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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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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서 차별 임금 “바꿔내니 날 것 같아”

한국지엠 부평공장 유일한 자동차 생산직 여성노동자 이노이씨

#스쿨미투로 학내 성폭력 알린 교사들 등 성차별과 싸운 여성들
등록 2019-03-05 03:33 수정 2020-05-02 19:29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중 유일한 여성인 이노이씨는 퇴직을 1년 남기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얻어냈다. 이노이씨 제공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중 유일한 여성인 이노이씨는 퇴직을 1년 남기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얻어냈다. 이노이씨 제공

100만원 대 63만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성별 임금 격차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은 여성 임금이 남성의 63.3% 수준으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남성이 100만원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여성은 약 63만원을 번다는 뜻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동을 할 때,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사실상 ‘무급’으로 일한다고 볼 수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면 여성 단체들이 오후 3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을 멈추는 ‘3시 스톱(STOP)’ 퍼포먼스를 벌이는 이유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싸운 여성

이노이(60)씨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일하는 유일한 자동차 생산직 여성 노동자다. 이씨의 약 34년 직장생활은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성별 차별의 집합체다. 특히 임금 차별은 이씨가 가장 오랫동안 싸운 문제였다. 남성보다 낮은 임금 체계를 적용받던 이씨는 퇴직을 1년 앞둔 2018년에야 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씨는 1985년 대우자동차 부평2공장 조립2부에 입사했다. 이씨가 하는 일은 주로 에어컨을 자동차에 장착하기 전 전선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아름답고 보기 좋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맵시나, 군부대에서 주로 사용했던 맥스, 슈퍼살롱, 에스페로 등이 이씨의 손을 거쳤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이 1998년에 혈압으로 쓰러진 뒤 이씨는 가족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1990년대 외환위기 전후로 경영이 악화된 회사는 퇴사를 압박했다. 1순위는 이씨 같은 여성 노동자였다. “맞벌이니까” “가장은 남자니까” 같은 이유로 여성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내몰렸다. 이씨는 “‘퇴사하지 않으면 퇴직금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버텼다”고 했다. 이씨에겐 반신마비된 남편, 당뇨로 누워 있는 시어머니, 대학생인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이 있었다. 끝까지 퇴사하지 않고 버틴 여성 노동자 세 명은 2000년 1750명 구조조정 명단에 포함됐다.

남편이 죽은 지 1년 만인 2004년, 이씨는 겨우 복직했다. 4년을 기다려 공장 문턱을 밟았지만 이씨는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업장에 배치되지 못했다. 공장에서 이씨는 노동자가 아니라 그저 여성 이었다.

회사는 이씨에게 보직을 주는 대신 일명 ‘개선반’이라는 ‘대기조’로 2년 동안 돌렸다. ‘펑크’난 자리를 메우는 일이었다. 회사가 “작업장 대신 식당에서 일하라”거나 “사무실 냉장고를 청소하라”고 하면 이씨는 “청소하러 공장에 들어온 게 아니다”라고 되받아쳤다. 직원들 사이에서 “저렇게 드세니 과부가 되지”라는 말이 돌았다.

2006년 자동차의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는 바코드와 연비 라벨을 붙이는 품질확인 1부로 다행히 복귀했으나, 같은 노동을 해도 이씨의 임금은 남성보다 낮았다. 아예 여성 임금 테이블과 남성의 임금 테이블이 달랐다. 이씨가 임금 체계에 문제제기를 해도, 당시 생산기능직 여성 노동자가 3명밖에 안 되는 탓에 이씨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2017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에 여성부가 생기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다른 2명의 생산기능직 여성은 퇴사한 뒤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실무 협의를 통해 2018년 5월부터 이씨의 임금을 남성 임금 테이블로 조정했다. 월급이 한 달에 약 50만원가량 올랐다. 호봉도 29호봉에서 70호봉으로 41호봉이나 올랐다. 1년에 2호봉씩 오르는 걸 생각하면 약 20년치였다.

호봉순으로 정리된 근태표에 항상 마지막 번호 10번이었던 이씨의 번호는 지난해 호봉을 정리해 7번이 됐다. “습관적으로 10번에 사인을 했는데 내 이름이 아니더라. 7번으로 오른 걸 다시 확인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적게 받은 임금을 소급받진 못했지만, 이씨는 뿌듯하다. 이씨는 “올해 12월에 내가 퇴직하고 나면 생산직 여성이 없다. 새로 입사하는 여성은 남성과 같은 호봉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좋다”고 말했다.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이란 없다
‘남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건설 현장에서 신연옥씨가 형틀 목수로 일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남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건설 현장에서 신연옥씨가 형틀 목수로 일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신연옥(45)씨는 노동 현장의 젠더 이분법을 깬 사례다. 지난 2월26일 오후 3시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의 한 빌라 단지 공사 현장. 9개동 총 141가구가 들어서는 빌라 단지 공사 현장 5동 4층엔 보라색 작업복을 입은 신씨가 망치로 철근을 내리치고 있었다. 콘크리트를 붓기 전 수평조절목 위에 ‘폼’을 고정하는 작업이다. 신씨는 허리춤에 못주머니를 찬 형틀 목수다. ‘남자 일’로 여겨진 건설 현장에서 일한 지 3년째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의 남편이 ‘여성 목수가 있더라’고 한 말을 듣고, 신씨는 2017년 2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안산건설기능학교를 찾았다. 교육생 20명 중 2명이 여성이었다. 기능학교에서 못질부터 새로 배웠다. 집을 짓고 부수길 한 달. 그해 4월 한 아파트 현장으로 파견됐다.

