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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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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교회 위의 방주재단

“담임목사는 직원일 뿐” 일방적 해임 …

“내 뜻대로 운영” 설립자와 “교회가 사유물인가” 교인 충돌
등록 2017-12-12 15:23 수정 2020-05-03 04:28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뤄진 지 올해로 500주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유명 교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잇따라 탐욕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최근 칼럼에서 “명성교회의 목사직 세습은 돈과는 무관하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지어진 교회를 사유재산으로 제 핏줄에게 상속하는 날것의 코미디이다. 재테크 교회의 바벨탑에는 신의 영역이 없다”고 폐부를 찔렀다. 명성교회에 이어 이번엔 제주의 방주교회에서 날것의 파열음이 터지고 있다. 이 교회는 무인 전동차와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중견기업 우진산전의 김영창 회장이 자신의 땅과 65억원의 건축비 전액을 희사해 2009년에 설립됐다. ‘노아의 방주’를 물 위에 띄운 것 같은 아름답고 멋진 교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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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던 12월3일 이른 아침, 한라산 중산간인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잡은 방주교회 앞. 오전 9시30분에 시작하는 1부 예배 시간이 아직 1시간 이상 남았는데 20여 명의 남녀 교인들이 일찌감치 교회 앞에 나와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임장원 담임목사의 자동차가 도착하자 교인들은 임 목사를 호위하듯 둘러싼 채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마다 이같은 ‘호위 출근’을 거듭하는 임 목사의 표정도 비장하다. 방주교회 비상대책위원장인 이상천 장로는 “재단에서 해임 처분을 받은 임 목사를 보호하기 위해 주일마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큰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장원 목사 지키는 교인들

임 목사가 호위 출근을 시작한 것은 11월 들어서였다. 11월 중순부터는 임 목사를 지키려는 방주교회 교인들이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캄캄하고 차가운 교회 마당에 모여 예배당을 일곱 바퀴씩 돌고 각자 기도를 올린다. 이 장로는 “재단에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교회 문을 걸어 잠갔다. 따뜻한 교회 안에서 새벽기도를 올릴 땐 대여섯 명이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교회 밖에서 열리는 새벽기도에 스무 명 가까이 참석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11월18일 토요일엔 “교인 몰래 목사 해임! 교인 몰래 예식 사업!”이란 펼침막을 내걸고 교회 앞에서 집단시위도 한 차례 벌였다.

“우리가 기도하던 곳이 기업이었나요.”

“방주교회는 재단 설립자의 소유인가요.”

“너무 유명해져서 교회다움을 잃어버렸어요.”

최근 제주 방주교회의 교인 카톡방에 올라온 글들이다. 방주교회에선 “내가 설립한 교회를 ‘내 선한 뜻’대로 운영하겠다”는 설립자와 “교회 위에 재단이 있을 수 없다”는 교인들이 맨몸으로 충돌하는 중이다.

이번 사태는 방주교회를 운영하는 방주재단이 10월31일 임장원 담임목사를 전격 해임하며 시작됐다.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교인들이 하나둘 재단에 맞서 집단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임 목사 또한 “해임 조처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담임목사의 지위 보전을 청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맞서 재단 쪽에서는 교인들의 평일 교회 출입을 전면 봉쇄하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 재단은 교회의 일부 현관문을 쇠사슬로 잠그는 등 주일 예배 외의 모든 활동을 힘으로 저지하는 중이다. 또 임 목사에게는 사택과 자동차를 반환하라고 법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제주 지역 기독교계에선 150명의 목사와 30명의 장로들이 법원에 임 목사 해임 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등록교인 67명을 포함한 110명의 교인들도 별도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위기의 방주교회를 구하자’는 서명운동(http://bangjuchurch119.org/)을 벌이고 있다.

연 20만명 찾는 제주 명소

방주교회가 이렇게 홍역을 앓게 된 것은 교회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방주교회 예배당은 세계적 건축가인 재일동포 이타미 준(한국 이름 유동용)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물 위에 방주가 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 입소문을 탔고, 기독교인을 포함해 해마다 20만∼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명소가 됐다. 제주관광공사는 최근 발표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겨울 낭만 여행지 10선’에 방주교회를 포함했다.

