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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가능성 사이 ‘개 구충제’ 항암 논란

전문가 우려에도 말기암 환자들 ‘자가’ 임상시험 국면

제1287호
등록 : 2019-11-08 15:12 수정 : 2019-11-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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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거짓일지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플라세보효과를 믿기 때문입니다. 병원과 의사분들은 직업상 과학과 논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저희 같은 시한부 환자의 경우에는 (병원과 의사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사실상 없습니다. (중략) 치료나 응원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말기암 환자들의 살려고 하는 처절한 노력과 몸부림을 과학 운운하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거짓 뉴스일지라도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담도암 말기인 유튜버 ‘은짱’(JIGUIN)이 9월25일 ‘개 구충제’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밝힌 소감이다. 은짱 외에 여러 말기암 환자들이 ‘마지막 지푸라기’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붙들었다. 국내에 재고가 없을 정도로 동난 상황인데, 해외 직구 등을 통해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한 환자 중 일부는 유튜브로 투약 과정과 몸상태 변화 등을 일지 형식으로 공유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청)와 대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 등 전문가들의 우려가 크지만, 한국도 이미 말기암 환자들의 ‘펜벤다졸 자가 임상시험’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지난 4월 영국 매체 <더 선>이 미국인 조 티펜스의 암치료 사례를 소개해 ‘개 구충제 항암 효과’ 논란이 시작된 뒤 반년 만이다.

설령 거짓일지라도

60대 남성 조 티펜스는 2016년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다. 2017년 1월엔 간·췌장·방광·위·뼈·머리 등 전신에 전이돼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티펜스는 암센터에서 임상시험을 제안받고 신약을 투여받던 중 한 온라인 포럼 칼럼에서 놀라운 소식을 보았다. 과학자들이 쥐실험 과정에서 우연히 ‘개 구충제(펜벤다졸)가 여러 암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4기 뇌종양이던 한 과학자가 이 약을 복용하고 6주 만에 암을 고쳤다는 내용이다. 티펜스는 의료진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펜벤다졸을 복용했다. 지용성인 펜벤다졸의 흡수율을 높이려고 비타민E, 쿠르쿠민, 칸나비디올(CBD) 오일도 함께 복용했다. 펜벤다졸 복용 3개월 뒤인 2017년 5월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 결과 암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같은 해 9월과 이듬해 1월 PET 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나왔다. 암이 치료됐고 의료진 역시 “아웃라이어”(다른 대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표본)라며 놀라워했다. 티펜스는 경험담을 블로그에 올렸고, 이후 40여 명이 자신에게 ‘펜벤다졸로 암을 치료했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한겨레21>은 유튜브 채널 <명승권TV>를 통해 적극적으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팩트체크’ 하는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를 11월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교수실에서 인터뷰했다.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 티펜스 사례 해석, 사람이 펜벤다졸을 복용했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명 교수는 펜벤다졸이 이슈가 된 이유로, 첫째 동물 구충제로 사람의 암이 치료됐다는 점, 둘째 그냥 암도 아닌 말기암이 치료됐다는 점, 셋째 약 가격이 항암제와 비교할 수 없이 싸다는 점(정가 500㎎ 1정당 2천원대), 넷째 말기암 환자한테는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 다섯째 유튜브에서 무분별한 정보가 확산됐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개 구충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는 말기암 환자들의 절박함에 공감하면서도, 과학자로서 ‘펜벤다졸 항암 효과의 근거’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펜벤다졸(약품명 파나큐어·Panacur)은 위장관 회충·편충·요충·촌충·십이지장충 등 기생충을 치료하는 데 광범위하게 쓰이는 구충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개와 염소한테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으나, 수의사들은 고양이에게도 종종 쓴다. 펜벤다졸은 구충제지만, 10여 년 전부터 세포·미생물·분자를 이용한 실험실 연구와 쥐 등 동물 연구로 펜벤다졸의 ‘항암 기전(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명 교수는 “현재까지 실험실·동물 연구를 통해 알려진 것은, 펜벤다졸이 세포 골격을 구성하는 마이크로튜뷸(미세소관)의 기본 단위인 튜불린에 붙어 마이크로튜뷸의 형성을 방해하고, 암세포 증식에 필수적인 당 섭취를 방해함으로써 암세포의 마비와 사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 교수는 이를 곧 ‘펜벤다졸이 암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펜벤다졸 항암 효과’를 얘기하려면 ‘근거수준 피라미드’를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정 성분이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연구해야 하는데, 근거수준에 따라 연구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근거수준이 가장 낮은 연구가 실험실 연구고, 그다음이 동물 연구다. 그 위에 한 명의 사례를 연구한 환자 증례 보고, 여러 명의 사례를 연구한 환자군 연구가 있다. 여기까지는 인과관계가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치료될 수 있고, 다른 요인의 작용을 배제할 수도 없어서다. 적어도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친 뒤에야 의학적으로 “임상적 근거가 있다”고, 다시 말해 “유효성과 안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펜벤다졸의 경우 <더 선> 기사와 몇몇 ‘의사 유튜버’가 “2018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가 확인됐다”고 소개하면서 말기암 환자들의 기대를 크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명 교수는 “<네이처>가 아니라 네이처 출판회사에서 발행하는 수십 가지 과학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였다”고 정정했다. 명 교수는 “전세계 의학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확인해보면, 9천여 개 저널 중 영향력지수 1300~1400등 수준인 <사이언티픽 리포츠>도 대단한 저널이긴 하지만, 13위인 <네이처>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이언티픽 리포츠> 논문은 인간이 대상인 임상시험 결과가 아니었고, 암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 연구였다. 명 교수가 설명한 ‘근거수준 피라미드’의 가장 밑에 있는, 즉 가장 근거수준이 낮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혈압·협심증 치료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하던 중 발기부전 치료 효과가 확인된 비아그라처럼 개 구충제 펜벤다졸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항암 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의사들이 특정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정식 승인 약을 해당 질병 이외에 ‘승인되지 않은 질병’에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명 교수는 “펜벤다졸의 경우 항암제는 물론 구충제로도 임상시험이 이뤄진 적이 없다”며 말기암 환자가 펜벤다졸을 항암제로 복용하는 것과 ‘오프라벨 처방’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 대상 임상시험은 아직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음에도, 말기암 환자들에게는 ‘조 티펜스 사례’만으로도 여전히 강력한 희망이다. 더욱이 구토·설사·알레르기(고용량 복용시 독성 간염) 같은 펜벤다졸의 부작용은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항암제 부작용을 겪은 말기암 환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명 교수는 “티펜스의 경우 새로운 면역항암제를 투여받으면서 펜벤다졸과 함께 기타 보충제를 복용했기 때문에 펜벤다졸 때문에 소세포암이 완치됐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티펜스가 말한 40여 명의 완치 사례도 진술만 있을 뿐이지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티펜스가 하루에 펜벤다졸 1g을 복용했는데, 이는 4.5㎏ 푸들이 구충 목적으로 먹는 양”이라며 “티펜스가 (암 투병으로 체중이 줄어) 45㎏이었다고 해도 그 정도 양을 복용해서 항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제약회사가 수천억~수조원이 드는 임상시험 비용에 비해 저렴한 약값 때문에 항암 효과를 알면서도 펜벤다졸의 임상시험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명 교수는 “이미 펜벤다졸과 주요 화학구조가 같은 벤지미다졸 계열의 벤다무스틴(상품명 Treanda)을 가지고 임상시험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경구 복용하는 펜벤다졸의 흡수율은 20%가 채 안 되는 반면, 정맥주사인 벤다무스틴은 흡수율이 높다. 식약청에 따르면, 벤다무스틴은 2008년 미 FDA에서 만성림프구성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등 혈액암을 치료할 목적으로 승인받았다. 그러나 골수 억제 등 심각한 부작용이 있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명 교수는 “임상시험 기간이 통상 15년 이상이고 비용이 수천억~수조원인데,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물질을 임상시험 할 수는 없다”며 “다만 펜벤다졸은 다른 항암제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부작용이 적은 장점이 있어 향후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통상 5천~1만 개 신약 후보 물질 가운데 세포·동물 실험을 통과하는 물질은 250~10개 정도고, 그중 임상시험을 거치는 물질은 극히 일부이며, 승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판되는 것은 1개 정도다. 명 교수는 “말기암 환자들의 절박함을 알기에 무조건 펜벤다졸을 쓰지 말라고 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안다”며 “전문가로서 복용을 권장할 수 없지만 복용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용 중단에도 포기는 없다

