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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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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착취’ 영상에 관대한, 너무 관대한 한국

미국 징역 5년, 영국 22년인 데 비해 한국법원은 운영자에 징역 1년6월형
등록 2019-10-28 02:20 수정 2020-05-02 19:29
미국 법무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웰컴 투 비디오’사이트 폐쇄 안내문(위). 웰컴 투 비디오 화면 갈무리

미국 법무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웰컴 투 비디오’사이트 폐쇄 안내문(위). 웰컴 투 비디오 화면 갈무리

“Do not upload adult porn.”(성인 포르노는 올리지 마시오.)

최근 폐쇄된 아동음란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가 이용자들을 상대로 쓴 문구다. ‘성인 포르노’라는 두 단어는 빨간색으로 강조했다. ‘비(非)성인’이 등장하는 성착취 영상만 취급한다는 의미다. 10월17일 미국 법무부는 수사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웰컴 투 비디오’ 서버에서 약 8테라바이트 규모의 25만여 개 영상이 발견됐으며, 이는 역대 아동 성착취 시장 압수물 가운데 최대 분량이라고 했다. 기소장에 공개된 일부 영상 내용을 보면, 성착취 피해자에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영아부터 사춘기 이전 아동들이 포함됐다.

세계 최대 분량 아동음란물이 담긴 서버는 2017년 대한민국 충남 당진에 있는 사이트 운영자 손아무개(23)씨 집에서 압수된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청 사이버안전국과 미국 법무부가 이날 발표한 수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2017년부터 2년 동안 두 나라를 포함한 32개국이 ‘웰컴 투 비디오’ 관련 국제공조를 벌여 운영자 손씨를 비롯해 이용자 337명을 붙잡았다. 이 가운데 223명이 한국인으로 가장 많았다. 미국 법무부는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심하게 학대받은 최소 23명의 미국, 스페인, 영국 거주 미성년 피해자를 구출했다”고도 밝혔다. 사이트는 일반 검색엔진이나 브라우저로 접근할 수 없는 ‘다크웹’ 형태로 운영됐으며,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사용했다.

국제공조는 뜻밖의 국제 ‘비교 평가’로 이어졌다. 같은 사건에서 미국•영국 국적 피의자들이 중형을 선고받은 데 견줘, 한국 피의자들은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 선고를 받은 탓이다.

‘영상 소지’ 판결 8건 중 7건 벌금형

미국 법무부 보도자료에 공개된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 처벌을 보면, 미국 매사 추세츠주에 사는 하이로 플로레스는 아동 음란물을 수취하고 소지한 혐의로 징역 5년에 의무가석방(형을 복역한 뒤 추가로 보호관찰처럼 감시받는 제도) 5년을 선고 받았다.

텍사스주의 리처드 니콜라이 그래코 프스키는 아동음란물을 1회 수취하고, 아동음란물을 보기 위해 접근한 혐의로 징역 70개월에 의무가석방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피해자 7명에게 3만5천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영국에서는 아동음란물을 제작•유포한 카일 폭스가 성폭행 혐의 등을 함께 유죄로 인정받아 22년형을 선고받았다.

한국도 미국•영국과 마찬가지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 배포, 소지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지만 실제 처벌은 집행유예 이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영상을 내려받거나 배포한 사건 9건의 판결문을 살펴보니, 영상 소지의 경우 8건 가운데 7건이 벌금형 (150만~350만원) 선고에 그쳤다. 영상을 1080개 소지했던 이용자, 1천 건 넘는 소지 혐의에 더해 282건을 업로드한 다른 이용자는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웰컴 투 비디오’를 2년8개월 동안 운영하면서 4억여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챙기고 현금화해서 사용한 손씨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것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강한 처벌에 해당했다.

