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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여론 조작 활동은 명백한 선거 개입”

법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징역 4년 선고

윗선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책임 향할지 주목
등록 2017-09-05 17:24 수정 2020-05-03 04:28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8월30일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015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난 지 22개월 만이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8월30일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015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난 지 22개월 만이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지공무사(至公無私·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음).”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면서 판결문에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헌법 정신에 따라, 지공무사의 자세로 오로지 증거에 기초해 판결 선고에 이르렀음을 밝힌다”고 썼다. ‘지공무사’는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라면 당연한 상식이다. 재판부가 언급한 ‘헌법’ ‘법률’ ‘양심’ ‘헌법 정신’ ‘오로지 증거’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식을 판결문에 언급한 게 감동적일 만큼 원 전 원장을 둘러싼 사법 공방은 한국 사회의 평균적 법 상식을 일탈한 것이었다. 이 판결은 대법원이 2015년 7월 국정원이 여론 조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2심을 파기환송한 ‘사법 참사’에 대해 법원 스스로 상식을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다. 재판부는 이종명(60)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59)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

법원은 국정원이 2009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글 찬반 클릭 1214건,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2124건, 트위터 글 29만5636건 등 총 29만8974건의 활동을 통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파기환송의 근거가 된 국정원 트위터팀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 2개(당시 대법원은 이 문서의 출처 및 기재 경위가 불분명해 업무상 서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선거법 위반 부분엔 무죄를 선언했다)가 없어도 원 전 원장의 불법 판단 근거는 차고 넘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국정원의 사이버 여론 조작 활동은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 출마 선언 뒤 국정원 직원들이 쓴 인터넷 글이 일관되게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반대했다고 봤다. 원 전 원장이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고 말하는 등 전 부서장 회의에서 선거 발언을 반복한 것도 대선 불법 개입의 판단 근거가 됐다.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출범 뒤 7월 국정원 스스로 제출한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내용이다.

원 전 원장은 재상고 의사를 밝혔다. 대법원은 2015년 상고심에서 원 전 원장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고법 판결을 13 대 0 만장일치로 파기환송해 항소심의 (유죄) 결론을 뒤집었다.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24일 종료된다. 그럼 당시 판결에 손을 들었던 대법관 13명 가운데 9명이 남는다.

재판부, 국정원 선거 개입 질타

이번 재상고는 원 전 원장 한 사람에 대한 사법 처리를 넘어 사법 정의의 마침표를 어디서 찍을 것인지와 직결된다. 재판부는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2040세대의 대정부 불만 요인 진단 및 고려사항’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등의 문건을 언급하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질타했다. “여권이 야당·좌파에 압도적으로 점령당한 SNS 주도권을 장악해 민심 왜곡을 차단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국정원은 평소 각종 선거에서 여당 승리 목표로 활동했고, 18대 대선 활동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고 한 것이다. 이 보고를 받아들었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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