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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양승태 ‘제 식구’로 감쌀까

검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 높아

사건 연루된 전직 대법관 영장 기각한 법원 고심 커져
등록 2019-01-12 04:20 수정 2020-05-02 19:29
2018년 6월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2018년 6월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 여부는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다. 1월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조사한 검찰은 그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조사 결과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사법 농단을 ‘헌법적 가치(삼권분립)를 훼손한 중대 범죄’로 규정해 총력을 기울인 검찰이 주범의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견줘 형평성에 어긋나기도 한다.

검찰, 양승태 구속영장 발부 자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할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앞서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검찰이 전략적으로 이들의 영장을 동시에 청구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둘 중 하나는 발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만든 기각이었다. 영장 전담 판사들은 기각 사유로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를 두고 검찰은 임종헌-박병대, 고영한-양승태로 이어지는 공모관계에서 임 전 차장을 그 윗선과 분리하려는 법원의 ‘꼬리 자르기’로 의심한다.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이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 혐의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는 것도 검찰의 의심을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발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수사팀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 수사팀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 반드시 법원행정처장(박병대·고영한)을 통해서만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법원행정처의 부장급을 포함한 여러 간부들은 물론 대법관과도 직접 소통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강제징용 소송의 경우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주심이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앞서 양승태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제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이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주도해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듣고 일제 전범기업이 손해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쪽으로 재판 결과를 바꿀 논리를 개발하라고 담당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 전 대법관과 재판연구관 등 관련자 조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대·고영한 영장 재청구될 수도

양 전 대법원장은 또 외교부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손배 책임이 확정되면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조처했다. 2015년 1월 자신이 주재한 대법관 회의에서 민사소송규칙에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시나리오를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통해 외교부와 조율하도록 했다. 그는 또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법률사무소의 한상호 변호사를 만나 외교부 의견서 제출 계획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한 변호사의 진술과 그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에 개입한 이는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다. 이 밖에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보고는 법원행정처 부장급 판사에게 직접 받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은 부장급 판사가 여러 안을 보고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 전 대법원장은 차장-처장 라인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법행정’을 지휘했다. 따라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입을 열지 않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소명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앞서 영장이 기각된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세 명의 영장을 한꺼번에 청구한다면 법원이 이를 모두 기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직제상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수사팀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박·고 두 대법관의 영장을 한꺼번에 청구한 것도 법원에서 기각됐기 때문에 검찰이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팀 관계자는 “(두 전직 대법관 영장의 재청구 여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조사 이후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박·남재준도 무죄… 양승태도?

사법 농단 수사의 최대 고비는 앞으로 벌어질 재판이다. 사법 농단 수사에 잔뜩 불만을 품은 판사들이 즐비한 서울중앙지법과 고법이 검찰 수사 결과를 어느 정도 인정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인다. 조짐은 별로 좋지 않다. 최근 법원은 사법 농단 관련자에게 적용될 직권남용죄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소송을 위해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을 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로 임명하고 개인 재산 관리에 국세청 파견 직원을 동원하는 등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지시가 대통령의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다스 소송 등은 대통령 권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 1월4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사찰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두고 법원이 사법 농단 재판에 앞서 직권남용죄의 판단 기준을 까다롭게 가다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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