교회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는 헌금 증가였다. 관광객들이 예배에 참석해 헌금을 내면서, 교회는 지난해부터 재정 자립을 이뤘다. 재단 쪽에 월 1천만원씩 교회 수리비를 별도로 내놓고 있다. 그전까지는 적자 재정을 김영창 이사장의 사재 지원으로 충당해왔다.

12월2일 토요일, 서귀포시 남원면의 한 추어탕집. 이날 제주 올레길 6코스를 함께한 교인 12명이 점심 식사를 했다. 이들은 임 목사 해임 소문이 전해진 10월 중순부터 토요일마다 걷기 모임을 가진다. 이 자리에서 교인들은 “교회를 사유물로 생각하는” 방주재단을 향해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진짜 문제는 재단의 교회 사유화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순히 문제 있는 목사를 해임한 사건이라면 왜 교회 문을 쇠사슬로 걸어 잠그나. 새벽 예배도, 큐티 모임(교인들이 성경 읽으며 묵상 시간을 갖는 모임)도, 청소년 예배도 못하게 한다. 재단이 교회를 교회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금의 방주교회가 싫으면 떠나라고 하는데, 교회가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교회를 떠나라 마라 할 수 없다.”

“설립자와 담임목사 뜻 맞지 않아”

이들은 재단이 장악한 교회 예산이 투명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재단 사람들이 헌금을 걷어 일부를 사회사업에 쓴다고 한다. 그러나 교인들한테 그 내용을 소상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재단에서는 교회 찾아오는 사람을 모두 관광객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헌금하지, 사진 찍으러 오는 관광객은 헌금하지 않는다.” 방주교회의 등록교인은 현재 120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70명이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등록하지 않은 채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도 60~7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일요일 예배 인원이 500명(많을 때는 600∼700명) 정도 되니 교인이 전체 예배 인원의 10(재단 주장)~20%(교인 주장) 정도인 셈이다.

이에 맞선 재단의 주장 역시 강경했다. 재단은 사무국 이원희 행정간사에게 임 목사 해임 사태를 풀어갈 수 있는 전권을 위임한 상태다. 이 간사는 김영창 이사장의 개인소유인 교회앞 올리브카페를 임대 운영하는 사업자이기도 하다. 그는 임 목사 해임의 첫째 이유로 “방주교회는 재단 산하의 여러 조직 중 하나이고 담임목사는 재단의 직원일 뿐”이라는 이유를 댔다. “방주재단은 두 가지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나는 교회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복지 사업이다. 방주교회의 담임목사는 재단 목적 사업 중 하나를 담당하는 직원에 불과하다. 교회에서 설립한 대학교의 교목이나, 병원의 원목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이어 “일반 교회에서는 장로들의 당회·제직회·교인총회가 운영권을 갖지만, 방주교회에서는 재단이 교회의 법적 소유권과 운영권을 모두 행사한다”며 “임 목사도 처음부터 그런 사정을 알고 이사장의 뜻을 따르겠다고 해서 방주교회로 왔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해임 사유로는 재단(김 이사장)과 임 목사의 교회 운영 방침이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재단은 방주교회가 관광객한테 활짝 열린 교회가 되는 ‘관광교회’로서 정체성을 뚜렷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원희 행정간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방주교회에는 현재 연 20만 명 이상이 찾아온다. 예배 인원의 90%가 방문객이다. 10%의 교인이 당연히 방문객을 섬겨야 할 것 아니냐. 이사회에서 그렇게 운영 방향을 정하고 거듭 실행을 요구했지만 임 목사가 따르지 않았다. 재단은 재단대로 가고, 교회는 교회대로 간다는 평행론을 주장한다.” 재단은 임 목사에게 주일 3부 예배를 신설하고, 채플 웨딩 사업을 추진하며, 가이드를 활용한 교회 안내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임 목사가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간사는 “임 목사가 교인들을 결집해 자기 세력화하려 한다”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인들은 “주간 교회개방 안내는 교인들이 충실히 해왔으며, 담임목사를 해임하기 위해 억지 사유를 갖다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회가 재단의 사업체인가”
12월3일 임장원 담임목사가 재단의 요청으로 시작한 3부 예배를 하고 있다. 예배당의 자리가 거의 비어 있다. 이날 임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험한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는 교독문을 읽었다. 김현대 선임기자