성범죄자들, 음란물 사용 빈도 높아

미국 형법은 아동음란물을 제작한 경우 초범도 봐주지 않고 최소 15년 징역형부터 시작하는 등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한국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 근거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 수입 또는 수출한 범죄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판매, 대여, 배포, 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 운반할 경우 10년 징역까지 선고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실제 처벌이 법에서 정한 것 보다 더 약한 이유는 “법원이 성범죄 처벌에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피해자지원국장은 “한사성에서 지난해 126개 불법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와 유포자들을 고발했지만, 대부분 불기소 처분이나 벌금형으로 끝났다”며 “불법인 걸 인지하면서도 계속 거래하는 사람 들이 생기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처벌 수위를 높여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의 ‘미온적’ 처벌에 대한 공분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10월21일 게시된 ‘아동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손 모씨와 사이트 이용자들의 합당한 처벌을 원합니다’ 청원은 시작한 지 나흘 만에 참여 인원 20만 명을 돌파했다(10월24일 기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은 피해자들에 대한 성적 착취라는 점에서 제작, 유통, 소지 행위 모두 폭력이자 범죄다. 이런 성착취는 피해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심각하게 장기간 침해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심각성을 인식해 규제를 점차 강화해온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성범죄와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6년 내놓은 를 보면, 여러 연구가 ‘성범죄 위험도가 높은 범죄자들의 경우 음란물과 음란물 사용 빈도, 재범률 사이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난다’고 결론 내린다.

특히 아동성범죄자와 아동음란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알려져있다. 국내에서는 2008년 초등생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정성현의 컴퓨터에서 미성년자 나체사진 수백 장과 포르노가 발견됐고, 2010년 초등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수철은 범행 전날 아동 포르노 50여 편을 봤다. 이런 점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2012년 아청법 개정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유엔아동권리위 8년 전 ‘낮은 기소율’ 우려

2012년 법무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국내 성범죄 수형자(유죄판결이 확정되어 교도소나 치료감호소에 있는 사람) 288명과 일반인 17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동 성범죄자 16.1%가 성범죄 직전 아동음란물을 봤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성범죄자 응답(7%)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아동 성범죄를 지지하는 태도, 아동에 대한 성적 흥분 및 가학성을 측정하는 아동 성범죄 척도’에서 아동음란물은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음란물 사용 여부나 빈도를 통해 다른 성범죄를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힘을 얻게 된 근거다. 경찰에 따르면 ‘웰컴 투 비디오’로 검거된 한국인 이용자 중에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전력자들이 포함돼 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제작, 저장, 유포하는 건 성적 동기에서만 비롯한 게 아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은 거래 목적으로 활용된다. 지난 5월 있었던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씨의 항소심 재판부는 손씨가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성인 음란물보다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사이트를 인수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손씨에 대한 공소장을 보면, 이용자들이 ‘웰컴 투 비디오’에서 영상을 내려받으려면 ‘포인트’가 필요했다. 이 포인트는 아동 포르노를 직접 올리거나, 신규 고객을 유치하거나, 비트코인으로 유료 회원이 되어야 얻을 수 있었다. ‘웰컴 투 비디오’는 이용자가 한 번 올렸던 영상을 중복해서 올리지 않도록 걸러내는 기술 장치까지 사용했다. ‘새로운’ 영상을 쉼 없이 공급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기술 발달로 아동•청소년 성착취 ‘시장’의 진입장벽은 낮아지고 피해 규모는 커지기 때문에, 각종 국제기구는 ‘예방’을 매우 강조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이미 8년 전인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 “아동 성폭력 급증과 높은 음란물 소비율, 아동 성착취에 대한 낮은 기소율”에 대한 우려를 전한 바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같은 피드백에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다음을 권고했다. “b) 어떠한 수단에 의하든 성적 착취를 위해 아동을 제공, 전달 또는 인수하는 데 해당되는 모든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포함, 아동 성착취를 효과적으로 기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라. c) 아동성범죄자에 대해 범죄의 심각성에 걸맞은 수준의 처벌이 형사사법제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라. d) 형사책임 면제 없이 성범죄자의 교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라.”

영국, 신고 없어도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자 체포

영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법령에서 ‘아동 성매매’ ‘아동 포르노’라는 용어를 빼고 ‘아동 착취’를 쓴다. 경찰청이 직접 ‘아동 성착취와 온라인 보호팀’을 운영하면서, 별도의 신고 없이도 성적 이미지를 분석하고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자를 체포한다. 반면 한국의 아청법은 십대 성착취를 두고도 ‘자발적 공범’과 ‘비자발적 피해자’의 구분을 유지하고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다크웹 사건은 한국 사회가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얼마나 무감한지 드러낸 것”이라며 “스마트폰이 확산하면서 성매수자 남성들이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을 통해 피해 십대에게 성착취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하는 게 일반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어느 지점이든 서둘러 끊어야 할 때가 됐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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