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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댓글 공작 ‘압도적 1위’였네

MB 경찰 7만7천 명의 대규모 댓글부대 의혹…

경찰 스스로 적폐 청산 가능할까
등록 2018-03-20 08:27 수정 2020-05-02 19:28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2년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2015년 1월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2011~2012년 보안국장이던 그는 경찰 댓글 의혹 사건으로 다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김성광 기자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2년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2015년 1월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2011~2012년 보안국장이던 그는 경찰 댓글 의혹 사건으로 다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김성광 기자

경찰이 여론 조작을 위해 댓글을 달았다. 정보기관(국가정보원), 군(국군사이버사령부·기무사)에 이어 수사기관의 여론 조작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경찰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완성된 정보기관-군-수사기관으로 이어지는 댓글 ‘삼각 커넥션’은 이 기획이 단순히 선거를 이기기 위한 정치공학적 전술 이상의 거대한 음모였음을 말해준다.

경찰 댓글부대 규모 국정원·군 압도

경찰은 등장부터가 국정원·군과 비교 불가다. 동원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원이 8만여 명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보안사이버요원 88명, 경찰 내부 보안요원 1860명, 인터넷 보수단체 회원 7만7917명 등을 모은 수다. 국정원이 이른바 ‘민간인 댓글부대’로 동원한 3500여 명과 비교해도 20배가 넘는 수치다. 이는 이 3월12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이재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안보 관련 인터넷상 왜곡 정보 대응방안’(이하 대응방안, 2011년 4월18일 작성)과 ‘보안사이버 인터넷 대응조치 계획(비공개)’(이하 조치계획, 2011년 8월18일 작성) 문건에서 드러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실행‘안’이다. 경찰은 3단계로 나눠 여론 조작을 꾀했다. ‘왜곡 정보’의 사전 대응이 필요한 1단계, ‘왜곡 여론’이 확산된 2단계, ‘왜곡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3단계로 나누고 대응방안과 주체를 명시했다. 특히 급속도로 확산·전파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 보안요원(1860명)과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23개 단체, 7만7917명)를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내부 문건을 보면 경찰도 자신들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는 불법의 영역에 있음을 분명히 인지했다. 조치계획을 보면 “인터넷 여론 조작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또 사이버요원이 비밀리에 개설해둔 실명, 차명 아이디 등을 이용해 대응하라는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경찰이 신분을 감추고 복수의 아이디를 이용해 여론 조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 계획대로 8만 명이 복수 아이디를 썼다고 추산하면, 수십만 개의 온라인상 인격체가 정부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정부 지지 여론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실행계획이 구체화한 정황도 포착됐다. 3월13일 공개된 ‘사이버안보 신고요원 운영계획(비공개)’(이하 운영계획, 2012년 2월 작성)을 보면, 경찰청 보안국은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2월 보수단체와 접촉해 인터넷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민간인 요원을 비밀리에 선발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운영계획에 따르면, 경찰은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보수단체와 접촉해 운영진이 추천한 요원에게 면접을 실시하고, 같은 해 3월까지 심사 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짰다. 운영계획에는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성해 사이버안보 위해 요소 색출 활동을 전개하고, 수사관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비공개 온라인 커뮤니티와 게임·일상생활 커뮤니티 등에 간헐적으로 행해지는 안보 위협 요소를 색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선발된 신고요원의 활동 역량에 따라 오프라인 활동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대적인 총력전 양상이었지만, 비밀 유지 대책도 꼼꼼하게 마련했다. 특히 온라인 대응 작전과 관련한 지시 사항은 공식 계통을 거치지 않고 은밀하게 전달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여론 조작 지시와 관련해 본청 요원이 직접 ‘면대면·구두’로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공문 등 문서 수·발신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으려는 조처다.

한겨레·아고라 등 진보 게시판 집중 공격
‘안보’ ‘보안’ 등의 명분으로 포장된 경찰 내부 문건은 일반 포털 게시판에 글을 쓰는 시민들을 종북으로 규정해 대응하고, 나아가 보수단체 회원을 신고요원으로 채용해 활동한다는 여론 조작 계획을 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안보’ ‘보안’ 등의 명분으로 포장된 경찰 내부 문건은 일반 포털 게시판에 글을 쓰는 시민들을 종북으로 규정해 대응하고, 나아가 보수단체 회원을 신고요원으로 채용해 활동한다는 여론 조작 계획을 담고 있다. 박승화 기자

