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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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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타격할까 미국은 요격할까

‘화성 12형 괌도포위사격 계획’ 실행 전제한 엄포

미사일 속도 빨라 요격 쉽지 않아, 국면 전환 변곡점은 북-미 대화 시작 여부
등록 2017-09-05 08:09 수정 2020-05-02 19:28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 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8월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 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8월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9년 8월 어느 날,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인근 바다에 수십 개의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북한 당국은 연평도에 있는 우리 해병대가 K-9 자주포 해상 사격훈련을 하면서 자신들의 관할 해역에 포탄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며 그 보복 조처로 연평도 인근 해상에 포격을 가했다.

우리 군도 즉각 북한 해안에 대응사격을 했다. 그러나 확전 가능성을 우려해 북한의 발사 원점까지는 타격하지 않았다. 단, 도발에 비례해 북한 해안 지역에 북한이 쏜 것의 3배 가량 포탄이 떨어지게 했다. 서해 5도에는 ‘진돗개’(군의 방어준비 태세로 ‘하나’가 가장 위중한 경우) 하나가 발령됐고, 곧이어 전군으로 진돗개 하나가 확대 발령됐다. NLL 인근 해군 함정들은 북한의 해안포와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며 해상을 장악했고, 대지공격무기를 탑재한 공군기가 긴급 출격해 목표물을 겨냥했다. 우리 군의 응사에 북한의 추가 대응은 없었다. 그렇게 훈련은 끝났다.

‘체호프의 총’일까 ‘맥거핀 효과’일까
2010년 11월23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북한이 발사한 포탄 수십 발이 떨어져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한겨레

2010년 11월23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북한이 발사한 포탄 수십 발이 떨어져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한겨레

이는 내 상상력으로 작성한 ‘북한 도발 시나리오’였다. 2009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기간은 이에 대한 군의 대응을 연습할 좋은 기회였다. 당시 내 기억으로 적잖은 사람이 훈련하면서도 북한이 ‘과연 연평도 주변에까지 포탄을 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년4개월이 지난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0분, 북한은 우리 해병대의 K-9 해상 사격훈련에 대해 바다가 아닌 연평도를 향해 실제 포격을 가했다. 북한은 언제나 내 상상 이상이었다.

“1막에서 권총을 보여주었다면 3막에서는 쏴야 한다. 안 쏠 거면 없애버려라.”

이는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가 한 말이다. 이때 등장하는 권총을 ‘체호프의 총’이라고도 한다. 극 초반에 나와 관객에게 결말을 상상하게 하고 결국 극 후반에 초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를 말한다. 반면 ‘맥거핀(MacGuffin) 효과’는 극 초반에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인 것처럼 잔뜩 분위기를 잡고 등장하지만 중반이나 끝 부분에 아무짝에 쓸모없는 걸로 밝혀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바람잡이 혹은 히치콕식 속임수 장치다.

최근 북한은 괌 인근 30~40km 해상으로 화성 12형 탄도미사일 4발을 발사하겠다고 떠들었다. 북한 전략군사령부 대변인 성명에 이어 직접 김락겸 전략군사령관 대장이 상세한 ‘화성 12형 괌도포위사격 계획’을 발표했다. 급기야 북한 관영매체들은 발사 경로 지도를 펼쳐놓고 계획을 보고받는 김정은의 사진까지 보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북한이 실제 이런 일을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김정은의 한마디에 꼬리를 내린 것이라고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김정은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장이라도 북-미 비밀 대화가 시작될 희망이 번졌다.

그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어떻게 미국에 싸움을 걸 수 있겠나’ 하는 것이다. 일본 상공을 통과해 괌을 향해 미사일을 쏜다는 건 미국에 직접 군사적 공격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들 했다. 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사일을 4발이나 쏜다는 것, 특히 발사 계획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것을 보면 북한의 괌 타격 계획은 허세이자 공갈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8월26일 오전 강원도 깃대령에서 동북쪽으로 단거리 미사일 3발을 쏘았다. 비행 거리는 불과 약 250km. 북한이 엄연히 미사일을 발사했음에도 ‘북한이 도발 수위를 낮췄다’ ‘괌 타격은 허풍이다’ ‘한반도 위기는 이제 지나가는구나’ 하는 성급한 평가가 쏟아져나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아니고 미국을 겨냥한 것도 아니니 전략적 도발이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북한의 도발은 여기까지고 곧 북-미 대화가 시작될 거라는 자기희망적 평가가 지금까지의 잘못된 예측을 또다시 덮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또 쐈다. 8월29일 아침 북한이 일본 상공으로 미사일을 날렸다. 이번엔 괌 포위사격을 하겠다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이었다. 물론 목표 지점은 괌 주변이 아니고, 4발이 아닌 1발인 점은 달랐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은 처음으로 일본열도를 가로질러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또 여기까지라는 말이 나온다. 괌으로 직접 쏘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라도 쏘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전쟁 연극 3가지 관전 포인트
북한은 8월29일 일본 상공을 지나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 현지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AFP 연합뉴스

