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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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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피겨선수, 미셸 콴

올림픽 금메달 아쉽게 못 땄지만 오랜 세월 연기로 증명한 실력
등록 2017-12-29 23:57 수정 2020-05-02 19:28
로이터

로이터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 흥미로운 ‘vs 놀이’가 올라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게이머인 페이커(이상혁)와 은퇴한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가운데 세계적으로 누가 더 유명할까를 따지는 ‘vs 놀이’였다. 이 논쟁에 수많이 이들이 참전하며 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페이커를 택한 이들은 한국인이니까 김연아를 아는 거지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말했고, 김연아를 택한 이들 역시 롤이 지금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결국 그들만의 리그라며 맞섰다. 이 논쟁은 다른 커뮤니티에도 번져갔고, 몇몇 외국에 사는 이들은 주변인들에게 둘을 아느냐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결과는? 대부분이 김연아와 페이커 모두를 몰랐다 한다!

페이커와 김연아, 누가 더 유명하게?

이 논쟁에서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김연아를 택했던 이들은 피겨가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 해도 역대급 실력을 가진 선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주장했다. 그 예시로 든 이름 가운데 하나가 ‘미셸 콴’이었다. 미셸 콴의 이름을 떠올리자 김연아를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미셸 콴.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에 나에겐 피겨스케이팅 그 자체였던 선수다. 모르면 외우라는 말처럼 피겨스케이팅의 ㅍ자도 모르던 나는 ‘미셸 콴=피겨스케이팅’으로 인식하며 살아왔다. 농구 하면 마이클 조던이고 축구 하면 펠레인 것처럼, 나에게 피겨스케이팅은 미셸 콴이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피겨스케이팅의 여왕으로 군림해왔고 국내 언론에서도 잊을 만하면 미셸 콴이란 이름을 소환했다.

1998년 나가노겨울올림픽. 아마도 내가 처음 자의로 피겨스케이팅을 본 대회일 것이다. 명성이 자자했던 미셸 콴의 스케이팅을 처음 감상한 것도 그 대회였다. 미셸 콴의 연기를 보며 나는 자연스레 ‘우아함’이란 말을 떠올렸다. 아마도 김연아를 처음 봤을 때 사람들이 느낀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미셸 콴은 다른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늘씬하진 않았지만 얼음 위에서만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여전히 피겨스케이팅의 기술을 모르는 나는 그저 그가 점프를 할 때, 그가 다리를 들고 빙글빙글 돌 때 아름답다 생각했을 뿐이다.

모두가 콴의 금메달을 점쳤지만 그는 같은 미국의 타라 리핀스키에게 밀려 은메달에 머물러야 했다. 그가 올림픽에서 불운했다는 걸 안 건 4년이 지나서였다. 세계선수권 우승만 다섯 번을 한 그는 정작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가져가지 못했다. 자기 조국인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에서는 생애 첫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한국의 언론도 주목했지만 미셸 콴은 결국 동메달에 그쳤다. 그때 역시 심판 판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미셸 콴이 올림픽 무관의 제왕이라는 사실은 바꾸지 못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그가 10년 넘는 세월 동안 피겨스케이팅의 아이콘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훌륭한 선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깟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어도 그가 오랜 세월 증명해온 연기만으로 충분했다. ‘첫’이란 낱말은 언제나 중요하다. 무관한 척하려 해도 결국 나는 한국인이고, 미셸 콴의 상징과도 같은 ‘세헤라자데’ 연기보다 김연아의 ‘세헤라자데’가 더 우아하다고 머리로 생각한다. 그래도 마음에 남아 있는 건 이 ‘첫’이다. 나가노의 미셸 콴은 나의 첫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 이 ‘첫’은 대부분 끝까지 간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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