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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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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종착지 또 어디로 가나

개발 광풍에 밀린 도시난민들이 기대 사는 ‘경의선 공유지’

공단, 상업지구 개발 위해 퇴거 요구해
등록 2019-06-18 00:56 수정 2020-05-02 19:29
서울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조용분, 이희성, 유선화씨(왼쪽부터)는 경의선 공유지에서 서로의 어깨를 결으며 지낸다. 경의선 공유지 부지를 소유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하고 있다.

서울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조용분, 이희성, 유선화씨(왼쪽부터)는 경의선 공유지에서 서로의 어깨를 결으며 지낸다. 경의선 공유지 부지를 소유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하고 있다.

지하철 5호선과 6호선, 공항철도, 경의선 4개 노선이 오가는 공덕역 1번 출구로 나오면, 걸어서 1~2분 거리에 있는 경의선 숲길. 양옆 높은 건물들 사이 자리잡은 광장(5740㎡)엔 서울시 ‘26번째 자치구’인 경의선 공유지가 있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26번째 자치구엔 법적으로 인정받는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울시 26번째 자치구민 70여 명과 시민들이 낸 후원금으로 경의선 공유지의 수도요금과 전기요금 등을 충당한다.

경의선 공유지 한켠에 자리잡은 ‘청계천 두꺼비네’. 달고나(설탕을 녹인 군것질)와 건어물, 약재를 판다.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가사가 있는 동요 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청계천 두꺼비네’에서 1년째 장사하는 유선화씨는 재개발을 추진한 서울시 때문에 집도 가게도 잃었다. 헌 가게를 내놓고 받은 새 가게도 결국 공중분해됐다.

청계천 재개발로 집·가게 잃어

경의선 공유지에 오기 약 15년 전, 유씨는 청계천 인근 서울 종로구 황학동 삼일아파트 상가에서 수입 구제 의류를 팔았다. 1989년부터 그곳에 터 잡은 친정어머니의 뒤를 이어 일했다. 주말엔 식당에 주문해놓은 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한 장당 3천원에 팔았는데, 주말에 300만원 정도 벌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나.” 하지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손님들을 받던 유씨 가게는 얼마 가지 못했다. 장사를 이어받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유씨의 가게가 있던 상가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주변 재개발로 철거된 탓이다. 생계수단을 잃은 유씨의 삶은 이후 180도 변했다.

당시 서울시는 송파구 문정동에 들어서는 새 쇼핑몰 가든파이브에 입주하길 원하는 청계천 상인들에게 7평 크기의 상가를 7천만~8천만원에 분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애초 7700억원으로 예상했던 공사비가 두 배로 뛰면서 분양가도 덩달아 2억~3억원으로 올랐다. “청계천 상가 철거 이후 입주까지 몇 년 동안 장사할 곳 없이 붕 뜬 신세가 됐다. 초등·중학생이던 자녀 세 명을 기르느라 신용불량자까지 됐고 결국 파산했다.”

유씨는 2010년께 가든파이브에 입주했다. 황무지에 건물 하나 덜렁 있어 손님은 없었다. 카드 결제 기계를 샀지만 한 번도 긁어보지 못했다. 월 60만원이던 임대료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유씨는 결국 명도소송을 당해 가든파이브에 입주한 지 2년 만인 2012년 강제집행을 당했다. “이후 지인 소개로 건어물을 판 뒤 수익의 20%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12시간 일해서 4만원 벌 때도 있었다.” 유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철거된 뒤 황학동 뒤편 주택으로 전세살이하다 현재는 임대아파트에서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2016년 9월, 유씨는 경의선 공유지에 터를 잡았다. 오전 10시께 나와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땐 저녁까지 있다. 주말도 따로 없다. 가장 잘 팔리는 건 1천원짜리 캐릭터 달고나다. “하루 매출은 3만~4만원이다. 많이 팔면 5만원 정도 된다. 떠돌다 여기 있으니까 마음이 안정된다. 의지할 데가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아현 포차’ 철거되던 날 기절

‘청계천 두꺼비네’ 맞은편엔 ‘아현 포차 거인 이모네’가 있다. 백반, 칼국수, 오돌뼈, 삼겹살볶음, 똥집, 빈대떡 등 안 파는 게 없다. “만들어달라는 거 다 만든다. 제일 잘하는 거? 다 잘해.”

