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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의원, 그냥 하루만 일해보시라

사흘간 급식조리원으로 일해본 <한겨레> 엄지원 기자가 말하는 학교급식 노동

‘엄마처럼 헌신적이라고 해서 엄마처럼 정당한 대가 없이 일하라고 할 순 없다’
등록 2017-07-18 15:38 수정 2020-05-03 04:28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오른쪽)이 7월11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급식노동자 비하 발언’에 항의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오른쪽)이 7월11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급식노동자 비하 발언’에 항의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망치듯 돌아나와 다시 돌아보지 못했다. ‘덥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푹푹 끓어오르는 열기, 한때 맛깔났을 냄새가 눅눅한 공간에서 오래 뒤엉켜 만들어낸 특유의 짬밥 냄새, 그 온도와 습도, 냄새를 흠뻑 머금은 채 피로한 몸뚱이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고무앞치마, 고무장화, 고무장갑의 무게.

너무 크고, 너무 뜨겁고, 너무 무겁다

3년 전 기자 체험기를 써보겠노라며 사흘간 급식조리원으로 일한 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노동의 압도적인 무게에 눌려 아무것도 취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리사 ‘언니’들이 시키는 일을 우왕좌왕 해내는 동안 “당장 앞치마와 고무장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궁리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활자화하지 못한 채 구석에 미뤄둔 기억이,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밥하는 아줌마’ 막말 파문으로 다시 떠올랐다.

대학 때 용돈벌이 하겠다고 닭갈빗집, 부대찌개 식당, 삼겹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 쓰는 일을 꽤 요령 있게 잘해낸다고 생각했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무거운 쟁반을 날라 세팅하는 일에 놀랍게도 나는 재능이 있었다. 급식실일은 식당일을 2~3배 늘려놓은 것이라 생각해 ‘취업’에 큰 부담을 갖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떼어준 건강증명 서류를 들고, 단기 일손을 구하는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를 찾는 발걸음은 차라리 가벼웠다.

‘체험 기사’를 위한 특별 대우를 원치 않았기에 ‘언니’들에게는 그저 “남편의 홑벌이로는 살림이 여의치 않아 알바에 나선 새댁”이라고 소개했다. “젊은 새댁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묵직한 앞치마를 고쳐매며 쩔쩔매는 나를 친정엄마처럼 안타까운 눈길로 넘겨다보던 언니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젊은 정규직 영양사 선생님을 제외한 조리원 5명은 대부분 50대였다. 나를 보던 안타까운 시선은 그들의 삶의 궤적이 내 ‘거짓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귀동냥한 언니들의 사연은 대개 비슷했다. “남편이 경비일을 나가 잘렸”거나, “현장 일용직으로 나가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거나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 밥 지어 먹이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지만, 믿을 곳이 든든했다면 구태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라는 이언주 의원의 말은 반쯤은 맞다. 하지만 급식조리원은 그냥 ‘밥하는 아줌마’가 아니기에, 절반은 분명 틀린 말이다.

출근해서 긴팔 셔츠에 긴바지, 고무앞치마, 고무장화, 고무장갑, 마스크, 모자로 무장하면 ‘아줌마’는 그야말로 ‘특수요원’이 된다. 사방에서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급식실은 습식 사우나와 다름없다. 체감온도가 60~70℃에 이르는 여름철에 그것들을 몸에 걸치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된다.

지난 7월13일 충북 청주에선 두부를 굽던 급식조리원이 폭염에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갔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선 이들 장비 가운데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다. 대량 급식에서 모든 주방일은 ‘극대화’된다. 밥 짓고 국 끓이고 설거지하는 주방일이 ‘500~600인분’으로 닥쳐오면 노동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너무 크고, 너무 뜨겁고, 너무 무겁다. 자칫하면 인명을 잃는 사고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노동을 ‘극단(extreme) 노동’으로 이름 붙였다.

극단적 노동은 숙련을 요구한다. 집에서 조리할 때, 나는 막힘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 덩치만 한 솥에서 수백 개의 튀김을 튀겨내고 국을 끓이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신참인 나는 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나마 수백 개의 오이를 썰어내라는 주문도 마음 좋은 언니가 와서 절반 이상 품앗이해준 뒤 끝낼 수 있었다. 날마다 서너 시간의 제한된 시간에 평균 150~200명의 밥상을 차리는 것이니, 어떻게 도전이 아닐 수 있을까. 적어도 10여 년, 주방 노동에 단련된 사람이 아니면 흉내도 내기 어렵다.

평균 산재율, 건설제조업의 약 2배

빈발하는 사고는 필연적 결과다. 지난해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1~2013년 경기 지역 학교급식실에서 일어난 사고로 헤아린 학교급식조리원의 산업재해율은 1.43%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평균 산재율(0.5%), 건설·제조업의 평균 산재율(0.6~0.8%)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산재 처리를 하면 학교가 교육청의 징계를 당한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업무 중 사고를 당한 급식조리원 대부분은 산재 신청 대신 자기 돈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학생들의 식사가 끝난 뒤 식판을 정리하는 것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들도 ‘설거지·정리’를 가장 힘든 일로 꼽는다. 식판 설거지는 ‘기계식’이지만 사람 손을 타야 한다. 기름 낀 철제 식판을 뜨거운 물에 여러 차례 헹궈내고 수십 개씩 들어 정리하다보면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학교급식조리원들의 근골격계 증상 위험도는 전업주부에 견줘 5배가량 높고, 요통 유병률이 보육교사보다 1.9배 높다.

조리원 5~6명 가운데 1명이 근무를 빠지면 나머지 조리원들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손목이 떨어져나갈 듯해도 쉬기 어렵다. 1년에 엿새 연차가 있지만 누군가 연차를 쓰면 미리 대체인력을 구해야 한다. 그 흔한 ‘밥하는 아줌마’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찾아온 이가 나 같은 애송이라면 도움은커녕 행여 다칠까 주변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일한 언니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학교를 지킨 이들이었다.

몇 번이나 현기증을 느끼다 마지막 작업복을 벗고 나올 때,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안도했다. 그 지독히 뜨겁고 무거운 노동을 사흘 아니라 10년씩 해내는 건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식당 뒷정리를 도와주는 아이들의 웃음에, 온몸이 땀과 열기로 흠뻑 젖은 채 웃음으로 답하는 급식노동자에게서 ‘엄마’를 봤다. 그들이 엄마처럼 헌신적이라고 해서 ‘엄마처럼 정당한 대가 없이 일하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 헌신과 내공에 합당한 대가를 얹어주는 편이 상식적이다.

‘낡고 좁은 곳에서 일 쫓겨… 급식조리원 화상 입고 사망’( 2014년 6월1일치 19면). 애초에 급식조리원 체험기를 쓰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2단짜리 신문기사였다.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학교의 급식실 주방에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숨진 50대 여성 노동자는 초벌 설거지를 위해 받아놓은 뜨거운 물 위로 넘어져 화상을 입은 뒤, 패혈증과 폐렴 등 합병증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접 일해본 뒤, 격무에 시달리는 급식실엔 사고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구 학교를 찾아가세요

그러니 이언주 의원에게 제안한다. 연일 국회를 찾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에 이 의원도 난처할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의 표시로, 단 하루만 지역구의 학교를 찾아 급식노동자로 일해보시길 권한다. “탕수육 두 조각”의 부실한 밥상이 급식조리원의 높은 인건비 때문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밥 먹을 권리”만큼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권리”도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될 것이다.

엄지원 정치부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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