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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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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재단으로 흘러간 복지시설의 ‘비자금’

성공회 위탁 용산장애인복지관 축제 수입금… 운영비로 써야 하지만 재단으로 입금시켜

재단 “법인전입금으로 다시 내려보내… 문제점 개선중”
등록 2019-11-11 10:43 수정 2020-05-03 04:29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이 위탁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구립용산장애인복지관 전경. 박승화 기자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이 위탁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구립용산장애인복지관 전경. 박승화 기자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이하 성공회 재단)이 운영하는 구립용산장애인복지관(이하 용산장복)이 지난 수년간 공식 회계에 잡히지 않는 ‘비자금 통장’을 조성한 뒤 돈을 운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복지관은 이를 통해 매년 최소 수백만~1천만원의 행사 수익금을 성공회 재단에 보냈다. 2016년 성공회 재단 산하 사회복지시설에서 수억원대 회계 부정이 확인돼 성공회 전체에 큰 파장이 일었는데, 다시 한번 비슷한 부정이 확인된 것이다.

성공회 재단과 용산장복도 비정상적인 회계처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해당 금액은 전부 법인전입금으로 다시 용산장복으로 돌아왔다”며 공익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해명했다. 이 사안은 국민권익위원회 제보로 조사를 시작했으며 현재 서울 용산구청으로 이첩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비자금 만들려 법령 어겨 회계처리

성공회 재단은 기독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가 만든 재단법인이다. 성공회 재단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재단은 전국 187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는 성공회 재단이 직접 설립한 기관도 있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기관도 있다. 용산장복은 2009년 용산구청이 설립했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 재단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용산장복은 2013년부터 매년 ‘The(더)함 축제’를 열고 있다. 주변 지역 장애인과 그 가족 및 주민들이 참여하며 각종 체험행사와 바자회 등이 열린다. 슬로건은 “저소득 재가장애인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함께의 기적”이지만 실제로는 복지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수익사업 목적이 크다.

이 확보한 용산장복 내부 문건을 보면, 2015년과 2016년 더함축제와 관련해 이상한 돈의 흐름이 보인다. 용산장복은 더함축제 수입을 모두 후원금 계정으로 관리했는데, 이 돈을 모으는 통장이 공식 회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통장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은 후원금의 수입·지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나 용산장복은 이를 어겼다.

더함축제 수입의 상당 부분은 성공회 재단으로 넘어갔다. 비공식 통장의 거래내역을 기록한 ‘최근거래내역조회20160616’ 파일을 보면, 2015년 더함축제 수입은 1251만원이었는데 이 중 995만원이 성공회 재단으로 보내졌다. 2016년엔 수입 1109만원 중 835만원이 성공회 재단으로 보내졌다.

이는 법령 위반이다.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 규칙’을 보면 더함축제 수입(시설회계 비지정 후원금)은 성공회 재단 송금 용도(법인회계 전출금)로 쓸 수 없다.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용산장복에서 벌어들인 돈은 용산장복 운영비로 썼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용산장복을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용산장복의 회계는 조작됐다. 2015년과 2016년 공식 회계장부에 더함축제 수입은 200여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더함축제 수입에서 성공회 재단 송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이다. 이 확보한 용산장복의 비자금 통장 거래내역은 2015~2016년 일부 시기뿐이다. 용산장복이 2013년부터 매년 더함축제를 열었고, 수익을 낼 만한 다른 행사도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회 재단에 비정상적으로 송금된 금액은 더 클 가능성이 있다. 한 예로 올해 5월 열린 더함축제 때도 예상수입은 1천만원 내외로 책정됐지만 회계상 수입은 275만원에 불과했다. 바자회에서 물건이 팔렸으나 판매 수익이 없는 등 회계조작이 의심된다. 비자금의 총규모는 앞으로 용산구청에서 밝혀낼 사안이다.

성공회 “법인전입금으로 썼으니 큰 문제 아냐”

성공회 재단과 용산장복은 회계처리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해당 금액이 모두 법인전입금으로 사용됐으니 법적·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법인전입금은 성공회 재단처럼 사회복지시설의 위탁을 맡은 법인이 해당 시설에 내려보내는 돈이다. 한국의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이 ‘공공 지원+민간 운영’ 구조로 굴러가는데, 민간에 좀더 책임을 부여하려고 만든 제도다. 각 법인은 3~5년마다 돌아오는 위탁/재위탁 결정 때마다 법인전입금을 2천만~5천만원씩 시설로 보내겠다고 약속해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탁받을 수 있다.