경찰의 여론 조작은 주로 포털 게시판 등에 터를 잡았다. 이재정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사이버수사 역량 강화를 위한 사이버보안 활동 종합 분석 및 대책’ 문건을 보면 △포털 다음의 ‘아고라’ △한겨레신문 토론게시판 ‘한토마’ △인터넷 매체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등이 열거돼 있다. 경찰은 각 사이트에서 사이버 종북 활동 대상자를 활동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담당 경찰을 지정했다. 목표는 문건에 등장하듯 “보수단체 구성원들과의 유대관계 강화 및 종북성 사이버공간에 대한 게시물 작성, 댓글 활동 등을 통해 종북 성향을 희석시킨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사이버 여론 조작에 애초 알려진 보안국뿐만 아니라 수사·정보·공보 등 경찰 내 각종 비보안 분과가 동원된 정황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심리전단 등 특정 부서가 동원된 국정원·군과 달리 경찰 조직의 몸통이 동원됐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내용은 이철희 의원이 확인한 2011~2012년 당시 보안사이버수사대 핵심 관계자의 진술서에 나온다. 이 의원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경찰청은 보안국 산하 보안사이버수사대뿐만 아니라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둔 수사국과 대국민 홍보 기능을 갖춘 대변인실, 지역·사회·경제·학원·언론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국 등을 동원해 댓글 조작에 나섰다고 한다.

온라인 여론 조작 과정에서 군경의 공조를 밝히려고 꾸린 ‘경찰진상조사팀’은 이미 지난 2월 말 이런 내용의 경찰 내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대해 보안사이버수사대 핵심 관계자는 “기사나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안보 문제와 관련한 왜곡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런 업무는 경찰청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특히 수사국과 대변인실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여론 조작 등의 목적으로 이런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댓글 활동은 정상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1년 당시 경찰청에서 일했던 경찰 고위 관계자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진술을 했다. “경찰과 관련한 잘못된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올 경우 워낙 급속하게 퍼지다보니 해명을 한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 적은 있다. 보안 기능 부분만 아니라 다른 기능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여론 조작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면서도, 수사·정보 등 비보안 부서에서 댓글 달기 형태의 여론 대응이 이뤄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진술만 있는 게 아니다. 이철희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입수한 ‘안보 관련 인터넷상 왜곡정보 대응방안’(2011년 4월20일)을 보면, “왜곡 정보 유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전기능 사이버팀”과 “타기능 사이버팀 공조”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보안 분야 사이버부서뿐만 아니라 수사 분야 사이버팀 등이 함께 여론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철희 의원은 “보안국뿐만 아니라 주요 부서가 다 동원돼 댓글 공작에 나섰다면 경찰청의 존폐를 걸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현오·김용판 또 수사 대상에 오르나

현재 공은 다시 경찰에 돌아간 상태다. 경찰의 공식 입장은, 이는 실행 계획이었을 뿐 실제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도 당시 “말이 되지 않는 지시”라거나 “별로 효과도 없다”는 식의 반발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양심선언까지는 아니지만 당시 이런 지시에 내부 반발이 상당했음을 방증하는 증언들이다.

이철성 경찰청장 등 현 경찰 수뇌부는 2011~2012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 때문에 “규모가 어떻든 털 것은 털고 가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 여론 조작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까지 보고된 안을 구체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경찰청 국 차원에서 작성된 계획이 이유 없이 시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계획이 일부 수정됐을 수는 있어도 시행 자체가 안 됐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미실행된 계획일 뿐’이라는 공식 입장과 달리 이 안이 실행됐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3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 “(댓글 공작 정황이) 명확히 확인될 경우 특별수사단을 꾸릴 예정이다. 실질적으로 (댓글 공작에) 관여한 사람을 다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임호선 경찰청 기획조정관을 단장으로 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단’을 전격 구성했다. 경찰이 이처럼 발 빠르게 나선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중대 국면에서 댓글 조작 의혹으로 생길 수 있는 역풍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찰이 이번 의혹을 진상 규명하는 데 실패할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을 예정이던 대공수사권도 물 건너갈 수 있다. 현재 수사단에는 수사에 밝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출신이 대거 배치돼 있다. 그에 따라 속도감 있게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와 무관하게 검찰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3월16일 2011~2012년 경찰 댓글 여론 조작 의혹과 관련해, 당시 경찰 수뇌부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김용판 전 보안국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공안2부에 배당했다. 검찰은 고발 내용을 검토한 뒤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를 지휘할지, 혹은 직접 수사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7년간의 긴 침묵 깰 수 있을까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가 늘어놓은 요설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곳곳에서 ‘한국판 괴벨스’의 흔적이 보인다. 국정원·군 심리전단 요원들은 ‘엠비(MB)는 오빠 스타일’과 같은 허술한 영상을 퍼나르고, 2012년 말 대선에선 야당과 문재인 후보를 종북으로 몰아세웠다. 조악한 거짓 논리였지만,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끌어올리는 발판이 됐다. 당시 군 사이버사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2012년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대부분 지시에 따라 영혼 없이 움직인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라고 했다. 괴벨스는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는 말도 남겼다. 승리에 도취돼 그랬을까. 여론 조작에 관여한 경찰 수천 명이 침묵한 기간이 7년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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