다. 평균연령이 47.1살이었다. 통계청 ‘2017년 충청남도 금산군 기본통계’에 따르면 금산군 5만5807명 중 청년(20~39살)은 9346명으로 17.34%에 그친다.

금산에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들락날락 청년들은 애초 금산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마고가 말했다. “선배나 동기생들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았어요. 다시 금산으로 오면 찌질한 사람, 낙후된 친구라는 시선이 있었어요.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금산을 떠났어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청년 자립의 터를 닦는 들락날락이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금산에서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줬다.

들락날락 이사장이자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 교사인 대금은 진로를 고민하는 대안학교 졸업생을 많이 봤다. “청년들이 자립할 때까지 도전, 경험,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나 그런 시행착오 과정을 겪을 수 없어요. 사회는 경력만 요구하고 그렇다고 경력을 쌓을 때까지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고민하다가 지역에서 청년들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대안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들락날락 청년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시장 행사 기획하고 청년수당도 주고

청년들은 들락날락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을 활발히 기획하고 있다. 들락날락에서는 각 사업 분야를 맡아 이끌어가는 리더를 ‘피리’라고 부른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따온 말이다. 피리로 마법을 부리듯 금산과 전통시장에 문화예술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금빛시장 축제인 ‘월장’의 기획과 각종 시장 행사에 참여했다.

월장 기획을 담당한 쌀은 “웃고 즐기는 축제만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지난해 진행한 맥주 축제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게 하고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다양한 자립 실험을 했다. 일례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진행한 청년수당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마고는 “2019년 4월, 5월 두 달간 청년수당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청년 자립의 대안으로 생각한 거죠. 지역 청년 3명에게 한 달에 30만원씩 청년수당을 줬어요. 하지만 민간에서 하기에는 선정부터 자금 마련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두 달 만에 막을 내린 실험이었지만 값진 실패의 경험이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아가던 한 청년이 두 달간 청년수당을 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했대요. 부모님의 기대와 의지에 따라 살았는데 그때에는 잠시나마 정서적 자립을 했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뿌듯했어요.”

여우잡화점을 운영하는 해주는 중학교 때 귀농을 결심한 부모님을 따라 금산에 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졸업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금산에 다시 내려왔다 들락날락을 알게 됐다. ‘농촌에서 청년 자립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마고의 제안을 받았다. “다시 내려온 금산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들락날락 친구들을 알게 되고 여우잡화점도 운영하게 됐어요. 들락날락에서 수석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달아주었어요.” 들락날락 협동조합의 동아리인 월담팀에서 활동하는 해주는 지난해 페미니즘 잡지 도 펴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여성활동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루미책방을 운영하는 ‘피리’ 르마는 꿈꿔온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문화기획,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았어요. 들락날락을 알게 되고 그걸 금산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산에 참고서 파는 서점은 있지만 독립출판물을 파는 특색 있는 동네책방은 없었어요. 그런 책방을 만들어 드로잉 모임 등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운영하고 싶었어요.”

들락날락은 지난해 매달 금빛시장에서 문화축제 ‘월장’을 열었다. 들락날락 제공

들락날락은 지난해 매달 금빛시장에서 문화축제 ‘월장’을 열었다. 들락날락 제공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원동력”

쌀은 두루미책방이 사랑방 같은 곳이란다. “읍내 시장에 왔다가 들르는 주민분도 있고요. 버스를 기다리던 지역 청년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오기도 하고 멀리 다른 지역에서 궁금해서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이날 두루미책방을 찾은 독립출판 작가 정수씨 역시 책방 단골손님이다. “여기에 오면 같은 학교 친구들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매주 금산에 와요. 책방이 생겼으니 이곳에 제 책도 소개하고요. 안전한 관계라는 점이 이곳을 찾는 이유 같아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정수씨는 이들과 함께 금산 지역 청년들 글쓰기 모임도 꾸렸다.

들락날락은 이름처럼 지난 5년간 지역 청년들이 들락날락했다. 구성원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5년간 이어지며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들락날락 청년들은 서로 응원하고 연대하면서 삶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이곳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 힘은 소통과 협력에서 나온다.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요. 혼자 고민하지 않고 두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해요. 함께 길을 만들어가요. 힘든 사람을 걱정하고 위로해줘요. 자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서로 의지하고 지지할 수 있는 그룹으로서 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일원인 거죠. 들락날락 구성원은 그런 정서적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대금)

해주는 들락날락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단다. “중고등 과정을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생태적 삶, 공동체에 대해 배웠어요. 그것들이 먼 미래 이야기이고 이상일 것이라 여겼어요. 그런데 들락날락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갔어요. 그 과정에서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이었던 내가 바뀌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어요.”

올해 자립 발판을 튼튼히

가장 오래 들락날락 활동을 해온 마고는 지난 5년 동안 얻은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봤다는 경험이다. 소통과 협력의 경험도 얻었다. 그중 청년자립학교 아랑곳을 운영한 것이 가장 도움이 됐단다. “아랑곳에서 지역 청년의 자립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마련했어요. 숲에서 살기, 시골집 고쳐 살기, 인문학, 몸공부, 청년 창업 등 강좌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저 역시 배움의 갈증이 있었거든요. 그걸 준비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들락날락 활동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경력이 될지는 의문이다. “친척들이 저에게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 그게 밥벌이가 되냐고 되물어요. 제가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따는 것보다 살아가는 데 이런 관계 맺기, 다양한 인문학 공부가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성장했고요.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 어때. 나는 나니까 나답게 살아가자’고 다짐해요.” 이렇게 말하는 마고에게 들락날락 활동은 “자본주의를 조금 비켜나 생태적인 가치를 계속 담아내는 것”이다.

들락날락은 2020년에도 금산에서 여우잡화점과 두루미책방을 운영하며 자립의 발판을 튼실히 마련할 계획이다. 자립하기 위한 청년들이 기댈 언덕도 될 테다. “금산에 다양한 청년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이곳을 더 많은 청년들이 ‘들락날락’했으면 좋겠어요.”(대금)

금산=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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