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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는 노동자 아닌가

근로기준법 예외 인정해 규제샌드박스 통과 논란

제1291호
등록 : 2019-12-09 09:55 수정 : 2020-05-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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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회원들이 2018년 11월13일 국회 앞에서 `노동자성 인정하는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둑을 무너뜨린 것인가, 둑을 쌓은 것인가.

노동법은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보호 대상과 수준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두고 늘 논쟁해왔다. 일하는 방식과 노무계약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이 논쟁은 더욱 심화됐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권리 수준을 1이라 할 때, 권리 수준이 0인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만들면서, 권리 수준을 0과 1 사이 어디쯤 정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대책은 1보다 작다고 비판받아야 할까, 0보다 크기 때문에 환영해야 할까.

“근로기준법 일부 권리 보장” 환영 시각도

11월27일 가사노동 중개 플랫폼 ‘대리주부’를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이하 대리주부)이 신청한 ‘직접고용 기반 가사서비스 제공 플랫폼’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가 규제샌드박스(신제품·신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 실증특례를 부여하면서 이런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 실증특례에 따라, 원래 근로기준법의 적용 배제 대상이던 가사노동자는 희망자에 한해 대리주부에 직접고용되고, 연차휴가·유급휴일·휴게 같은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을 적용받게 됐다. 또한 4대 보험과 퇴직금도 보장받게 된다. 다만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들이 근로계약 때 정한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보장받던 연차휴가·유급휴일 등의 권리는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보장한다. 이는 정부가 2017년 발의한 ‘가사노동자 고용개선 등을 위한 법률’(가사특별법) 제정안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두고서,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권리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적용하므로 ‘근로기준법의 둑을 터뜨린 것’이라는 주장과, 원래 근로기준법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던 노동자에게 권리를 보장한 것이기 때문에 ‘둑을 쌓은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이번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사노동자의 법적 지위와 가사특별법 논의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 가사노동자는 가정을 방문해 청소·세탁·요리 등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가사도우미’와 육아와 산후조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육아도우미’ 등으로 크게 나뉜다. 이들의 고용은 비공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고용노동부는 2017년 가사노동자 수를 25만 명 내외로 추산했다. 최근 대리주부·미소·청소연구소 등 가사노동 플랫폼이 확산돼 이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업계에선 가사노동의 시장 규모가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인권위도 입법 조처 권고

그런데 가사노동자의 노동은 노동관계법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가사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1953년 제정돼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휴게·휴일의 보장이나 연차휴가·퇴직금 등을 받지 못하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까닭에 고용·산재보험 역시 적용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자 단체와 노동계에선 근로기준법의 ‘가사 사용인 적용 제외’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근로기준법을 제정할 때만 하더라도, 가사노동자가 가족의 일원처럼 가사 업무 제공과 숙식을 서로 교환하는 관계였지만, 현재는 가사노동이 사회화·시장화하고 산업화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배경을 근거로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고용상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을 채택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16년 비공식 부문 가사노동자의 노동권과 사회보장권을 보호하기 위한 권고를 채택했다.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회의장에게 가사노동자가 일반 노동자와 동등하게 노동조건을 보호받고, 노동삼권과 사회보장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거나 가사노동자 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등 입법적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취지에서 논의된 것이 가사특별법이다. 19대 국회에서 일부 의원이 발의한 데 이어, 20대 국회에선 정부(2017년 12월)와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2017년 6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2017년 9월)이 가사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이름과 내용에선 일부 차이가 있지만,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하고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현재는 가사노동자가 직업소개소에 회비를 내고 일감을 알선받는 방식이었는데, 고용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셈이다.

세 건의 발의안을 살펴보면, 4대 보험과 퇴직금 보장에 관한 내용이 있으나, 최소 노동시간의 적용이나 휴게에 대한 규정은 조금씩 다르다. 주 노동시간이 15시간을 넘어야 유급휴일과 4대 보험 가입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은 중요한 쟁점이다. 이정미 의원안에는 “주 15시간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정부안에는 주 15시간 이상을 원칙으로 하되 “가사노동자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는 경우 또는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정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4시간 노동에 30분 휴식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의 휴게시간 규정도 발의자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이정미 의원은 1시간당 10분을 정해두었으나, 정부안에는 근로계약에 관련 내용을 명시하도록 할 뿐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런 내용은 근로기준법상 권리에 못 미친다.

대리주부 누리집 갈무리

실증특례보다 노동자성 보호할 법 필요

논쟁이 생기는 것은 이 지점이다.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고용’했다면 근로기준법의 전부를 적용해야지, 가사노동자라는 이유로 후퇴된 노동조건을 용인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12월7일 사단법인 올(ALL) ‘젠더와 법 연구소’ 주최로 열린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과 젠더’ 토론회 토론문에서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고용하는 이상, 노무의 내용이 ‘가사’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가사 사용인’으로 볼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이 ‘전부’ 적용돼야 한다”며 “‘호출근로 특성을 고려해 소정근로시간(근로계약상 일하기로 정한 근로시간)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직접고용을 한다면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예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전제품 수리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고 대기하다가 업무가 있을 때 고객이 있는 곳을 방문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가사노동자도 근로계약을 맺었다면 근무해야 할 노동시간을 사전에 정하고, 일이 없을 때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해 그만큼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가사노동자 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가사서비스 시장의 특성상 특별법 제정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정미 의원안을 지지하는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가사서비스가 예전엔 한 가정에서 매일 일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엔 4시간 단위로 여러 가정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전일제 고용과 대기시간의 노동시간 인정 등의 모델도 생각해봤지만, 어떤 기업도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가사노동은 고강도 노동이어서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별도로, 특정 기업(대리주부)의 신청으로 근로기준법의 강행 규정 일부를 적용 제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좀더 보편적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2월3일 성명을 내어 “정부가 할 일은 아무런 보호 기준이 없는 곳에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라며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가 아니라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가사노동자를 보호할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노동법 연구자는 “정부 행정위원회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을 바탕으로 노동법 조항의 일부를 적용 배제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도 다른 기업들이 비슷한 신청을 한다면 적용 배제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 된 데는 국회의 책임이 작지 않다. 의원안과 정부안이 발의된 것이 2017년이었으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9년 3월이었다. 그마저도 발의된 세 법안을 종합한 ‘수정의견’을 의원들이 살펴보는 수준에 그쳤다. 이번에 통과된 규제샌드박스의 주요 내용은 정부안을 기초로 했는데, 수정의견 가운데는 정부안보다 진전된 내용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고 입법이 됐다면, 현재처럼 규제샌드박스로 근로기준법 조항 적용을 일부 배제하는 ‘불완전한’ 상황 역시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현재 국회 상황을 보면 발의한 세 법안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가사 특별법 통과에 불쏘시개 되길”

대리주부 관계자는 “고객 서비스 품질 향상과 가사노동자의 처우 개선, 가사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로 봤다. 우리 입장에선 가사노동자를 채용하는 순간 4대 보험과 연차휴가 보장 등 비용이 늘어나지만 장기적인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국회에서 가사특별법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국회는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안 해 지난 9월 규제샌드박스 신청을 했던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통과가 특별법 통과에 불쏘시개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가사노동자 규제샌드박스 통과는 다양한 쟁점을 남겼다.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강행 규정인 근로기준법의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 채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0과 1 사이의 논란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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