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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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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버스 나가신다 ‘나쁜 한국사장님’ 비켜라

고통받는 이주노동자 찾아가는 ‘투쟁투어버스’ 동행 르포…

악덕 사업장 방문해 항의 집회 열고 노동자 힘 북돋아 
등록 2018-05-15 17:37 수정 2020-05-03 04:28
5월8일 오후 경기도 양평의 버섯농장 앞에서 집회를 마친 ‘이주노동자 투투버스’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5월8일 오후 경기도 양평의 버섯농장 앞에서 집회를 마친 ‘이주노동자 투투버스’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노동자는 물건이 아니다. 노동시간 속이지 마라.”

5월8일 오후 1시께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 느타리버섯농장 앞. ‘투투버스’(투쟁투어버스)를 타고 온 이주노동자들이 한글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한글 발음은 어눌했지만 의지는 결연했다. 스티로폼 숙소 등 열악한 환경을 제공하고 임금을 착취하는 농장주를 규탄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함께 연대하자고 외쳤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수원이주민센터, 이주공동행동 등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공동주최단’이 운영하는 투투버스는 노동절 행사가 있었던 지난 4월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선포식을 열었다. 노동절은 5월1일이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노동절이 평일이면 쉴 수 없어 주말에 행사를 열었다.

첫 방문지는 버섯농장
경기도 여주에 있는 버섯농장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가건물로 에어컨과 히터가 없는 비좁은 방이다. 이불로 공간을 나눠 생활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버섯농장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가건물로 에어컨과 히터가 없는 비좁은 방이다. 이불로 공간을 나눠 생활하고 있다.

이주공동행동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스티로폼 가건물 등 임시 거주시설에서 화재 위협에 노출돼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잠금장치 없는 기숙사에서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에 “처음에는 농성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농·축산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찾아올 수 없어 우리가 찾아가기 위해 투투버스 운행을 결정했다.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사업장과 노동청, 고용센터를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투투버스는 5월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의정부고용센터(2일)와 의정부노동지청(3일)을 찾았다. 이날 경기도 여주와 양평 지역의 버섯농장은 투투버스의 첫 사업장 방문지였다.

이들이 집회를 하는 동안 농장 안 숙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스티로폼 가건물 창문 너머로 본 작은 방에는 3명이 살고 있었다. 방에는 낡은 에어컨이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히터는 없다. 이들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지난겨울을 났다.

타이에서 온 지 4년이 됐다는 ㄱ씨는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하루에 10시간 일한다고 했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12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저녁 6시30분까지 하루에 꼬박 10시간씩 일한다. 야근도 많이 하지만 한 달 일하고 받는 돈은 150만원이다.” 한 달에 몇 번 쉬냐는 기자의 질문에 ㄱ씨는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을 가져와 보여주며 “이번 달에 빨간 날이 많지만 3일밖에 못 쉰다”고 했다. 어버이날인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그는 “타이에 계신다. 전화 통화만 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스티로폼 창고 주고 월 60만원 떼어가

이 버섯농장에는 20명의 이주노동자가 있다. 8명이 화장실 1개와 샤워실 1개를 쓰고, 2명이 침실 하나를 공유한다. 비가 오면 건물 안으로 물이 들어와 천장에 상자를 붙였다. 투투버스 주최단이 이처럼 열악한 시설에 사는 비용이 한 명당 60만원이나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곳 농장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에 최저임금을 곱하면 210만원이 되지만,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150만원밖에 안 된다. 왜 60만원은 주지 않느냐고 농장주에게 물으면 “숙식비로 공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숙식비 공제 지침)을 마련했고, 3월부터 시행했다. 이주노동자가 서면 동의하면 숙식비를 월 통상임금에서 최대 20%까지 공제할 수 있다. 숙식을 모두 제공하면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다세대 주택은 20%,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은 13%를 공제할 수 있다. 식사를 뺀 숙소만 제공하면 각각 15%, 8%를 공제할 수 있다.

노동부의 숙식비 공제 지침을 고려하더라도 60만원씩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여주 버섯농장의 노동시간과 거주시설을 고려하면 최대 27만원까지 공제할 수 있다. 투투버스 주최단 20여 명은 “스티로폼 창고는 사람 집이 아니다. 즉각 철거하라”며 “노동부는 불법 스티로폼 숙소 임대업자 배불리는 ‘숙식비 공제 지침’을 철회하라”고 외쳤다.