북한은 8월29일 일본 상공을 지나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 현지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AFP 연합뉴스

북한의 ‘화성 12형 괌도포위사격 계획’은 그저 허언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한 ‘엄포’(Bluffing)일 가능성이 높다. 능력도 의지도 없는 북한이 그저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능력도 있고 실행할 의지도 있는 것이다. 그 점을 확인시키기 위해 8월29일 화성 12형을 발사해 일본 상공을 통과시키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북한이 진짜 하겠어?’라는 낙관적 예측에 기대 무시하고 말리지 않으면 실제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한반도 극장에선 북한이 연출한 미스터리 스릴러인 전쟁 연극 ‘화성 12형 괌도포위사격 계획’이 절찬 상연 중이다. 광복절 전날인 8월14일 전략사령부 지하벙커에서 김정은이 괌까지의 미사일 발사 궤적이 그려진 지도를 보며 미소짓는 것으로 1막이 끝났다. 1막 마지막 장면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쪽의 평가는, 겁주기 위한 ‘설정극’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해 벽에다 ‘살려야 한다’는 글귀를 붙이고 사진 찍은 것과 같다. 과연 북한에서 누가 김정은에게 “사진 찍게 모델 좀 서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을까? 김정은에게 있지도 않은 미사일 도면이나 차트를 만들어놓고 설명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주민에게 공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걸 ‘조작’으로 여기려 한다.

다시 막이 올랐다. 2막 주제는 ‘북한이 과연 쏠까 말까’ 예측하는 주변국들의 모습이다. 2막 진행 중에 느닷없이 8월29일 화성 12형이 발사됐다. 2막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괌을 향한 미사일 발사가 주제인 3막이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시나리오가 그때그때 바뀌어 극의 전개를 따라가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나름 3가지 관전 포인트를 공개할까 한다. 물론 스포일러는 포함돼 있지 않다. 결론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북한의 괌 타격을 누가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지다. 2막 주제이기도 하다. 잘만 하면 연극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 북한이 생각하는 2막 소제목은 ‘누가 나 좀 말려줘’인데 아직 아무도 북한의 괌 타격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북한의 괌 타격을 말리기는커녕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에게서 괌 타격 계획을 보고받았다. 이 장면을 북한 주민들이 본 이상 김정은은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발사 계획을 멈출 명분이 필요하다. 북한을 말릴 극적 계기, 국면 전환을 위한 변곡점은 결국 북-미 관계에 달렸다. 미국의 말만 놓고 보면 내일이라도 당장 북한과 대화할 것 같지만 실상은 물밑 협상조차 없어 보인다. 조지프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라인이 있다고들 하지만 이건 이미 유지돼온 최소한의 의사전달 통로일 뿐이다. 책임 있는 누군가가 북한에 들어갈 수 없다면 최소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방미 정도는 있어야 시작이다.