다시 말기 담도암 환자 은짱의 펜벤다졸 복용 후기로 돌아가보자. 9월25일 첫 복용을 시작한 은짱은 ‘3일 복용 뒤 4일 휴식’ 방식으로 펜벤다졸을 복용했다. 3주차부터는 펜벤다졸에 비타민E와 CBD 오일을 함께 복용했다. 4주차 복용을 끝낸 뒤엔 펜벤다졸과 같은 벤지미다졸 계열의 ‘인간 구충제’인 알벤다졸로 바꿔 고농도 비타민C와 함께 복용을 이어갔다. 은짱은 2주차 복용 뒤인 10월7일 “설레는 결과가 나왔다”며 “종양표지자 검사(종양에 대한 인체 반응으로 생성된 물질 검사)인 CA 19-9에서 지표가 반으로 줄었다”는 등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30일 5주차 복용을 끝낸 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를 공개하며 “기대하시는 결과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펜벤다졸 복용 중단 소식을 전했다. 은짱은 “5주간 담도 주위로 암이 커졌다. 펜벤다졸이 오히려 담도암에는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아무래도 담도암이 지방 흡수를 잘 못하는 암이라… (약이) 지용성이라 무리가” 된 것 같다는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은짱은 “비타민C 요법을 할 때는 담도 쪽에 암덩어리가 자라지는 않았다”면서 “펜벤다졸을 믿고 복용하든가 예전처럼 비타민C 고농도 주사를 맞을 것인가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해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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