캄보디아에서 와 2년을 일한 콘사쿤(28)은 이주노동자에게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라고 외쳤다. “여주의 다른 농장에서 일했는데 4개월 이상 임금을 못 받았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했는데 8시간 임금도 안 되는 돈을 줬다. 한국 노동부도 내가 못 받은 임금을 외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법률 상담을 도와주는 최정규 원곡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노동한 시간만큼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게 안 되니 말문이 막힌다. 이렇게 고용주가 사기 칠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명보다 이윤 먼저 따지는 사업주들
‘이주노동자 투투버스’ 참가자들이 5월8일 오후 경기도 여주의 버섯농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투투버스’ 참가자들이 5월8일 오후 경기도 여주의 버섯농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여주 버섯농장과 같은 농장주가 운영하는 양평 버섯농장에서도 투투버스의 집회가 이어졌다. 캄보디아에서 온 피아라(24)는 지난해 3월 양평 버섯농장에서 일하다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버섯 상자를 올리는 일을 하다 톱니에 엄지와 검지가 끼어 손가락이 부러졌다. 철심 넣는 수술을 받았고, 아직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는다. 피아라는 “손가락을 다치자 사업주가 노동부에는 버섯 따는 일을 시키겠다고 하고, 예전처럼 계속 무거운 물건을 들게 했다. 도저히 아파서 일할 수 없다고 하자 일을 그만두게 했다”고 토로했다.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생명, 안전, 건강보다는 이윤을 먼저 생각한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축산업이 굴러갈 수 없는데도 사업주들이 우리를 무시한다”며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주노조는 2004년부터 실시된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투투버스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집회 중간에 “우리는 차별 없는 세상, 평등을 원한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집회 시간에 버섯농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 집회가 끝난 뒤 투투버스 공동주최단 쪽에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점심시간에 집회 소리를 들었다. (평소 같으면) 일 빨리 하라고 윽박지르던 사장과 반장이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녁때 항의를 포기했던 동료들이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매주 하루 쉬고,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여달라고 사장에게 주장하는 것을 토론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농장 쪽은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열악한 숙식 환경 개선에 곤란해했다. 투투버스가 이날 찾은 농장 두 곳의 관리자인 ㄴ씨는 “임금은 올랐는데 이주노동자의 노동 질은 되레 떨어졌다. 여건이 맞으면 우리도 맞춰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인상된 최저임금 기준에 맞춰주기는 힘들다”고 했다. 숙소에 대해서도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면 숙소를 제공하는 게 의무인지 묻고 싶다. 와서 살면 집세를 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노동부에 고발장 제출했지만…

투투버스는 5월10일 오후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을 방문해 해당 농장 고발장을 냈다. 노동부 관계자는 투투버스와 면담에서 숙식비 지침의 부당성에 공감은 하면서도 노동시간 축소와 임금 미지급에 대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이처럼 부당 노동행위를 해도 사실상 고용주에게 가해지는 처벌이 없다. 정부가 의지가 없는 것이다. 해당 농장은 2013년과 2014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됐는데, 되레 문제를 제기한 이주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말했다.

투투버스는 5월15일 경기도 화성고용센터, 17일 충북 충주고용센터, 23일 충남 논산 사업장 등을 방문한 뒤 27일 이주노동자 집중결의대회를 연다. 31일에는 마지막으로 세종시 고용노동부를 방문해 고용노동부 장관을 면담할 계획이다.

글·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인터뷰


"이주노동자 없으면 한국 경제 멈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해,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리안 드림’을 품고 고향 네팔을 떠났다. 한국에 온 그는 철제 의자를 만드는 공장부터 서울 동대문구 봉제공장 등을 거쳤다. 라이 위원장은 고용주의 임금체불과 동료 노동자들의 폭력 등을 겪은 뒤, 2009년 이주노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은 5월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민주노총 서울본부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투투버스’(투쟁투어버스)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이주노동자 사이에도 정보 접근성에 차이가 있다. 도시 근처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이나 여러 상담센터를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농·축산업 노동자들은 노동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골에 고립돼 있다. 마음대로 일터를 고를 수 없고, 고용주가 임금을 깎아도 대응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주노동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투투버스를 기획했다. 사업장뿐 아니라 관할 노동청을 찾아 문제 해결도 촉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농촌 지역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담이나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조활동을 하며 힘든 점은 뭔가.
얼핏 보면 모습이 한국인 같아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내게 존대를 했다가도, 어설픈 한국말을 듣고는 반말하며 하대할 때 인종차별을 느낀다. 정부와 관할 기관이 당연한 이야기를 해도 안 들어줄 때 힘들다.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해도 무시당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가 집회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의 힘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계속 노조활동을 하는 이유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차별을 당했을 때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주노조 활동에서 만족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당장에 바뀌지는 않더라도 주장을 할 수 있어 좋다.
문재인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평가한다면.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주노동자 처지에선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노동자의 자유보다는 고용주의 관리 차원에서 다뤄진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정부가 통과시킨 ‘숙식비 공제 지침’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할 국회 차원의 법 발의는 전혀 없다. 일부 정부 관계자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하고, 자유한국당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상황이 부정적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 정부는 우리에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중소도시의 영세 사업장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나아가 한국 경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공장도 안 돌아가고 경제성장이 멈춘다고 생각하면 우리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사람이다. 단지 조금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면 한국 사회에선 차별이 사라질 수 없다. 인권과 노동을 생각하고, 이주노동자 처지에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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