12월3일 임장원 담임목사가 재단의 요청으로 시작한 3부 예배를 하고 있다. 예배당의 자리가 거의 비어 있다. 이날 임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험한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는 교독문을 읽었다. 김현대 선임기자

올해로 교회 창립 9년째를 맞은 방주교회에서 내부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회 설립 초기 김영창 이사장이 3자에게 이사장직을 잠시 맡겼지만 머잖아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김 이사장은 2012년부터 직접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서울에 살며 주말에만 교회로 출근하는 초대 목사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교인들이 집단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이상천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차례 혼란을 겪었지만, 김 이사장에 대한 교인들의 신뢰는 여전했다. 임 목사나 교인들도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고 해마다 모자라는 운영비를 기꺼이 내놓는 설립자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교회 위에 재단이 있다는 사실을 교인들이 처음 알게 됐고, 설립자에 대한 믿음도 와르르 무너졌다”고 말했다.

갈등이 예고된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재단은 이사장을 정점에 놓고 일사불란하게 교회 조직이 움직일 수 있도록 조직도를 만들었고, 8월에는 교회 운영 규정을 고쳤다. 방주재단 조직도를 보면, 이사장과 부이사장 아래 방주교회, 법인사무국, 방주사회복지센터의 3개 조직이 병렬로 배치돼 있다. 재단에서 담임목사 지위는 교회의 목회 업무만 전담하는 ‘일개 부서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또 운영 규정 개정을 통해 “담임목사는 재단 직원”이라는 재단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반영했다. 담임목사 임기를 3년으로 못박고 2년마다 재신임하도록 했다. 종전 규정을 보면 담임목사는 70살까지 종신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다. 15년 이상 방주교회에서 목회를 한 담임목사를 예우하는 원로목사 조항도 삭제했다. 교인들은 “속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교회인 줄 알고 왔지, 재단의 사업체인 줄 어떻게 알았겠나” “이럴 것 같으면 ‘방주교회’라 써놓은 대형 돌비석을 ‘방주재단’으로 바꿔라”고 비난했다. 한 교인은 “재단의 조직도와 운영규정 개정은 일찌감치 담임목사 해임을 겨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단은 임 목사와 갈등이 커지던 지난 6월, 방주교회 독립운영을 위한 제안서를 내놓기도 했다. 재단은 제안서에서 “방주교회 독립운영자(담임목사)가 헌금의 30%를 임대료로 재단에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재단의 한 사업 부문인 교회를 기업에서 하듯이 아예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친 셈이다.

제주도의 6개 기독교단체는 9일 성명을 내어 “재단은 임목사 해임을 위해 올 8월 ‘방주교회 운영규정’을 개정했으며, 이후 교인들의 뜻도 묻지않고 일방적으로 임목사 해임을 결정했다. 이는 실정법과 교회법에 어긋나는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강조했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방주재단 방식이 교회를 운영하는 일반적인 모델은 아니다. 처음 설립 때부터 교회 구성원의 의사결정 권한과 재단의 운영 가치 사이에 충돌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는데, 설립자와 재단이 이를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법적 문제를 떠나서 재단의 교회 소유권 주장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중견기업 창업자인 재단 이사장이 자칫 재산 증식이나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교회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굽은 것은 곧아져야

방주교회에서는 한 달여 전부터 재단이 요구한 3부 예배를 낮 1시에 한다. 12월3일 3부 예배에는 겨우 10여 명의 교인과 관광객이 참석했다. 이영권 장로는 대표기도를 통해 “관광객이 모이는 예배처이면서, 믿음이 모이는 기도처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의 교독문 낭송이 울려퍼졌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오.”

은 최근 진행 중인 방주교회 사태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 이사장은 법원의 가처분 심리가 끝날 때까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서귀포=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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