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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미래 윤석열의 미래

검찰개혁 바람 탄 긍정 여론에도 검찰 수사에 내맡긴 명운
등록 2019-09-28 06:23 수정 2020-05-02 19:29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인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인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조국의 미래’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현직 법무부 장관으로서 전례 없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장관은 9월26일 국회 데뷔 무대에서 자신의 수사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져 야당의 탄핵 공세도 받게 됐다. 조 장관은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검찰이 9월23일 자신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검찰 수사팀장과 통화해 “아내가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배려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배려 부탁? 수사 방해?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 장관이)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지켜왔다는데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조 장관은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제 처가 놀라서 전화했다. 너무 걱정돼서 제 처 옆에 있던 분(검사)에게 ‘압수수색을 하되 제 처의 건강 문제를 챙겨달라’고 말하고 끊었다. 내가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에 대해서 어떤 방해를 하거나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조 장관의 전화를 압박으로 받아들였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화 내용은 와이프가 몸이 좋지 않고 아들과 딸이 집에 있으니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 이런 취지였다. 전화를 받은 검사는 (장관의 전화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조 장관이 압수수색을 빨리 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해 압박을 느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대정부질문 도중 의원총회를 연 뒤 “조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탄핵소추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야당의 탄핵소추가 없어도 자신의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검찰 수사가 자신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조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그를 피의자로 입건했음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 ‘검찰에 소환될 경우 장관직 사퇴 여부’를 묻는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의 질의에 “소환 통지가 제게 온다면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에게는 검찰의 소환 통보가 없어도 맞닥뜨릴 위기가 또 있다. 그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 여부다. 검찰은 조 장관 집에서 가져온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정 교수를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정 교수가 구속되면 조 장관도 더는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임명 때만 해도 조 장관 본인의 위법이 없으면 장관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게 청와대와 여당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조 장관 부인이 구속되면 여론이 악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조 장관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반등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교통방송(tbs) 의뢰로 9월23∼25일 전국 성인 1504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포인트)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지난주보다 3.3%포인트 오른 48.5%로 나타났다. 부정평가는 전주보다 2.7%포인트 하락한 49.3%였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의 격차는 0.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정 교수가 구속되면 이 흐름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9월23일 조국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검찰이 9월23일 조국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계속되는 과잉수사 논란

조 장관의 미래만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미래도 결코 밝지만은 않다. 조 장관에 대한 과잉수사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는 최근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 이유 중 하나로 ‘검찰 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를 꼽았다.

검찰은 조 장관 집을 압수수색할 때 영장 목록에 없는 딸의 중2 때 일기장을 압수하려고 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보도를 보면 검찰은 조 장관 딸의 일기장과 중고등학교 때 쓰던 폴더폰까지 가져가려고 했는데 이는 영장 목록에 없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압수 대상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것일 뿐 압수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 장관 집에 대한 압수수색은 검찰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주거지 압수수색’은 수사 대상자뿐 아니라 그의 자녀 또는 부모가 검찰이 영장을 집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불시에 들이닥쳐 집 안을 샅샅이 뒤지는 광경은 가족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래서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은 다른 곳과 달리 법원이 발부 여부를 더 엄격하게 판단한다.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으면 발부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원이 조 장관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은 그만큼 조 장관의 혐의가 가볍지 않음을 방증한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검찰 지휘 권한이 있는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수사팀이 조 장관 부인은 물론 조 장관도 기소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일사천리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25일 조 장관 수사 개시 이후 처음으로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이날 인천에서 열린 제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에게 “(조 장관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그동안 출퇴근을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하고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는 등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 이랬던 그가 첫 ‘외출’에 나선 것은 검찰 수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데 따른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검찰이 정 교수의 영장에 넣을 혐의는 딸의 동양대 표창장 등을 위조한 사문서 위조와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된 자본시장법 위반, 그리고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증거인멸 등이다. 이 가운데 구속 여부를 결정할 관건은 증거인멸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 심사 과정은 먼저 범죄 소명 여부와 사안의 중대성을 검토한 뒤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 여부를 따진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조 장관 자녀의 스펙 관련 혐의나 사모펀드 등은 구속될 만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거인멸 정황은 영장을 심사하는 판사의 성향에 따라 구속 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 교수 구속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 교수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거센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수사 최고 책임자인 윤 총장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권에서는 현직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전례 없는 수사로 국정을 한 달 가까이 마비시킨 책임을 반드시 물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정 교수의 영장이 기각된다면 여권의 책임론 공세를 윤 총장이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뿐 아니라 이번 수사에 참여한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 윤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은 여권 인사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9월24일 유튜브 방송 에서 윤 총장의 수사 착수 결심 배경에 한동훈 검사장의 역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수부를 지휘하는 한동훈 반부패부장이 이것(조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관련 첩보)을 (윤 총장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윤 총장은 이것(한 부장의 보고)으로 조국 가족, 최소한 정경심 교수 구속과 유죄 선고를 받고 조국도 같이 기소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받았다고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윤 총장은 자기가 받은 최초의 보고가 수사 결과와 일치하거나 어긋나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25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25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윤 총장, 책임의 무게

윤 총장이 조 장관 부인의 구속영장 발부와 상관없이 이번 수사가 마무리되면 청와대에 사의를 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신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준 것에 책임을 질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윤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명재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아들들을 구속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바 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찬반 여론은 팽팽하게 맞선다. 리얼미터가 9월24일 의뢰를 받아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검찰의 조국 장관 가족 수사에 관한 국민 인식을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과도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49.1%로 ‘적절하다’는 답변 42.7%보다 많았지만, 그 차이는 6.4%포인트로 오차범위 이내였다.

‘윤석열 사단’은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의 기질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정의만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의혹이 있는 사건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검사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3년 전 ‘촛불시민’이 요구한 개혁 대상이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조국 사태’는 이 딜레마가 만든 필연적 사건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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