그런데 법인이 법인전입금을 만들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경우, 시설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법인으로 보냈다가 도로 법인전입금으로 받기도 한다. 일종의 ‘돈세탁’이다. 일각에선 탈법을 부르는 법인전입금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인이 조장하고 시설이 저지르는 ‘돈세탁’ 과정이 워낙 불투명하다보니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중간에서 쉽게 횡령할 수도 있다. 성공회 재단이 2018년까지 위탁 운영했던 구리시립노인전문요양원의 사례가 그렇다. 요양원장이었던 박아무개 신부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조리사를 요양보호사로 국민건강보험에 허위 등록해 5억8720만원을 챙겼다. 또 식자재 가격을 부풀린 뒤 납품업자로부터 일부 금액을 되돌려받는 방식(리베이트)으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1억6350만원을 챙겼다.

박 신부가 비자금을 조성한 명목은 법인전입금 마련이었다. 하지만 실제 비자금의 상당 부분은 법인전입금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성공회가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2016년 9월30일 펴낸 ‘구리시립노인요양원 조사 결과 보고서’(이하 조사보고서)를 보면 비자금 중 1억1천만원만 법인전입금으로 다시 요양원에 돌아왔다. 나머지 비자금의 행방을 둘러싸고는 관계자들 사이 주장이 엇갈린다. 2018년 4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사기,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요양원장에게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사무국장에게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 식자재 납품업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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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전입금 회피, 결국 누군가 피해 본다

현행 제도에서 법인전입금은 원래 법인이 내야 하는 돈이다. 이를 피하려다보니 결국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구리시립노인요양원에서는 시설 이용 노인들이 피해자였다. 조사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법인전입금 마련하는 명목으로 비자금 조성한 것은 범죄행위임. 부식비 착복으로 질 낮은 품질의 식자재가 공급되어 어르신들 부실한 식사 제공하는 결과 초래. 조리원(조리사)들은 지속적으로 식자재 품질의 문제점 지적했고, 리베이트 있다는 사실 인지했다고 함.”

용산장복에선 더함축제 때마다 직원들이 5만~50만원씩 티켓 판매액을 할당받았다. 할당액을 채우지 못하면 본인이 나머지 금액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 돈이 법인전입금으로 흘러갔다. 사실 이런 티켓 판매 할당은 다른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올해 1월 보도한 진각복지재단 역시 각종 행사 때마다 산하시설 직원들에게 수십만원씩 후원금을 할당하거나 티켓을 강매하다 재단이 징계를 받았다(제1247호 참조).

용산장복의 강관석 관장은 티켓 판매와 관련해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보통 시민사회단체에서 재정이 모자라면 바자회를 열고 집행위원들에게 티켓을 팔아오라고 줍니다. 조직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니까 내 일이다 생각해서 거부감 없이 참여하죠. 그런 경험만 생각하다보니 여기서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바뀌기도 했는데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강 관장은 법인전입금이 부족한 성공회 재단이 시설을 맡은 것도 선의가 앞섰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용산장복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시설을 맡아달라고 성공회에 요청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의무감이 있으니, 신자들의 후원금으로 법인전입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지 치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덥석 맡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인전입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위는 성공회 재단의 폭넓은 관행으로 보인다. 앞서 소개한 2016년 ‘구리시립노인요양원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성공회 재단이 법인전입금에 대해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법인전입금의 조성과 운영을 개별 기관에 위임하고 조성 과정, 규모, 운영 등에 대해 법인이 전혀 관리하고 있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구리시립노인요양원 비리와) 유사한 일들이 발생할 소지가 많음.”

재단 “TF 만들어 노력 중”

이번에 확인한 용산장복 회계 부정은 성공회 재단의 관행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시 조사보고서에는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법인의 시설 위탁 과정에서 교구가 실질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기관인지, 종교법인의 위상에 걸맞은 사업운영이 가능한지 등 수탁에 대한 전문적이고 공개적인 심의 과정이 필요함”이라고 지적돼 있다. 법인전입금을 낼 만한 상황이 되는지 면밀히 따져보라는 권고다. 하지만 용산장복의 사례로 봤을 때 최소한 지난 3년간 조사보고서의 권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성공회 재단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선교국장인 허용구 신부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구리시립노인요양원 사건을 계기로 (성공회 재단 산하) 전체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올해 4월 교회 안에 ‘사회복지 제도와 발전’ TF를 구성했고 내년 상반기 마감을 목표로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법인전입금 문제도 여기 포함돼 있습니다. 교회는 일반 단체와 달리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다양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감당할 능력이 없는 시설 여러 곳은 이미 반납했습니다.”

다만 허 신부는 ‘그동안 용산장복이 조성한 비자금과 법인전입금 문제는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강관석 관장 역시 “용산구청의 감사 결과를 지켜본 뒤 시정 조치에 따르겠다”고만 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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