북한이 원하는 건 미국의 말이 아니라 ‘실질적 행동’이다. 현 상황에서 시간을 끌며 연극을 지루하게 만드는 건 미국인 듯 보인다. 대사 연습이 아니라 아직 무대에 설 준비도 안 돼 있다. 관련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무대에 올릴 배우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트럼프가 직접 무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애드리브만 치는 형국이다. 트럼프 정부의 내부 상황으로는 이른 시간에 극적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1막에서 등장할 총을 치울 상황이 아니다. 과연 그 총을 누가 치울 수 있을까? 운전석에 앉았다고 주장하는 우리가 할 수는 없을까?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화성 12형이 ‘체호프의 총’처럼 괌을 향해 실제 발사될 경우 미국이 과연 요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8월29일 화성 12형을 발사하면서 2막을 내리지도 않고 바로 3막으로 넘어가는 파격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다. 북한이 괌 타격을 실행할 배짱이 없다는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자신이 괌 타격 계획을 실행할 능력이 있고 의지도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로 억지의 3대 요소, 즉 3C인 역량(Capability)·신뢰성(Credibility)·전달(Communication)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바람대로 여러모로 정신없는 트럼프의 속사정을 다 봐주고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줄 김정은이 아니다. 북한도 조급하긴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에 북핵 문제가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미사일이 한 발씩 날아오를 때마다 북한의 몸값은 오르고 협상 칩은 늘어나고 있다. 마냥 미국을 기다리며 미국이 짜놓은 계획표, 원하는 방식대로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하면서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며 미국에 무대로 빨리 올라오라고 강요하는 상황이다.

요격 실패하면 미국 MD 체제 망신

실제 괌을 향해 북한 미사일이 날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결코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 북한은 화성 12형의 ‘괌도포위사격 계획’에 대해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356.7km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도 주변 30~40km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영해를 침범하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니 겁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걱정되면 막아보라는 것이다. 마치 축구의 페널티킥에서 골키퍼한테 어느 방향으로 차겠다고 얘기한 정도가 아니라 차는 길을 그려서 가르쳐준 격이다. 골키퍼는 공이 지나가는 길을 막고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골키퍼가 한 명도 아니고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이지스함 수척에 괌에 배치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까지 총동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 4개 중 하나라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면 골키퍼가 진다. 공 4개를 다 막아도 겨우 비기는 것이다.

북한도 그냥 공을 차지는 않을 것이다. 8월29일의 발사처럼 다른 골대에 가서 실전 대비 연습을 더 해볼 것이다. 실전에서 공 4개를 한꺼번에 찰지 순차적으로 찰지 알 수 없다. 요격미사일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기만체를 쓸 수도 있다. 설령 모두 요격됐다고 해도 막으라고 친절히 가르쳐준 것이고, 오히려 쏠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을 분명히 보여준 것만으로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어쩌면 북한이 실제 괌에 미사일을 쏠 것인가보다 미국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숨죽이며 주목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누구보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가 정식 데뷔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밝힌 정보를 기준으로 하면 괌으로 날아가는 화성 12형의 평균속도는 마하 15 이상이다. 낙하하는 종말 단계에선 탄두가 거의 마하 18~20으로 떨어진다. 사드 요격미사일의 속도는 마하 8.17이고 이지스함에 있는 SM-3의 속도는 마하 10이다. 생각처럼 요격이 쉽지 않다.

요격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미국 MD의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 미국 처지에선 차라리 가만히 떨어지도록 놔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세계 면전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히 판단하라”는 말에서 북한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소름이 끼친다.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괌 주변에 미사일이 떨어진 뒤 벌어질 4막 한반도의 상황이다. 북한의 괌 타격 계획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끝나고 9월에 들어섰다고 해서 접은 것이 아니다. 이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향후 언제든 북한 미사일이 괌 인근에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군사대응을 한다면 어떤 수준일지에 따라 4막의 전개는 달라진다. 북한의 남포나 신포 앞바다 30∼40km 지점에 무엇인가를 떨어뜨리는 방식 정도가 떠오른다. 확전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긴장이 고조되고 상호 오인으로 인한 확전 우려는 남는다.

우연과 우발이 있을 순 있지만 긴장이 고조돼 전쟁으로까지 비화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저강도 분쟁이나 국지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무대는 바로 한반도, 우리 땅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 본토)에서 죽지 않는다”는 말이 결코 현실화돼서는 안 된다. 공포스러운 4막이 아닌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운전석’ 자처하려면 모험적 연출력 필요하다

연극의 끝이 궁금하다. 북한에 맡겨두면 언제나 상상 이상의 작품이 나온다. 과연 북한이 보여준 화성 12형은 ‘체호프의 총’일까, ‘맥거핀 효과’일까. 정말 우리가 운전석에 앉으려 한다면 먼저 나서 ‘체호프의 총’을 ‘맥거핀 효과’로 바꾸는 과감하고 모험적인 연출력을 발휘해야 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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