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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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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욕심부리다 땅에 묻혔어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 장석준·강수돌 삼촌이 들려주는 사회와 경제 이야기
등록 2017-11-14 08:27 수정 2020-05-02 19:28
이 지면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를 위해 과 가 함께 만듭니다. 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 분야별 개념과 가치, 이슈를 다루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싣습니다.

장석준·강수돌
그림 이야기·최연주

나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사회 장석준_삼촌은 진보정당에서 정책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정당 활동가야.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같은 아주 긴 소설로 유명해요. 그런데 감명 깊은 짧은 이야기도 많이 썼어요. 삼촌은 그중에서도 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볼게요.

파홈이라는 성실한 농부가 있었어요.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농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죠. 쓸데없는 욕심도 별로 없었어요. 딱 한 가지만 빼고요. 바로 땅에 대한 욕심이에요. 그는 늘 농사지을 땅이 더 많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러다 어느 날, 유목민인 바시키르 사람들이 땅을 싼값에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유목민은 넓은 땅에 양을 풀어놓고 키우는 사람들이에요. 농부와 달리 땅 욕심이 별로 없어서 헐값에 땅을 넘기는 거예요. 파홈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장 그들을 찾아갔어요. 가서 보니 정말 하늘이 준 기회가 맞았어요. 바시키르 사람들은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면, 돌아다닌 만큼의 땅을 준다고 했어요. 파홈은 정말 신이 났어요. 넓은 땅을 가지려고 되도록 멀리까지 달려갔어요. 그런데 너무 멀리 가고 말았어요. 땅을 가지려면 출발했던 데로 돌아와야 하거든요.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어요. 파홈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 뛰었어요. 하지만 이미 힘을 다 쓴 상태였지요. 파홈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바시키르 사람들은 파홈을 묻어줬어요. 죽은 파홈은 무덤으로 쓸 2m 정도 길이의 땅만 필요했어요. 땅 욕심 때문에 죽었는데, 죽고 보니 그에게 필요한 땅은 딱 그만큼이었던 거예요.

이건 줄거리예요. 톨스토이가 쓴 원래 이야기는 훨씬 재미있어요. 동무들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줄거리만 들어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나요?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파홈이 있지는 않나요? 물론 세계에서 땅이 제일 넓은 러시아와 한국은 달라요. 한국은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보니 땅 욕심보다 집 욕심이 더 커요. 집을 여러 채 갖고 그걸로 돈벌이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기가 가진 집 한 채의 값이 계속 올랐으면 하고 늘 바라죠.

최근에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어요. 눈이 불편한 친구들을 위해 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그 동네 사람 중 여럿이 반대했거든요.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는 어디에 짓죠? 그들은 어디서 공부해야 하죠? 집값이 정말 우리 친구, 이웃의 삶보다 더 소중한 걸까요? 집 한 채 있는 사람들한테 집값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값이 올라서 집을 팔면 결국 다른 집을 사야 해요. 새로 사야 할 집도 값이 오른다면, 집을 사고팔아도 버는 돈은 없는 셈이죠.

그러고 보면 집값이 올라야 한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해요. 더 많은 땅에 욕심을 내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은 파홈의 꿈처럼 말이에요. 마지막에 파홈에게는 자기 몸을 누일 아주 작은 크기의 땅만 필요했어요. 우리한테 필요한 것도 소박한 집 한 채가 아닐까요? 장애인 친구들에게 그저 학교 하나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에요.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소박한 꿈만이 우리가 지켜갈 값어치 있는 참된 희망이겠죠.

스펙과 실력은 달라

*경제 강수돌_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며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이야.

요즘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블라인드 채용’을 많이 한대. 그게 뭐냐고?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출신 학교나 자격증, 영어 점수 같은 걸 물어보지 않고 ‘이 사람이 우리 회사(의 일을 하는 데)에 알맞은가’에 초점을 맞추는 거야. 쉽게 말하면, 취업할 때 회사에 내는 이력서에 출신지·가족관계·학력·증명사진 같은 걸 넣지 않도록 하는 거지. 국민건강보험공단·에너지공사·서울대병원 같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CJ그룹·기아자동차 같은 대기업과 은행 등 많은 민간기업도 나서고 있어. 학벌과 학력, 외모 차별을 없애겠다는 정부와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가 반영된 거지.

이렇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지금까지는 취업준비생들이 ‘스펙’을 쌓느라고 많이 고생했어. 일류 대학이라는 이른바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무조건 가려고 애쓰거나, 토플이나 토익 같은 시험에서 영어 점수를 잘 받으려고 노력하거나, 취업을 위해 얼굴을 고치는 수술을 하려던 사람들이 무척 당황하게 될 거야. 학벌과 외모로 취업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던 풍토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외모 차별이 많이 줄어들겠지. 그게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이유니까.

이뿐만이 아니야.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관점을 바꾸고 사회적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데도 영향을 끼칠 거야. 삼촌은 이 점에 주목하는데, 지원자가 취업을 위해 ‘스펙’에만 목매는 것이 대단히 서글픈 일이야. 사실 스펙(spec)이라는 영어 단어는 원래 어떤 제품의 규격이나 성질, 특수한 용도 등을 뜻하거든. ‘스펙을 쌓는다’는 말에는 우리를 인격체, 즉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력(상품)으로 취급한다는 뜻이 깔려 있어. 슬프게도 기업만이 아니라 지원자 자신도 그렇게 여겨. 이걸 바꿔서,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에 맞는 실력을 쌓는 태도와 관점을 가져야 해.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걸 공부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이렇게 살아온 사람과 그런 사람을 원하는 기업이 만나 ‘근로계약’을 맺는다면 서로 좋은 일 아니겠어? 다음으로, 사회적 다양성이 발전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이것은, 나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일을 열심히 할 때 사회 전체적으로 다양한 실력이 마음껏 발휘된다는 얘기야. 만약 블라인드 채용이 지원자의 개성과 잠재력을 잘 발휘하도록 도와준다면, 한국 사회는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지지 않을까? 그래야 진짜 실력 있는 사회,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닐까? 물론 기업의 채용 방식이 변한다고 모든 게 변하진 않아. 우리의 가치관과 사회 시스템도 같이 변해야 앞에서 말한 좋은 방향의 변화가 가능해. 하지만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야. ‘나부터’ 참여하는 거고. 나부터 작은 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순간, 이미 우리 사회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된 거야.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한 건 매우 시사적이야. 우리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거부터 시작해볼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와 만나세요. 구독 문의 031-955-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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