현장에서 만난 남성 노동자들은 “남편이 뭐하는 사람이길래 여자를 이런 데 보내냐”며 비아냥댔다. 신씨는 “그래도 노조에서 조합원들로 팀을 짜줘서 일하니까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도면 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공사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신씨는 형틀 목수를 하면서 수입도 늘었다. 물류센터에서 일할 땐 하루에 5만6천원을 벌었는데 현장에선 숙련도에 따라 18만~21만원가량 받는다. 공사 현장을 감독하는 건설사 직원 이준호(46) 차장은 “20년 공사 현장에 있는 동안 여성 목수는 처음이다. 택시 기사나 버스 기사도 예전엔 남성들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성들도 하지 않나. 물론 체력적으로 여성의 힘이 약하긴 하지만 서로 도우면서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경기중서부건설지부에서 운영하는 안산건설기능학교는 2015년 말~2016년 초에 처음으로 여성 목수가 배출돼 총 40여 명이 수료했다. 현재 현장에서 여성 목수 30여 명이 일하고 있다. 김미정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부지부장은 “처음에 여성 목수를 팀에 배정한다고 하면 현장에서 꺼려했던 게 사실이다”며 “공사 현장에서 여성혐오는 심각하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여성인 경우 ‘여자 가랑이 밑에서 일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조에서 간부들에게 성평등 교육을 하면서 어떤 게 여성혐오인지 알리고 있다. 덕분에 조합원이 있는 현장과 일반 현장은 다르다”고 말했다.

학내 성폭력에 맞선 교사들

2018년 2월 페이스북 한 페이지에 글이 올라왔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해주실 여러분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쌓이고 높아져갈수록 사회를 바꾸는 힘도 커질 것입니다.”

제보는 쏟아졌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1988년 시절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일부터 교장선생님에게 “여자 선생은 학교를 하나 옮길 때마다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교사까지, 학교 내 권력관계들에서 약자인 기간제 여성 교사, 학생에게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스쿨미투’ 페이지로 마련된 것이다. 이곳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학내 성폭력 문제가 ‘스쿨미투’라는 단어로 제시됐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선영 교사는 이초롱, 임아무개 교사와 함께 스쿨미투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박 교사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각계에서 성폭력 고발이 일어났다. 교육계에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피해 사례를 모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홍보 효과가 클 것 같아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약 100개의 제보글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됐지만 실제 제보는 1000개가 넘었다. 선생님들은 휴일에도 휴대전화를 놓을 수가 없었다. 피해자들의 피해 호소가 쏟아졌고, 그만큼 삭제해야 할 악플도 많았다. ‘그동안 여성들은 뭘 했냐’ 같은 질문에 대답도 해야 했다. 운영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글 삭제와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같은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제보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와 연결도 시켰다. 이렇게 확산된 #스쿨미투로 성범죄 교원의 징계 시효가 5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노조를 만들어버린 여성들

직장 내 성차별에 맞서기 위해 25년 만에 노동조합을 만든 여성들도 있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직원들은 2017년 1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했다는 글이 페이스북 간호사 대나무숲에 올라온 게 계기다. 글이 퍼지면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졌다. 익명으로 모인 단체 대화방에 병원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하루에 천 개씩 올라왔다. 간호사들은 임신을 순서대로 하도록 강요받거나, 임신 막달에도 나이트(야간) 근무를 해야 했다거나 한 직원은 신부님의 이삿짐을 옮겨야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데 뜻이 모였다.

노조를 결성한 뒤 병원을 상대로 한 싸움이 시작됐다. 대구가톨릭의료원분회는 2018년 7월 말 시작한 파업을 39일째 진행하며 병원 쪽과 교섭을 진행했다. 병원 내 갑질을 전수조사해 이를 부서장 인사평가에 반영하며 불법파견 노동자였던 간호조무사들을 직접고용하고 기본급 정률 5.5%와 정액 6만원 인상에 합의했다. 또 올 3월부터는 주5일제를 시행한다. 200명으로 시작한 노조는 현재 850명까지 늘었다. 노조원 70%가 간호사일 정도로 25년 만에 싸움을 시작한 데는 여성의 역할이 컸다.

하유숙 대구가톨릭의료원분회 분회장은 “우리가 흘린 피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여성 사업장들이 좀더 성평등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의 날 맞아 다양한 행사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직장 내 성평등을 위해 힘쓴 조합원과 지부들에게 성평등모범조합원상과 성평등모범조직상을 준다. 앞서 언급된 이노이씨,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소속 교사 등 조합원과 지부들이 꼽혔다. 민주노총은 세계 여성의 날 당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2019 세계 여성의 날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며 상을 줄 예정이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많은 여성이 직장 내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화에서 싸우고 이긴 여성들이 있다. 다양한 위치에서 역동적으로 조직을 바꾸는 여성들이 부각돼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 당일엔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오후 5시 광화문광장에서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 아래 기념식, 시민난장 등을 연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오후 3시부터 제3회 3시 스톱 조기퇴근 시위가 열린다. 이날 여성 노동자 308명이 채용 성차별을 일컫는 ‘페이미투’(#PayMetoo)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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