6월10일 낮 12시께 ‘거인 이모’ 조용분(74)씨가 수돗가에서 상추를 씻으며 점심 장사를 준비했다. “대가리까지 깨끗이 씻어야 해. 더러운 걸 어떻게 손님한테 줘. 내가 성격이 깔끔해.”

거인 이모는 1980년대 후반 서울 마포구 아현동 굴레방 인근에서 리어카 장사를 시작했다. 인근에 서강학원이 있어 학생들을 상대로 한 분식이 잘됐다. 1990년대 들어 마포구청에서 거인 이모 같은 리어카 노점들을 단속하면서 한쪽으로 몰았다. 리어카 노점들이 두 줄로 형성되면서 뒷줄에 있는 노점은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아현 포차’가 들어서게 된 이유다. 아현 포차는 아현초등학교 앞 노점상들을 일컫는다. 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진행된 뒤 입주한 브랜드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마포구청은 2016년 8월 거인 이모가 운영하던 ‘작은 거인’ 포장마차를 포함해 16개 모두 철거했다.

30년 동안 생계를 기대온 포차가 철거되던 날, 거인 이모는 기절했다. 용역들과 구청 관계자는 포차의 문을 뜯어내고 창문을 깼다. 포차 안 집기가 쏟아져나왔다. “우리를 돕겠다고 100명 가까이 모였는데, 구청 쪽은 300명 정도 왔나봐. 당할 재간이 있나. 그때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갔지. 옆 포차에서 장사하던 행운 할머니도, 강타 이모도 실려갔어.” 거인 이모와 강타 이모는 ‘아현포차 지킴이’들의 도움으로 2016년 8월 경의선 공유지에 임시 포차를 차렸다. 아현 포차로 3남매를 키웠던 거인 이모는 경의선 공유지 임시 포차에서 번 돈으로 오십 줄이 된 3남매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자녀들이 지병으로 수입이 없어서다. 거인 이모는 맞은편 노란 컨테이너에서 사는 이희성(35)씨에게 날마다 묻는다. “희성아, 밥 먹었냐? 밥 먹으러 와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세입자로 살던 이씨는 행당6구역이 재개발되면서 강제 퇴거당해 쫓겨났다. 현재 주민등록법상 거주 불명 등록으로, 3년째 주민등록이 말소돼 도시 난민 상태다. “내가 챙겨줘야지 누가 챙겨. 새끼 같잖아.”

유선화씨, 이희성씨를 위해 거인 이모가 밥상을 차렸다. 거인 이모는 이씨의 잔치국수에만 멸치 두 마리를 얹었다. 거인 이모가 “희성이 국수엔 특별히 고기 올렸다”며 개구지게 웃자, 유씨와 이씨가 폭소를 터뜨렸다. 거인 이모는 이씨 쪽으로 아삭오이고추무침을 밀었다. “희성이가 좋아하는 거야.” 도시 난민들은 서로 기대고 있었다.

서울 아현동 재개발로 포차가 철거된 ‘거인 이모’ 조용분씨, 성동구 행당동에서 강제 퇴거당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도시 난민’ 이희성씨, 청계천 복원 공사로 집과 가게를 잃은 유선화씨가 경의선 공유지에서 임시 포차와 컨테이너, 임시 가게를 차렸다(왼쪽부터).

서울 아현동 재개발로 포차가 철거된 ‘거인 이모’ 조용분씨, 성동구 행당동에서 강제 퇴거당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도시 난민’ 이희성씨, 청계천 복원 공사로 집과 가게를 잃은 유선화씨가 경의선 공유지에서 임시 포차와 컨테이너, 임시 가게를 차렸다(왼쪽부터).

국유지 개발은 공익인가

재개발 과정에서 쫓겨나 경의선 공유지에 모인 도시 난민들은 최근 또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경의선 공유지 소유권이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공단)에서 퇴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단은 경의선을 지하화하면서 유휴 부지가 된 선로의 상부 61%를 공원으로 만들고 역세권은 상업지구로 개발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2010년 12월 서울시와 맺었다. 이후 2012년 (주)이랜드월드와 특수목적법인인 ‘이랜드공덕’을 세우고 이 부지를 상업적으로 개발하기로 했으나, 7년째 방치했다. 그동안 지역 시민단체들은 마포구에 요청해 2013~2015년 빈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공단의 협조를 얻었다. 이후 시민 장터와 강연장 등으로 사용해왔다. 그 하나로 도시 난민들이 2016년 경의선 공유지에 모인 것이다.

‘경의선 공유지 문제 해결과 철도부지 공유화를 위한 범시민공동대책위원회’(경의선 범대위) 쪽은 이미 경의선 공원화로 공덕역 인근 땅값이 올라 젠트리피케이션(지가 상승으로 원주민 이탈 현상)이 발생했는데 투기적 개발까지 더해지면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배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은 6월12일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의선 터 개발 과정에서 주변 땅값이 올라 세입자와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피해를 보았다. 공덕역 인근은 공원화만으로도 이미 땅값이 올랐다. 개발이 이뤄진다면 땅값이 더욱 올라 세입자들과 원주민이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국유지의 상업적 개발이 공익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의선 숲길 조성 후 경의선 공유지의 공시지가 상승률을 분석한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에 따르면, 경의선 지상 구간이 상업적으로 개발되면서 지가지수가 폭등했다. 2010~2018년 지가변동률을 보면, 대규모 상업 개발이 이루어진 홍대입구역 인근 지가지수는 134%나 뛰었다. 서울시(23.26%)나 마포구(28.03%)보다 5배 이상 오른 셈이다. 경의선 공원화 뒤 공덕역 인근 지가도 59% 올랐다.

6월12일부터 한 달간 시민대축제

공단은 불법 점유를 멈추고 터에서 나가달라 한다. 공단 관계자는 “원상회복 반환 의무가 있는 조건하에 2015년까지 사용 허가를 한 것이다. 허가 기간이 끝났는데도 무단 점유하고 있다. 마포구가 무단 점유자에게 자진 철거 계고 후 명도소송 등을 통해 무단 점유를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과 공단은 5월16일 간담회를 열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공단은 올해 말 개발을 시작할 계획이다. 마포구청은 수차례 철거 계고장을 보냈다.

경의선 범대위 쪽은 대규모 투기 개발이 아닌 시민들의 공간으로 경의선 공유지를 사용하자 주장한다. 6월12일부터 한 달간 경의선 공유지에서 ‘도시의 투기적 개발 반대와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시민대축제’를 연다. 이 과정에서 경의선 공유지 활용 방안을 논의할 시민 대토론회를 세 차례 열고 다양한 학술행사와 대중강연 등을 할 예정이다. 경의선 범대위 쪽은 12일 오후 2시께 경의선 공유지에 ‘쫓겨난 자들과 함께하는 거리의 연구자들’이란 이름의 컨테이너를 들였다. 공유지의 투기적 개발을 막고, 공유지를 시민의 공간으로 지키기 위해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연대의 뜻을 담았다.

“초가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가수 홍세민의 를 구성지게 부른 거인 이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6남매 막내며느리였는데, 시부모님 모신 지난 세월이 생각나네. 여기서 또 쫓겨나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글·사진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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